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홍신영 형을 그리워하며
"간협 회관 건축 큰 일 이룬 분"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11-29 오전 09:35:59
※이 글은 지난 10월 9일 타계한 한국 간호계의 거목 홍신영 전 대한간호협회장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홍옥순 여사가 보내온 것입니다. 홍옥순 여사(84세)는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지내신 분이며 현재 미국 뉴욕에 살고 계십니다.
신영 형.
형을 처음 알게 된 1933년을 회고합니다. 세브란스간호학교에 입학했을 때 형은 키도 컸고, 또한 평양 정의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2년이나 교편생활을 하다 온만큼 성숙한 모습이었기에 여고를 갓나온 우리들은 신영 언니라고 불렀지요.
졸업 후 세브란스간호학교 교원으로 배치돼 행정과 교육담당자로 일하는 동안에는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장래를 함께 속삭였지요.
그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기숙사 부사감으로, 2차 대전 중에는 원산구세병원 간호부장으로 일하셨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는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의 간호사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간호사들의 재교육, 간호교육기관 심사 및 인가, 간호사 면허제도의 중앙화 등 간호교육 개혁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셨습니다.
다시 모교에서 교수로 몸담으면서 간호학과를 간호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고, 초대 학장을 지내셨지요.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지내는 동안 회관 건축이라는 큰 일을 솔선해 추진했고, 대한기독간호사협회 등을 조직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꿈도 꾸기 어려운 거대한 일들을 시작한 선견자요, 끝없는 열정을 지닌 실천자였지요. 형이 이룬 이 모든 일들은 계속 성장해 오늘, 그 발전이 눈부십니다.
심신이 쇠약해져 몇 년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이렇듯 하늘의 부름을 받아 가심은 너무도 허무합니다. 1936년 졸업한 18명 중 이제는 3명만이 남았고, 모두 미국에 정착해 이웃과 주위에 도움을 주는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형의 모든 가르침을 명심해서 슬기롭게 적용하고 보다 바람직한 삶에 보탬이 되게 하렵니다. 먼저 간 친구들과 함께 하신 신영 형. 이제는 그 옛날 뿌린 씨앗이 한국 간호의 역사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저 세상에서 기쁘게 보세요. 명복을 빌면서 형을 그리워 합니다.
2001년 11월 뉴욕에서 홍옥순
신영 형.
형을 처음 알게 된 1933년을 회고합니다. 세브란스간호학교에 입학했을 때 형은 키도 컸고, 또한 평양 정의고등여학교를 졸업한 후 2년이나 교편생활을 하다 온만큼 성숙한 모습이었기에 여고를 갓나온 우리들은 신영 언니라고 불렀지요.
졸업 후 세브란스간호학교 교원으로 배치돼 행정과 교육담당자로 일하는 동안에는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장래를 함께 속삭였지요.
그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기숙사 부사감으로, 2차 대전 중에는 원산구세병원 간호부장으로 일하셨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는 보건후생부 간호사업국의 간호사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간호사들의 재교육, 간호교육기관 심사 및 인가, 간호사 면허제도의 중앙화 등 간호교육 개혁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셨습니다.
다시 모교에서 교수로 몸담으면서 간호학과를 간호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고, 초대 학장을 지내셨지요.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지내는 동안 회관 건축이라는 큰 일을 솔선해 추진했고, 대한기독간호사협회 등을 조직하셨습니다. 당시에는 꿈도 꾸기 어려운 거대한 일들을 시작한 선견자요, 끝없는 열정을 지닌 실천자였지요. 형이 이룬 이 모든 일들은 계속 성장해 오늘, 그 발전이 눈부십니다.
심신이 쇠약해져 몇 년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이렇듯 하늘의 부름을 받아 가심은 너무도 허무합니다. 1936년 졸업한 18명 중 이제는 3명만이 남았고, 모두 미국에 정착해 이웃과 주위에 도움을 주는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형의 모든 가르침을 명심해서 슬기롭게 적용하고 보다 바람직한 삶에 보탬이 되게 하렵니다. 먼저 간 친구들과 함께 하신 신영 형. 이제는 그 옛날 뿌린 씨앗이 한국 간호의 역사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저 세상에서 기쁘게 보세요. 명복을 빌면서 형을 그리워 합니다.
2001년 11월 뉴욕에서 홍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