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문학상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0-12-23 오후 15:27:36

- 박종녀 수녀 (목포가톨릭대 간호학과 3학년)
　
　
　
　일교차가 심한 요즘, 나는 모처럼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교 주변을 산책했다. 탐스럽게 열린 석류와 그 앞에 핀 노오란 국화꽃의 향기를 맡으며 가을을 만끽했다. 도로변에 널어놓은 콩과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보면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나는 늦깍이로 간호공부를 시작한 수도자이다. 6개월간의 기도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간호공부였다. 나중에 나이 들어 노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지낼까? 나름대로 주위사람들에게 나를 내어 놓고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나의 장래를 결정했다. “그래! 나이 들어 아프고 외로운 수녀님들을 위해 간호를 해드려야겠다. 간호사로서 그들 곁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들어주고, care 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간호공부를 마치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서 일하다가 본 회 수녀님들을 간호해 주고 싶은 마음과 열정이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간호공부. 하지만 강의 시간에, 요즘 유행하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았다. 야동의 뜻을 몰랐고, UCC의 내용을 A4 용지에 제출하라고 했을 때, 동영상을 어떻게 담아올지 막막해하던 나의 모습. 영어시간에는 ‘다시듣기’를 못 알아듣는 나를 보고 난감해하던 교수님의 표정... 등 등 평소에도 수녀원에서 엉뚱하기로 유명한 내가 어떻게 이 어려운 간호공부를 할 지 모두가 다 의아해 했을 정도다.
　
　녹슨 나의 뇌가 1년 지나면 슬슬 풀려서 잘 돌아갈 거라고 희망을 준 언니!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처음과 비슷하니...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기억력의 한계를 알려주었다. 이해는 되어도 암기 시간이 몇 배로 걸렸다. 생소한 의학용어에 약물, 미생물... 으!! 거기에 수시시험까지!!
　
　나의 한계를 느끼고 중간에 그만 두어야하는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로 지금까지 간호학과 학생으로 버티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적이 따로 없다.
　
　이런 나에게 3학년 첫 병원실습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시설이 제일 좋은 서울의 OO병원으로 첫 실습을 가게 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전철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시작된 실습이었다. 하얀색 수도복에 녹색가운을 입고 실습생 명찰을 가슴에 달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실습을 시작했다. 간호수도복으로 갈아입으면 모든 것을 다 해낼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혹시 모르는 것 시키면 어쩌지? 하고 두렵기도 하고 긴장도 했다. 잘 해야겠다는 욕심과 긴장으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다.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학교의 명예를 위해, 수도자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고 다가갔다.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기쁘게 달려가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주었다.
　
　하루하루 실습하면서 보람된 일들이 참 많았다. 1주일 정도 실습을 하면서 나는 기도했다. ‘오늘은 어떤 모습의 예수님을 만날까?’ ‘오늘 나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누구일까?’ 환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정성을 다해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수술실 실습을 하는 날이었다. 수도복을 벗고 수술실 복장으로 갈아입은 나는 다른 간호사, 의사 앞에 서기가 쑥스러웠다. 하지만 배우려는 마음 하나로 이 모든 것을 감수 해 낼 수 있었다. 로봇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복을 입어도 내가 수도자라는 걸 알아보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간호사들 곁에 바짝 붙어 서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수술대에 있는 환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그래서 나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주도해서 기도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환자의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과 눈으로 그를 위해 기도드렸다
　
　“OOO님! 걱정하지 마시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편안하게 맡기세요. 아무걱정 마세요. 수술동안 제가 곁에서 수술 잘 되라고 기도로 함께 하고 있을께요” 나는 이렇게 속으로 기도하면서 환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환자도 나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번은 마취과 실습 중이었다. 아직 수술 환자가 도착하기 전 이었다. 마취과 간호사와 수술간호사가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수술방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의사(나는 잘 몰랐음)가 들어왔다. 실습생 모자를 쓰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왜 거기 있는데?”
　
　“예? 실습생입니다”
　
　“아니, 왜 거기 있는데?”
　
　“오늘 이 수술방 실습 온 OO가톨릭대학교 실습 학생입니다”
　
　“그러니까, 왜 거기 있냐구?”
　
　“예? 실습-왔는-데요”
　
　나는 말에 힘이 없어졌다. 그 순간 그 의사가 하는 말
　
　“거기 내 자리거든!!”
　
　“예?? 아~ 예”
　
　나는 빨개진 얼굴로 간호사 쪽으로 얼른 비켜섰다.
　
　“나는 마취과 의사가 새로 온 줄 알았어”라고 간호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아뿔사! 수술방에서 의료진 각자의 위치가 있는 것을 깜빡했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거기 내 자리니 이쪽에 와서 관찰하라고 하던지...’
　
　또 한번은 수술실에 갔는데 아직 환자가 도착하기 전이었다. 나를 본 의사가 하는 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네! 좀 있습니다.”
　
　“나이 들어 공부하면 어려울텐데”
　
　“네, 많이 어렵습니다”
　
　“몇살이에요?”
　
　“네, OO입니다”
　
　“아니, 그 나이에 병원 차릴려구요?”
　
　“예? 아~저는 수도자입니다”
　
　“아이고, 수녀님! 수고가 많습니다. 몰랐어요” 하며 꾸벅 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또 하루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구나 싶어서 한바탕 웃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수도복이 주는 혜택과 수도복을 입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를 대신 해 주는데 나는 그 값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수도복으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이들로부터 보호 받고 있었고 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는지!! 하지만 세상은 달랐다. 끝없이 노력하고 경쟁하는 과정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습을 하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하루는 스크럽을 하는 날이었다. 외과적 손 씻기를 열심히(팔이 빨갛게 될 정도로)하고 있는데, “깨끗하게 빡빡 잘 씻으세요!!”라는 의사의 말이 들렸다. “네~” 하면서 내 입가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스크럽을 한다는 것에 설레여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수술실로 들어가자 순환간호사가 수술복을 입혀주고.. 우와! 나는 황홀하고 뿌듯했다. 위암 절제수술을 하는 환자 곁에 수술간호사와 마주보고 가까이 섰다. 가슴이 설레였다. 인체 내부를 보는 순간 더욱 더 설레였고 신기했다.
　
　‘아! 책에서만 보던 모습 그대로네!’
　
　정말 똑 같다. 피부조직이며 내부 장기며 혈관들을 보면서 나는 즐겁기만 했다.
　
　수술이 끝날 무렵 수술바늘에 실을 꿰어 건네주다가 그만 나는 나의 손을 찔렀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제대로 하면 그건 기적이지! 으...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수술간호사에게 말했고 그 즉시 수술대에서 내려 와야 했다.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기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쉬운 것도 못하다니.. 조금 있으면 수술이 마무리되는 건데... 아쉬웠다.
　
　이렇게 수술실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하게 되었다. 수많은 이들의 수술과 간 이식하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의료진들의 손길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되었다. 수술실에서 단순히 수술 잘 되리라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은 몇 차례에 걸친 수술이지만 당사자는 처음이고 귀중한 한 사람이다. 얼마나 긴장되고 두려울까? 무엇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들의 두려움에 손잡아주면서 심리적인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수술 전 간호사가 해야 할 몫이라 여겼다.
　
　바쁘고 일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기 전에 오늘 지금 이 시간 이곳 수술방에 오는 환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나의 마음뿐이었던가?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수술실에 왔는데, 마침 나는 엄마의 마음으로 손을 잡아주고 “많이 무섭지? 괜찮아. 의사 선생님께 다 맡기고 편안하게 있어?” 그랬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나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막막했다. 수술 준비하던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놀랬다. “아니, 왜그래?” 나는 아무 말 없이 벽에 붙어 서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도 못하고 “내가 그랬어요” 속으로만 외쳤다. 아~ 나는 왜 이러지?
　
　또 한 번은 일반 암 병동에서의 일이었다. 내과 암 병동이었는데 환자들에게서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rapport 형성이 된 후에 나는 그 환자와 약속했다. “어르신! 저와 만날 땐 미소로 인사해요” 나는 그 어르신 병실에 들어가면 눈을 마주보고 인사했다. 안 할 것 같았던 어르신이 나를 보자 입술을 쭉 올리는 것이다. 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침실에 있던 어르신!
　
　실습 병실이 옮겨져서 인사도 못 하고 왔을 때 복도에서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 친다. 뒤돌아보니 그 어르신이었다.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사랑해!” “저도요. 사랑해요^^” 그러고는 저만치 걸어가셨다.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슴깊이 기쁨의 무언가가 올라옴을 느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보다!!
　
　그들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존중해주고 마음으로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면 내가 나눠 준 사랑보다도 더 많이 되돌아온다는 것을!! 이렇게 많은 체험 속에서 두 달간의 첫 실습을 마쳤다.
　
　이제껏 나는 수도자로 살면서 우물안의 세상만 보고 살았다. 그것이 전부인 양... 하지만 실습을 통해 우물 밖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간호사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배웠는데 앞으로 간호사로서 어떻게 환자들에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간호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간호사에게 의지 하는 것이 무엇일까? 24시간 내내 환자 곁에서 간호하는 간호사는 누구인가? 친절이 무엇인가? 나만이 베풀 수 있는 나의 친절법은? 간호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간호사의 가치관! 무엇보다도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것이란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뼈 속 깊이 체험하는 시간 이었다.
　
　나는 수도자로 간호학생으로 살면서 사랑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기도하고 생활로 옮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고 나만의 고집과 자존심을 내세우며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넘어지고 많은 실수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나려고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나의 약함 앞에서 한탄만 하고 있지도 않는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구나! 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다.
　
　나의 약함을 감추지 않고 서스럼 없이 동료 수녀들에게 나눌 때 오히려 평화를 체험한다. 그러는 사이 나의 영혼은 어느덧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간호공부 하면서 이제 좀 철이 드는 것 같다. 나를 다시 되돌아보고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생명의 소중함! 그래서 함께 살고 있는 나의 동료 수녀님들과 내가 만나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타인의 마음 속 깊이까지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 내 맘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으면 상대방도 좋은 것이고 내가 기쁘면 상대방도 기쁘고... 나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던 나는 조금씩 우물밖의 세상을 바란본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약함도 그대로 볼 수 있고, 이해하는 마음이 억지로가 아니라 평화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음을 체험한다.
　
　인체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공부를 하면서 내 자신과 이웃에게, 그리고 세상에도 눈을 뜨고 사랑의 마음이 더욱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늦깍이로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됨에 감사를 드린다. 어느 날 장상 수녀님께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수녀님, 이제 제가 좀 철이 드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