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칼럼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7-06-07 오전 09:47:40

　요즈음 나는 밤마다 독서에 빠져 있다. 장르는 어떤 날은 자서전적 수필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짧은 메모 같기도 하고, 논픽션이지만 마치 소설이나 창작동화 같기도 하다. 저자는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신인작가이다. 이건 올해의 꿈이고 내년에는 어떤 꿈을 꾸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은 아무도 보면 안 된다는 금서이지만, 두 명의 독자가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알고 있다. 숙제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날은 담임선생님도 보시며, 간간히 글 아래에 독서 평도 넣어 주신다.

　책 속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가끔 독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엄마가 배웅해 주었으면 좋겠다든지, 학교수업 참관일에 친구 엄마들은 다 오셨는데 우리 엄마만 없었다고 해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살짝 고백해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짝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의하거나 수업시간에 하지 못한 하소연
을 풀어 놓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도 가끔 그랬다. 일기장에다 친구의 새신발이 너무 부러워 갖고 싶다고 하소연을 해놓았더니, 다음날 하교 후에 새신발이 생겼다. 물론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우리 집 꼬마 작가는 독자를 기쁘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수업시간에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발표해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며 간호사인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써 놓아 벅찬 감동을 맛보게 해줬다. 때로는 무서운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으로 표현해 남편을 구름 방석에 앉혀 놓는다. 딸아이의 일기를 본다고 잔소리 하던 남편도 어느새 열혈독자가 됐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써 온 딸의 작품은 노트 수십 권에 달한다. 나는 이 작품들을 계속 수집 중이다. 우리 가족을 중심으로 쓰인 이처럼 재미있고 때로는 웃고 우는 진한 감동을 주는 글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언젠가는 딸아이도 유년의 아름다운 날들을 회상하며 읽어 볼 때가 있으리라. 그때까지 남편과 나의 생애 최고의 베스트셀러 훔쳐보기는 밤마다 계속 될 것이다.

오미정(동국대 일산병원 수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