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약가인하 개편안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급감하고, 연구개발(R&D) 및 고용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산업계 전반에서 경영 악화와 성장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지난 29일 국내 제조시설을 갖춘 제약사 59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제약바이오기업 CEO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는 연매출 1조 원 이상의 대형사부터 중소기업까지 고루 참여했으며, 이들의 총매출 규모는 20조 원에 달한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약가 산정 비율이 현행 53.55%에서 40%대로 조정될 경우 59개 기업의 연간 예상 매출 손실액은 총 1조2144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기업당 평균 233억 원의 매출이 증발하는 셈이다.
특히 수익성 악화가 심각했다. CEO들은 이번 개편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평균 51.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규모별로는 중견기업의 예상 영업이익 감소율이 55.6%로 가장 높았으며, 매출 손실률은 중소기업(10.5%)이 가장 커 규모가 작을수록 약가인하의 파고를 견디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경영 악화는 미래를 위한 투자 축소로 직결될 전망이다. 응답 기업들은 2024년 대비 2026년 R&D 비용을 평균 25.3% 줄이겠다고 답했다. 설비투자 역시 평균 32.0%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으며, 특히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축소율은 52.1%에 달해 생산 인프라 붕괴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고용 시장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조사 대상 기업에서만 총 1691명의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 이는 종전 인원의 9.1%에 해당하는 수치로, 중견기업의 경우 평균 12.3%의 인력을 줄여야 할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제품 출시를 통한 사업 확장도 제동이 걸렸다. 응답 기업의 74.6%(44개사)는 수익성 악화와 개발비 회수 불가를 이유로 제네릭 의약품 출시를 취소하거나 보류하겠다고 답했다.
CEO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항은 ‘채산성 저하에 따른 생산 중단’(52개사, 복수응답)이었다. 이어 R&D 투자 감소와 구조조정이 뒤를 이었다. 약가인하가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의약품 공급망 불안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번 설문 결과는 약가인하가 제약산업계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약가 정책을 단순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 수단으로만 활용한다면 국가 전략 산업인 제약바이오 산업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