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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소리 - 작지만 강한 힘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10-28 오후 14:04:02

우선아 가대 대전성모병원 중환자실 파트장

내가 병원에 근무한지 4년째 되던 봄 무렵이었다. 체격이 큰 한 고등학생이 길랑바레증후군(말초신경이 마비가 돼서 점점 중추신경 방향으로 마비가 진행되는 병)으로 호흡근까지 마비가 돼 중환자실에 오게 됐다. 의식저하와 호흡저하로 기관 삽관 후 인공호흡기를 달고 무의식 수준의 의식 상태로 처음 나와 만났다.

중환자실의 모든 간호사들은 그 환우가 알아듣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많은 말들을 건네며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별다른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교사였던 환우의 아버지는 그 당시 매일 출근하기 전 새벽에 아들을 지켜보다가 가곤 했는데, 그러기를 한 달 정도 경과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들, 우리 아이의 발가락이 움직여요.”

환우의 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모두 환우 곁으로 달려갔다. 그의 엄지발가락이 거짓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 환우의 움직임이 서서히 나아지더니 동그랗게 눈을 뜨기도 하고 의식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자판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농담까지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보다 정말 놀라운 것은 무의식상태로 한 달 정도 누워있었던 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름을 서로 연결 지어 기억하고 있었고, 아주 작은 간호행위의 명칭들도 기억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들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환우는 나날이 상태가 좋아지더니 초가을쯤 일반병실로 이실을 했다. 나는 그 환우를 만나기 위해 병실을 자주 찾았고, 퇴원한 후에도 시험을 잘 보았다느니 통통한 살이 빠졌다느니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연락을 하곤 했다.

그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간호에 대하여 마음이 흐릿해질 때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환우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작은 손짓, 말투, 웃음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환우들이 회복하는 데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선배간호사로서 후배간호사에게 말하고 싶다. “환우들은 듣고 있지 않아도 들으며, 보이지 않아도 본다”라고.

  • 아주대 대학원 간호학과
  • 심장혈관연구재단
  • 박문각 신희원
  • 스마트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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