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자혜 간호사는 누구인가
간우회 지도자로 만세운동 주동
[편집국] 정규숙기자 kschung@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07-22 오전 11:03:12
◇ 신채호 선생과 결혼해 독립운동
◇ 독립투사 안내·연락임무 수행
독립운동가 박자혜 선생은 1895년 12월 11일 경기도 고양군(현 서울 수유리)에서 태어났다. 1914년 숙명여학교 기예과(2회)를 마치고, 조선총독부의원 부속 간호부과(1916년) 및 조산부과(1917년)를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총독부의원에서 근무하면서, 간호사와 조산사들을 규합해 간우회를 조직했다. 박자혜 선생이 주동이 돼 만세운동에 동참한 쾌거가 세칭 `간우회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선생은 일경의 혹독한 취조를 받았으며, 유치장에서 풀려난 후 만주로 건너갔다.
혁명가의 피가 끓는 여걸 박자혜 선생은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해 아내이자 동지로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 서울에 돌아온 선생은 인사동 69번지에서 `산파 박자혜' 간판을 내걸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독립투사들을 안내하고 연락을 취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파괴 임무를 띠고 잠입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를 도왔다.
1943년 10월 16일 사망했으며, 화장한 뒤 유골은 한강에 뿌려졌다. 박자혜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2008년 충북 청원군 단재 선생의 묘소에 박자혜 선생의 위패를 함께 안치함으로써 부부는 합장됐다. 유족으로 며느리(장남 수범의 부인) 이덕남 씨가 생존해 있다.
☞ 박자혜 선생 생애 본보 7월 2일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