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인권과 마음 건강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대한간호협회는 21일 간호인력지원센터 강당에서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 발대식’을 열고 간호사의 심리적 상처를 돌보는 전문 상담체계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날 행사에는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을 비롯해 박인숙 제1부회장, 김숙자 정신간호사회장, 이광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희숙 경북대 명예교수, 손봉희 한국에니어드라마 심리상담센터장, 심리상담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사진 가운데>은 발대식에서 “오늘의 출범은 단순한 상담 조직의 탄생이 아니라 무너진 간호사의 인권과 마음 건강을 되찾기 위한 선언”이라며 “간호사의 절반 이상이 폭언과 괴롭힘 등 인권 침해를 경험하고, 피해가 묵살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밝혔다.
신 회장은 이어 “간호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진정으로 지켜진다”며 “간호협회는 제도적 기반과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를 마련해 이 활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훈화 간호협회 정책국장은 이날 간호사 인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간호협회가 지난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간호사 788명 중 66.3%가 1년간 세 번 이상 인권 침해를 경험했으며 주요 가해자는 의사, 선임 간호사, 환자 및 보호자였다.
가장 흔한 인권 침해 유형은 폭언(81%), 직장 내 괴롭힘(69.3%), 성희롱·성폭력(13.8%)이었으며, 피해 후에도 ‘신고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이유로 71.8%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 침해 후 분노와 자존감 저하를 느꼈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고, 자살 충동을 느낀 경우도 17.5%에 달했다.
최 국장은 “피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병원 문화가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며 “간호협회는 고용노동부와의 핫라인 구축 등으로 실질적 신고 보호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출범한 간호사 심리상담 전문가단은 간호인력지원센터 전국 10개 권역, 총 24명의 정신전문간호사와 정신건강 전문요원 1급 간호사로 구성됐다. 이들은 간호협회 산하 간호인력지원센터를 통해 상담을 신청한 간호사에게 1:1 심리상담을 제공한다.
김숙자 정신간호사회장은 “상담은 철저히 비밀을 보장하며, 현장의 공통적인 고통과 구조적 문제를 파악해 협회 차원의 개선 논의로 연결할 것”이라며 “이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건강한 조직 문화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광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시 “간호사 한 명이 좌절하지 않도록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이 첫 단계”라며 “그들의 내면의 힘을 회복시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번 발대식에서는 위계적 병원 문화의 개선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숙자 정신간호사회 회장은 “신규 간호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 민주적 의사결정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며 “의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간호·의료·행정이 상호 존중받는 병원 문화가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제시했다.
최훈화 정책국장은 “간호사가 적정 환자 수를 담당하고 자아실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조직 혁신의 출발”이라며 “이번 심리상담 전문가단이 그 변화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간호협회는 향후 심리상담 지원 사업을 제도화하고, 간호사 인권 보호 조항이 포함된 간호법 제5장(간호사 등의 권리 및 처우 개선)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신경림 간협회장은 “간호사의 마음이 건강해야 환자의 생명이 안전하다”며 “오늘의 출범이 간호사의 존엄과 회복을 상징하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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