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병과 자랑스런 53년 발자취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11-15 오전 10:27:05
◈ 간호병과 역사 ◈
==1948년 창설 … 한국 최초의 여군
간호병과는 1948년 8월 26일 제1기 간호후보생 31명이 간호장교로 임관하면서 육군 간호장교단으로 창설됐다. 한국 최초의 여군이자, 여군장교가 탄생한 것.
같은 해 10월 여·순 반란사건이 일어나자 간호장교단은 창설된 지 2개월여만에 여수지역에 파견돼 부상자 간호에 전념했다.
1949년에는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해 우리 군인과 경찰은 물론 부상당한 공비들을 대상으로 간호활동을 펼침으로써 이념을 떠난 인도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또 진해 해군본부에서 해군 간호장교단을 창설하고 해군 진해병원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간호장교들은 본격적인 전시 간호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1300여명의 간호장교가 참전해 40만명의 전상환자들을 간호했으며 이동외과병원 소속 간호장교들은 전투지역을 중심으로 옮겨다니면서 환자간호에 혼신을 다했다.
1952년에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상자의 재활간호 등 간호업무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간호장교들을 미국 등에 파견해 실무교육을 받게 했다.
군 병원의 간호인력과 간호업무를 전담 관리하기 위해 1949년 5월 육군본부 의무감실 내에 간호계가 설치됐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의무감실을 확대 개편하면서 간호계는 간호과로 승격됐다.
간호과에서는 간호장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1960년부터 재활, 마취, 정신, 수술간호 등 임상분야별 주특기 교육과 국내 대학원 위탁교육을 실시했다.
간호병과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6년. 간호병과장 제도를 승인 받아 육군본부에 간호병과를 독립 편성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간호병과 체제를 갖추게 됐다.
1971년에는 최초의 비행간호장교가 탄생했다. 이들은 베트남전에 파견한 부상병들을 우리나라로 후송하는 비행기안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발됐으며 육군 간호장교단에 소속돼 활동했다. 최초의 남자간호장교는 1974년 배출됐으며 당시 남자간호후보 30명이 간호장교로 임관했다.
1990년 12월에는 군 병원의 간호부서가 진료부 소속에서 간호부로 독립 개편되면서 간호장교들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간호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1993년에는 공군에게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군간호업무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공군간호장교단을 창설했다. 이로써 간호장교는 육·해·공군 모든 국군 장병들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파수꾼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01년 현재 육·해·공군 간호장교 800여명이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다.
◈ 해외파병 ◈
==베트남전·걸프전 등에 참가
간호장교들은 베트남전, 걸프전, 서부사하라 독립전쟁 등 국외의 여러 전쟁에 참가해 수많은 인명을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간호장교들은 아군과 적군을 떠나 전상자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함으로써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실천했으며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이는데도 기여했다.
베트남전이 일어나자 정부는 1964년 국군과 함께 간호장교를 파병하기 시작했다. 1973년 철수하기까지 총 600여명의 간호장교들이 참전해 입원환자를 포함한 43만여명의 장병들과 민간인 60만명을 간호했다. 의료진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난민수용소, 고아원 등을 직접 순회하면서 간호활동과 구호활동도 함께 전개했다.
1968년에는 간호병과 창설 20주년을 맞아 베트남전에 참가한 간호장교들의 활약상을 담은 화보를 제작·배포하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20여명의 간호장교들이 다국적통합군 의무지원사령부 소속으로 파병됐다. 사우디·이라크·다국적군에게 헌신적인 간호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와함께 실무경험이 부족한 의무병들을 대상으로 기초간호 및 응급처치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 다국적군의 전투력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걸프전 우리나라는 파병이후 유엔에 가입하게 됐으며 1994년에는 내전이 한창인 서부사하라지역에 PKO(평화유지활동) 의무지원단으로 간호장교 6명을 파견했다. 사하라에서는 중앙진료소와 전방진료소의 운영을 주로 담당했으며 순회진료, 응급환자 후송, 치과진료, 위생 및 방역활동 등을 전개했다. 현재 15진이 파견돼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90여명의 간호장교가 PKO의무지원단으로 활동해왔다.
◈ 간호장교 활동분야 ◈
==국군 장병 건강관리 책임
간호장교의 역할은 크게 평화시와 전쟁시로 구분된다.
평화시에는 60여만 국군 장병들의 건강관리 및 유지·증진을 통해 군 전투력을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쟁시에는 전상환자 긴급구호와 응급대처, 전투병과와 연계된 근접 의무근무지원, 전상환자 열차·항공 후송, 전상환자 고통
==1948년 창설 … 한국 최초의 여군
간호병과는 1948년 8월 26일 제1기 간호후보생 31명이 간호장교로 임관하면서 육군 간호장교단으로 창설됐다. 한국 최초의 여군이자, 여군장교가 탄생한 것.
같은 해 10월 여·순 반란사건이 일어나자 간호장교단은 창설된 지 2개월여만에 여수지역에 파견돼 부상자 간호에 전념했다.
1949년에는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해 우리 군인과 경찰은 물론 부상당한 공비들을 대상으로 간호활동을 펼침으로써 이념을 떠난 인도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또 진해 해군본부에서 해군 간호장교단을 창설하고 해군 진해병원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간호장교들은 본격적인 전시 간호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1300여명의 간호장교가 참전해 40만명의 전상환자들을 간호했으며 이동외과병원 소속 간호장교들은 전투지역을 중심으로 옮겨다니면서 환자간호에 혼신을 다했다.
1952년에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상자의 재활간호 등 간호업무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간호장교들을 미국 등에 파견해 실무교육을 받게 했다.
군 병원의 간호인력과 간호업무를 전담 관리하기 위해 1949년 5월 육군본부 의무감실 내에 간호계가 설치됐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의무감실을 확대 개편하면서 간호계는 간호과로 승격됐다.
간호과에서는 간호장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1960년부터 재활, 마취, 정신, 수술간호 등 임상분야별 주특기 교육과 국내 대학원 위탁교육을 실시했다.
간호병과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6년. 간호병과장 제도를 승인 받아 육군본부에 간호병과를 독립 편성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간호병과 체제를 갖추게 됐다.
1971년에는 최초의 비행간호장교가 탄생했다. 이들은 베트남전에 파견한 부상병들을 우리나라로 후송하는 비행기안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선발됐으며 육군 간호장교단에 소속돼 활동했다. 최초의 남자간호장교는 1974년 배출됐으며 당시 남자간호후보 30명이 간호장교로 임관했다.
1990년 12월에는 군 병원의 간호부서가 진료부 소속에서 간호부로 독립 개편되면서 간호장교들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간호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1993년에는 공군에게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군간호업무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공군간호장교단을 창설했다. 이로써 간호장교는 육·해·공군 모든 국군 장병들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파수꾼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01년 현재 육·해·공군 간호장교 800여명이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다.
◈ 해외파병 ◈
==베트남전·걸프전 등에 참가
간호장교들은 베트남전, 걸프전, 서부사하라 독립전쟁 등 국외의 여러 전쟁에 참가해 수많은 인명을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간호장교들은 아군과 적군을 떠나 전상자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함으로써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실천했으며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이는데도 기여했다.
베트남전이 일어나자 정부는 1964년 국군과 함께 간호장교를 파병하기 시작했다. 1973년 철수하기까지 총 600여명의 간호장교들이 참전해 입원환자를 포함한 43만여명의 장병들과 민간인 60만명을 간호했다. 의료진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난민수용소, 고아원 등을 직접 순회하면서 간호활동과 구호활동도 함께 전개했다.
1968년에는 간호병과 창설 20주년을 맞아 베트남전에 참가한 간호장교들의 활약상을 담은 화보를 제작·배포하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20여명의 간호장교들이 다국적통합군 의무지원사령부 소속으로 파병됐다. 사우디·이라크·다국적군에게 헌신적인 간호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와함께 실무경험이 부족한 의무병들을 대상으로 기초간호 및 응급처치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 다국적군의 전투력 보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걸프전 우리나라는 파병이후 유엔에 가입하게 됐으며 1994년에는 내전이 한창인 서부사하라지역에 PKO(평화유지활동) 의무지원단으로 간호장교 6명을 파견했다. 사하라에서는 중앙진료소와 전방진료소의 운영을 주로 담당했으며 순회진료, 응급환자 후송, 치과진료, 위생 및 방역활동 등을 전개했다. 현재 15진이 파견돼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90여명의 간호장교가 PKO의무지원단으로 활동해왔다.
◈ 간호장교 활동분야 ◈
==국군 장병 건강관리 책임
간호장교의 역할은 크게 평화시와 전쟁시로 구분된다.
평화시에는 60여만 국군 장병들의 건강관리 및 유지·증진을 통해 군 전투력을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전쟁시에는 전상환자 긴급구호와 응급대처, 전투병과와 연계된 근접 의무근무지원, 전상환자 열차·항공 후송, 전상환자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