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작
시계 소리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2-01-03 오전 10:15:03
어린시절, 우리집의 유일한 문화도구는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건전지의 기력이 쇠해가거나 바람이 몹시 부는 날만 아니면 내가 살던 그 산골짜기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충실히 전해주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마을에서 하나뿐이던 그 라디오는 재봉틀과 벽시계와 함께 초등학교 때 가끔 내주던 `가정환경 조사서'를 빛나게 해주던 것들이었다. 쌀 몇말 주고 바꾸었다는 독일제 미싱과 아버지가 한국전쟁 전에 사왔다는 벽시계는 필수품이지만 그시절에는 귀중품으로 여긴 것들이었다.
어머니는 고물이 된 그 물건들을 버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 중에서도 시계는 다락에 넣어둔 것도 아니고 벽의 한가운데에 걸어둔 걸 보면 어머니에겐 시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내가 밥을 먹은 후면 가끔 시계에게도 밥을 주라고 이르셨다. 처음에는 손이 닿지 않아 목침 두어 개를 포갠 위에 올라가 열쇠같이 생긴 쇠봉을 꺼내 태엽을 감아주었다. 따르륵 거리며 조여지던 태엽의 감촉에 익숙해지고 쌓은 목침의 숫자가 한 개로 줄어들 무렵에는 나도 아버지처럼 시계밥을 줄 때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 키가 시계에 닿을 만큼 자랐을 때, 아버지는 그 시계소리를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정지되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더 가혹해져 갔다.
마음 내키면 벌떡 일어나 누렇게 변색된 숫자판의 유리문을 열고 오랫동안 태엽을 감는 어머니의 표정은 진지해 보인다. 죽어있던 시계가 태엽이 감긴 순간부터 피돌기를 시작한다. 똑딱 똑딱 똑딱…
시계 소리를 세며 잠이 들던 어릴 때의 적요하던 밤이 고스란히 되돌려진 느낌이다. 어머니가 가끔 시계를 살려놓는 것은 어찌면 그 소리와 함께한 세월들을 되돌리려는 의식 같아 보이기도 한다. 고단하기만 했을 어머니의 삶속에서 새삼스레 꺼내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 따라 변할 수 없어 어머니는 한동안 힘들어 하셨다. 농사를 짓지 못해 몇 해나 논을 비워두었을 때, 잡초만 무성해가는 논을 보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곳은 아버지가 피땀 흘려 가꾸던 땅이었다. 모내기가 끝난 후에도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을 빈 자리가 있는지를 살피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황폐해진 들을 바라보는 건 고통이었을 것이다.
농사시절이 좋았을 때는 소작할 이들이 서로 짓겠다고 탐을 내던 논이었다. 그 논이 비면서 덩달아 텅빈 것 같다는 가슴 속에다 몇 년째 약을 털어 넣으면서도 다스려지지 않던 우울기가 슬며시 사라진 건 지난해 겨울부터였다.
“한 번 내려와 봐라. 내년에는 우리땅을 놀리지않아도 되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오랫만에 생기를 찾아 젊은날처럼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지정리가 시작되었다는 앞들에서도 불도저의 또다른 쇳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 왔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던 텃밭과 이어있던 자름한 논들이 합쳐져서 한 필지가 된다는 것이 들뜬 어머니의 설명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어머니가 우울에서 놓여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을 뿐, 마을의 지형이 바뀌어버리는 것에까지 마음을 두지 않았다.
비어있던 행랑채에 농사를 지을 노부부가 이사오던 날도 집에 온기가 돈다고 좋아하셨다. 혼자 계셨으니 사람이 그립기도 하였을 것이다. 모내기를 하고나서도 `한번 내려와 보라'던 청을 입추가 지나 벼끝이 올라온 날도 똑같은 지청을 하신 걸 보면 벼가 실하게 자라고 있는 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제 논에 물들어가는 거랑 새끼 입에 밥들어가는 거 보는 게 제일 낙이지”
오랫만에 어머니를 찾아 뵙던 날, 햅쌀밥에 입맛을 내는 딸에게 아버지가 예전에 자주 하셨다는 이 말을 주문처럼 외는 노모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필시 어머니의 저 표정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이다.
갑자기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며 둔탁하게 똑딱거리던 아버지의 시계가 몇 번인가 울렸다. 둥, 둥, 둥… 울림판에 부딪쳐 돌아나오는 소리가 범종을 울리는 듯하다.
힘겹게 추를 움직이는 시계가 고목 같은 어머니를 닮았을까? 시계도 오래되면 사람처럼 목소리가 변하는지 예전의 시계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저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마을의 옛 정경이 사라졌다해도 어머니께 서운하다는 내색을 할 수 없다. 논에서 얻어낸 쌀이 어머니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텃밭이 논이 된 건 섭섭한 일이다. 이모작을 할 수 없어 벼농사만 지을 수 있던 논에 비해 밭에서는 어떤 씨앗을 품어주어도 요술같이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콩이나 팥 같은 알록달록한 밭곡은 물론 온갖 푸성귀가 구석구석 자라났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개똥참외가 덤으로 나기도 했고 텃밭 귀퉁이에 있는
마을에서 하나뿐이던 그 라디오는 재봉틀과 벽시계와 함께 초등학교 때 가끔 내주던 `가정환경 조사서'를 빛나게 해주던 것들이었다. 쌀 몇말 주고 바꾸었다는 독일제 미싱과 아버지가 한국전쟁 전에 사왔다는 벽시계는 필수품이지만 그시절에는 귀중품으로 여긴 것들이었다.
어머니는 고물이 된 그 물건들을 버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 중에서도 시계는 다락에 넣어둔 것도 아니고 벽의 한가운데에 걸어둔 걸 보면 어머니에겐 시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내가 밥을 먹은 후면 가끔 시계에게도 밥을 주라고 이르셨다. 처음에는 손이 닿지 않아 목침 두어 개를 포갠 위에 올라가 열쇠같이 생긴 쇠봉을 꺼내 태엽을 감아주었다. 따르륵 거리며 조여지던 태엽의 감촉에 익숙해지고 쌓은 목침의 숫자가 한 개로 줄어들 무렵에는 나도 아버지처럼 시계밥을 줄 때를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 키가 시계에 닿을 만큼 자랐을 때, 아버지는 그 시계소리를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정지되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더 가혹해져 갔다.
마음 내키면 벌떡 일어나 누렇게 변색된 숫자판의 유리문을 열고 오랫동안 태엽을 감는 어머니의 표정은 진지해 보인다. 죽어있던 시계가 태엽이 감긴 순간부터 피돌기를 시작한다. 똑딱 똑딱 똑딱…
시계 소리를 세며 잠이 들던 어릴 때의 적요하던 밤이 고스란히 되돌려진 느낌이다. 어머니가 가끔 시계를 살려놓는 것은 어찌면 그 소리와 함께한 세월들을 되돌리려는 의식 같아 보이기도 한다. 고단하기만 했을 어머니의 삶속에서 새삼스레 꺼내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만큼 따라 변할 수 없어 어머니는 한동안 힘들어 하셨다. 농사를 짓지 못해 몇 해나 논을 비워두었을 때, 잡초만 무성해가는 논을 보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곳은 아버지가 피땀 흘려 가꾸던 땅이었다. 모내기가 끝난 후에도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을 빈 자리가 있는지를 살피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황폐해진 들을 바라보는 건 고통이었을 것이다.
농사시절이 좋았을 때는 소작할 이들이 서로 짓겠다고 탐을 내던 논이었다. 그 논이 비면서 덩달아 텅빈 것 같다는 가슴 속에다 몇 년째 약을 털어 넣으면서도 다스려지지 않던 우울기가 슬며시 사라진 건 지난해 겨울부터였다.
“한 번 내려와 봐라. 내년에는 우리땅을 놀리지않아도 되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오랫만에 생기를 찾아 젊은날처럼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지정리가 시작되었다는 앞들에서도 불도저의 또다른 쇳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 왔다.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던 텃밭과 이어있던 자름한 논들이 합쳐져서 한 필지가 된다는 것이 들뜬 어머니의 설명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어머니가 우울에서 놓여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을 뿐, 마을의 지형이 바뀌어버리는 것에까지 마음을 두지 않았다.
비어있던 행랑채에 농사를 지을 노부부가 이사오던 날도 집에 온기가 돈다고 좋아하셨다. 혼자 계셨으니 사람이 그립기도 하였을 것이다. 모내기를 하고나서도 `한번 내려와 보라'던 청을 입추가 지나 벼끝이 올라온 날도 똑같은 지청을 하신 걸 보면 벼가 실하게 자라고 있는 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제 논에 물들어가는 거랑 새끼 입에 밥들어가는 거 보는 게 제일 낙이지”
오랫만에 어머니를 찾아 뵙던 날, 햅쌀밥에 입맛을 내는 딸에게 아버지가 예전에 자주 하셨다는 이 말을 주문처럼 외는 노모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필시 어머니의 저 표정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이다.
갑자기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며 둔탁하게 똑딱거리던 아버지의 시계가 몇 번인가 울렸다. 둥, 둥, 둥… 울림판에 부딪쳐 돌아나오는 소리가 범종을 울리는 듯하다.
힘겹게 추를 움직이는 시계가 고목 같은 어머니를 닮았을까? 시계도 오래되면 사람처럼 목소리가 변하는지 예전의 시계소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저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마을의 옛 정경이 사라졌다해도 어머니께 서운하다는 내색을 할 수 없다. 논에서 얻어낸 쌀이 어머니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텃밭이 논이 된 건 섭섭한 일이다. 이모작을 할 수 없어 벼농사만 지을 수 있던 논에 비해 밭에서는 어떤 씨앗을 품어주어도 요술같이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콩이나 팥 같은 알록달록한 밭곡은 물론 온갖 푸성귀가 구석구석 자라났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개똥참외가 덤으로 나기도 했고 텃밭 귀퉁이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