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이라스(ERAS) 프로그램을 설명 중인 이대서울병원 암센터 심장혈관흉부외과 김관창 교수>
76세 남성 A씨는 우상엽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고령인 데다 폐 기능 저하 가능성이 있어 수술과 회복 과정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의료진은 수술 전 CT와 PET/CT 검사, 폐 기능·영양 평가를 토대로 ‘수술 후 회복 강화 프로그램(ERAS·Enhanced Recovery After Surgery)’을 적용하기로 했다.
수술은 기도삽관 없이 수면 상태에서 늑간신경 차단술을 이용한 단일공 폐 절제술로 진행됐다. 전신마취 대신 수면마취를 사용했고, 마약성 진통제와 배뇨관은 쓰지 않았다. 환자는 수술 중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자가 호흡을 유지했다.
수술 다음 날부터 A씨는 복도 보행과 연식 섭취가 가능했다. 폐 재활 치료도 동시에 시작됐다. 2일차에는 배액관을 제거했고, 통증과 보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돼 수술 3일 만에 퇴원했다. 2주 뒤 외래 진료에서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였다.
이대서울병원 암센터 심장혈관흉부외과 김관창 교수팀은 폐암 수술 전·중·후 전 과정에 ERAS 프로그램을 적용해 회복 기간 단축과 합병증 감소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ERAS는 무조건 빨리 퇴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거에 기반해 안전한 회복 경로를 미리 설계하는 표준화된 진료 체계”라고 설명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국내 폐암 발생 건수는 약 3만2000건으로 전체 암 중 세 번째로 많았다. 폐암은 여전히 암 사망 원인 1위지만, 조기 검진과 최소침습수술, 표적·면역치료의 발전으로 조기암과 일부 진행성 폐암에서는 치료 성과가 개선되고 있다.
ERAS 프로그램은 수술 전부터 회복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관리한다. 수술 전에는 영양 관리와 호흡 재활 교육, 금식 시간 단축, 체력 준비가 이뤄진다. 수술 중에는 최소침습수술과 출혈·체온·수액 관리에 집중하고, 수술 후에는 조기 보행과 식사, 배액관 조기 제거, 체계적인 통증 조절과 폐 재활을 병행한다. 여러 진료과 의료진과 간호사가 팀을 이뤄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폐암 수술 후 평균 입원 기간은 57일 정도다. ERAS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통상 35일 수준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퇴원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 발생을 줄이고 환자가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국내외 연구에서도 ERAS 적용 시 입원 기간이 1~3일 단축되고, 폐 합병증이 감소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폐암 수술은 개흉수술, 흉강경 수술, 로봇수술로 나뉜다. 최근에는 단일 절개로 시행하는 단일공 흉강경 및 로봇수술이 확산되고 있다. 기존 전신마취와 기도삽관 방식은 저산소증, 폐 손상, 기도 합병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팀은 전신마취 대신 수면마취와 비삽관 수술을 적용해 이런 부담을 줄이고 있다. 늑간신경 차단술을 병행해 통증을 최소화하고, 수술 직후부터 재활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김 교수팀은 지난해 폐암 단일공 수술 1000례를 달성했으며, 이 가운데 기도삽관 없이 시행한 수면 단일공 수술도 100례를 넘겼다.
김 교수는 “폐 재활은 단순한 호흡 운동이 아니라 폐 기능, 근력, 지구력, 영양, 심리적 요소까지 함께 관리하는 과정”이라며 “체계적인 재활은 폐렴이나 무기폐 같은 합병증을 줄이고, 삶의 질과 장기 예후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폐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환”이라며 “ERAS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와 의료진이 회복 목표를 공유하고 단계적으로 실천하면 치료 결과와 삶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