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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부대간호장교] 남 맹 숙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4-08-05 오전 09:46:08

　오늘도 어김없이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새벽의 침묵은 깨어지고 눈을 비비고 크게 기지개를 켜며 연병장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이곳 이라크 낫시리아의 아침에 적응된 듯 모두의 모습이 익숙해 보입니다.

　아침점호! 짧은 순간이지만 고국의 부모님,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어느 때보다 보람차게 보내자는 다짐도 함께 해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병원 위병소에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경비대 부사관들의 밝은 아침인사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제각기 맡은 위치에서 분주히 청소하는 모습의 의무병들, 진료 준비를 위해 탁상 위를 정리하는 군의관, 환자들의 세면을 돕는 간호장교의 모습이 한눈 가득 들어오고, 아침을 거르겠다며 떼를 쓰는 환자를 타일러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간호장교의 모습도 보입니다.

　오전 9시 30분. 평소와는 다르게 외래를 찾은 환자들로 복도가 어수선해 보입니다. 그때 한 환자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것을 들고 내게 다가왔습니다. 몇주 전 수술을 받고 퇴원한 후 재검을 받으러온 환자였습니다. 환자는 입원당시 너무 고마웠던 분들을 생각해 이라크에서 맛있고 인기 있는 과일을 가져왔다면서 작은 내 손 위에 올려놓고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이곳에 오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을텐데 말입니다.

　오후에는 응급으로 구급차에 실려 온 9개월 된 여자 아이가 뇌수막염과 장염으로 응급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설사와 고열로 인해 엉덩이부위가 벌겋게 헐어 앉아있지도 못하고 입안은 헐어 백태를 보일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큰 눈에 눈물이 고여 뺨 위로 주르르 흘러내릴 때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따스한 물로 목욕을 시키고 한국에서 가져온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혀 놓으니 상쾌했는지 마냥 좋아 미소를 잃지 않고 재롱을 피우기도 합니다.

　이때 여인을 업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는 부사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던 일을 제치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 보니 병원으로 오는 도중에 의식을 잃은 환자가 누워있었습니다. 급히 응급처치를 했기 때문에 다행히 환자는 안정적으로 회복됐습니다. 환자의 안전
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경비 부사관의 도움이 컸습니다.

　오늘은 수술실도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실시된 수술은 총기사고로 다친 환자에게서 총알을 제거하는 긴 수술이었습니다. 제거돼 나온 총알을 보면서 이런 고통 속에서는 어떤 민족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란 안타까움과 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오후 5시가 되면 분주했던 외래에는 그들의 발자취만이 남아있을 뿐 한산한 기운이 돕니다. 낮동안의 일과를 마무리 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입니다.

　처음 이라크에 도착해 환자를 대할 때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고 환자 간호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이라크 말을 배워 더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과 모습이 같아진 것도 아닌데 이젠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아가 볼에 뽀뽀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게 됐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사랑으로 대하면 그들 또한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다른 언어와 인종에서 오는 어려움도 진실된 맘으로 대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이라크 사막의 땅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빛의 노을과 구름이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