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이범희 교수, 김소영 연구원>
신경계와 피부 등에 종양을 일으키는 선천성 희귀질환 ‘신경섬유종 1형’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희망이 열렸다. 국내 연구진이 기존 약물을 활용해 일부 환자의 종양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이범희 교수·김소영 연구원팀은 넌센스 돌연변이를 가진 신경섬유종 1형 환자의 세포에 약물 ‘아탈루렌(Ataluren)’을 처리한 결과, 종양 억제 단백질 기능이 회복되고 종양 유도 신호가 차단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경섬유종 1형(NF1)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전신에 발육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특히 환자의 약 30%가 앓고 있는 ‘넌센스 돌연변이’는 단백질이 생성되던 중 갑자기 종료 신호가 나타나, 종양을 억제하는 ‘뉴로파이브로민’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백질이 부족하면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해 종양으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근이영양증 치료제로 쓰이던 ‘아탈루렌’에 주목했다. 아탈루렌은 넌센스 돌연변이로 인해 중단된 단백질 합성을 끝까지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이 한국인 환자 22명의 세포에 이 약물을 처리한 결과, 약 24%의 세포에서 비정상적인 종양 증식 신호가 줄어들며 뉴로파이브로민 단백질의 기능이 회복됐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성과는 환자마다 다른 약물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전사체 분석을 통해 아탈루렌에 반응하는 세포에서 ‘AMPD3’와 ‘TGFBR3’ 단백질 수치가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혈액 검사만으로도 해당 약물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미리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AMPD3’ 단백질이 종양 증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를 억제할 경우 신경섬유종의 주요 구성 세포인 슈반 세포의 증식이 멈추고 사멸하는 효과가 나타나, 향후 새로운 치료 표적(Target)으로서의 가치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희귀질환 플랫폼 ‘레어노트’를 운영하는 휴먼스케이프(대표 장민후)의 데이터와 분석 인프라, 연구비 지원을 통해 수행됐다. 민간 플랫폼의 환자 데이터와 대학병원의 임상 연구 역량이 시너지를 낸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 교수는 “그동안 직접적인 치료 대안이 부족했던 넌센스 돌연변이 신경섬유종 환자들에게 맞춤형 치료 전략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연구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피인용지수(IF) 10.7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의료 커뮤니케이션(MedComm)> 최신호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