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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병에 담는 오래된 포도주
이소우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
[]        기사입력 2000-10-10 오후 16:22:22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반면 영국에는‘Old Wine in New Bottles’라는 격언이 있다. "새 술병에 오래된 포도주를 담는다"는 뜻이다.

두 격언은 비슷해 보이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새롭게 각오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후자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오래 지닌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정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영국 간호계가 택한 캐치프레이즈가 바로‘새 술병에 오래된 포도주'이다. 어찌보면 진부한 구호 같지만 그 의미와 가치는 자못 진지하다.

영국 간호계는 모든 국민이 편리하고 자유롭게 간호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일반 과세로부터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새로운 보건의료정책이라는 술병에 '보편성·종합성·지속성'이라는 오래된 포도주를 담아 간호서비스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간호를 선호하는 일본정부가 최근들어 획기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담아내는 새 술병 만들기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 크기와 내용, 라벨, 모양, 용도는 영국과 다르지만 21세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같다.

21세기를 향한 일본의 새 술병 제조는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우선 학사 이상의 간호인력이 개혁적으로 증가했다. 각 현(우리나라 '도'에 해당)에 한 개 이상의 4년제 대학을 설립해 현재 85개의 4년제 대학이 설립돼 있다. 불과 10년만에 거의 10배에 달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인력 뿐만 아니라 간호교육의 과정, 내용 등도 일본은 과감히 바꾸어 나가고 있다. 산모, 노인, 정신질환자들을 보건의료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후생 복지차원에서도 배려해야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행복하고 편안하게 아기를 분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조산사, 노인을 가정에서부터 입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로 안락하게 돌봐줄 수 있는 방문보건간호사, 정신질환자를 의료뿐만 아니라 복지후생적 차원에서 돌봐줄 수 있는 정신간호사 등을 새로운 보건의료시스템 안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 장래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해줄 직업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간호계의 오래된 포도주는 무엇인가? 자타가 인정하는 친절과 세심한 배려, 책임과 질서, 철저한 위생과 깨끗함…. 이것은 일본 간호계의 오래된 가치관으로, 이상적 행동강령에 그치지 않는 실제적 행동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결과, 일본 국민들은 간호사에 대해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으며 앞으로도 세상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해도 변함없이 간호사는 존경받는 직업인으로 자리매김할 추세이다.

본래 '후생'의 뜻은 '서경(書經)'에서 인간의 요람에서부터 노후의 생활에까지 함께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에 걸맞은 21세기 보건의료서비스와 후생복지적 서비스가 복합된 획기적인 보건의료정책 즉, 새 술병을 만들어야 한다.

요즘 의약분업이 보건의료정책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지만 보건의료서비스의 개혁과제 중 의약분업만 필요한 것인가? 간호계는 어떤 문제와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지, 차제에 국민건강을 배려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간호의 오래된 포도주는 과연 어떤 것인가? 새 술을 만들 것인지, 혹은 오래된 포도주를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작성일 : 20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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