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연구팀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면회 제한 등 비의료적 요인이 국내 고령층의 급성 뇌기능 장애인 섬망(Delirium) 발생을 크게 증가시켰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장기요양시설 거주 고령층에서 섬망 관련 응급실 내원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나, 팬데믹 기간 중 사회적 돌봄 공백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연구팀은 국가응급환자진료정보망(NEDIS)에 포함된 전국 응급실 방문 자료를 바탕으로 65세 이상 고령 환자 8만여 명의 섬망 관련 내원 양상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응급실 내 섬망 환자 비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2017년 1월~2020년 1월) 대비 팬데믹 초기(2020년 2월~2022년 3월)에 29.0%나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외부와의 단절과 환경 변화가 고령층의 인지 기능에 심각한 ‘뇌 기능 불안정’을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팬데믹 후기(2022년 4월~2022년 12월)에는 섬망 환자 비율이 7.8% 감소하며 안정화 양상을 보였다.
섬망 환자의 증가는 특히 65세에서 74세 연령대에서 40.6%로 가장 큰 폭으로 나타났다. 내원 경로별로는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간접 내원 환자의 비율이 27.5% 증가해 장기요양시설 거주 고령층이 섬망에 특히 취약한 집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섬망이 단순한 감염이나 대사 이상 등 의학적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 면회 제한, 돌봄 공백 등 비의료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인지 기능 문제임을 강조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응급실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중등도 환자 비중이 높아진 점도 고령층 섬망 환자에게 구조적인 영향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코로나19 감염 자체의 영향만이 아니라 거리두기 및 면회 제한과 같은 환경적 변화가 고령층의 뇌기능 취약성에 직접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요양시설 등 간접 내원 환자의 섬망 증가는 시설 내 격리 조치로 인한 돌봄 공백이 인지 기능 악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구 책임자인 이경신 주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위기 상황에서 국내 고령층 섬망 환자의 의료 이용 패턴 변화를 전국 단위 응급실 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규명한 연구”라며 “섬망은 조기 발견 시 회복 가능성이 높은 만큼 향후 요양시설, 지역사회, 응급실 간 연계 기반의 조기 인지 및 대응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논문은 응급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Western Journal of Emergency Medicine>에 게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