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신규 간호사 채용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최근 통계를 보면 그런 걱정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전체 간호사 수는 역대급 증가율을 기록했다. 숫자만 보면 겉으론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대형병원으로 인력 쏠림이 더 심해져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간호사 인력은 전년보다 10.61% 늘어 26만 명을 넘겼다. 문제는 증가한 인력 대부분이 상급종합병원(6.76% 증가)과 종합병원(12.50% 증가)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 두 유형의 병원이 병원급 이상 간호사의 69%를 차지한다.
반면 지역 의료의 핵심 축인 중소병원은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급의 증가율이 18.46%로 높게 나왔지만, 이는 만성적 인력난을 어떻게든 메우려는 ‘끓는 물에 솜 넣기’식 채용의 결과일 뿐이다. 요양병원은 3.37% 증가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아예 감소했다. 정신병원은 인력도, 증가 폭도 미미하다. 의료기관 간 간호사 인력 격차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번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단 하나다. 간호사 수는 늘었지만 정작 필요한 현장에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다. 근무 환경, 임금, 전문성 대우에서 대형병원과 비교가 되지 않는 중소병원에 젊은 간호사가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정부는 수년째 ‘간호사 인력 확충’을 외쳤지만 필수 의료의 기반은 더 허약해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말하듯 간호사 인력난의 본질은 단순한 ‘공급 부족’이 아니다. 일할 만한 환경이 없어서 떠나는 게 문제다. 병상이 있어도 간호사가 없고, 간호사가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의료 체계는 당연히 흔들린다. 간호사 배출 규모만 늘리면 해결될 것처럼 접근한 정부의 판단은 근본을 잘못 짚은 것이다.
이제는 말만 ‘필수 의료 강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여 업무 과부하를 막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중소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과 수가 신설, 임금 현실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 대형병원과의 격차를 방치한 채 간호사 인력난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
대형병원 채용이 늘었다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중소병원이 버티지 못하면 대한민국 의료의 허리는 무너진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현장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어디에서 치료받든 최소한의 간호를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그것이 지금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