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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간호문학상 수상작품- 수필 당선작
꽃밭에서
[국립의료원] 강성희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2-12-31 오후 12:48:39
세상은 커다란 하나의 꽃밭이다. 아니 더 넓게 말해 지구는 커다란 정원에 비유해서 볼 수 있다.

 나는 어느 날부터 세상을 정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나의 의식 안에서 말이다. 그러자 주변에서 재미있는 일이 마구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아무런 조건이나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오고, 행복해서 춤을 추고 싶던지…. 특별한 이유가 없기에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을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꽃들의 향기를, 즉 스스로의 향기를 많이 맡아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한다.

 내가 세상을 꽃밭으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은 서른이 훨씬 더 넘은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신생아실에서 근무를 하게 된 어느 날.
 아이를 한번도 키워 본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 본 적도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근무지 변경이 있었다.
 신생아실로 부서를 옮기고 나서 한동안은 참으로 막막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방법을 좋아하던 터라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어서일거다'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해가고 있는 즈음 아이들이 특히, 신생아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나비들의 움직임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시야가 바뀌고 나자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는 재미는 그 어떤 취미보다도 유익했다.
 여차하면 일이라는 자체에 휩쓸려 아무런 재미도 못 느낄 뿐더러 아이들이 지겹게까지, 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다가서게 되지만 한 템포만 마음을 늦추면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은 모든 천상의 상황을 그대로 현실로 옮겨서 보여주는 듯 했다.

 아이들이 우는 소리는 꽃봉오리가 열리는 개화의 소리로 들리고 그럴 때 나는 가슴으로 꽃이 피는 소리를 느껴보게 된다. 아이들이 꽃이 되어 그렇게 소리를 내주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세상을 더욱 환하게 만드는구나 싶어 가슴 뭉클해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움직이며 바스락거릴 때는 꽃잎이 바람에 의해 서로의 몸을 부비는 소리 같다. 한없이 깨끗한 소리. 새해 첫 새벽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처럼 그렇게 아이들의 소리는 살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마다 신단수 아래 가장 정갈한 몸과 맘으로 아이의 첫 목욕을 시키는 양 자주 착각에 빠지곤 했지만 일부러 그 착각에서 빠져 나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각오들이 나를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세례를 받는 그 황홀함과 단정함으로 지탱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를 가장 고양시켜주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있게 해주었기에 늘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새롭게 단장되어 갈 즈음 어느 날은 아이가 출생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우연찮게 학생 때 한번도 신생아실과 분만실에서 실습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아이들에 대한 신비로움과 분만에 대한 흥미나 색다른 호기심이 없었는데 그야말로 그 날은 경이로운 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잠을 자고 밖에서 들리는 소음이나 주변도 너무나 조용해서 조금은 지루한 생각도 들고 하여 서서히 분만실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쪽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 너무나 조용해 분만실 안을 기웃거리며 다가서는데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해질 무렵 분만실 안을 기웃거리는 나의 눈동자가 머무는 순간 바로 아이 하나가 미끄러지듯 엄마의 자궁이라는 바다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포효하듯 앙앙거리고 있었고, 엄마는 고요한 미소만을. 나는 발길을 멈추고 오래도록 침묵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바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 일출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일출! 바다에서 떠오르는 순결한 일출의 한 장면!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소중한 생명이 바로 우리 각자의 모습이라는 걸 실로 뼛속깊이 체험하게 되었던 거다. 내가 저렇게 존엄하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태어났겠구나….
 그 아이는 바로 나의 30여년 전의 필름을 한 순간에 되돌려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삶의 희망을 얻는다.
 그 아이들의 고유한 모습을 인정하고 살려 주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지만 또한 아이들이 곧 각자 자신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면 나의 또 다른 분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지켜보아 주어야 할지는 조금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꽃밭에는 각양각색의 꽃들로 만원이다.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 꽃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자체만으로 판단과 분별을 두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이 자신의 정원에 있는 꽃이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꽃과 나비!
 세상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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