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숱한 시련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국민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힘을 일깨워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국가와 국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달았고,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 함께 잘살자”는 정신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재건을 이끈 가치이자, 오늘날까지 이어져야 할 시대정신이다.
이 정신을 의료 현장에서 오랫동안 실천해온 단체가 있다. 바로 의료봉사 연합동아리 원더스(WONDERS)다. 1968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한의과대학·간호대학·치과대학의 학생과 졸업생들이 모여 출범한 원더스는 우리 사회 의료 접근성이 취약했던 무의촌 주민들을 위해 시작됐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 장비와 의약품을 마련해 직접 현장을 찾아갔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 이는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한국 의료의 공백을 메우려는 진정성 있는 움직임이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원더스는 봉사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매년 여름·겨울 방학을 이용한 대규모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매월 정기 봉사를 통해 지금까지 1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을 만났다. 의료인이 되기 전의 학생들이 현장에서 마주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의료인의 사명감을 일깨워 준 스승이기도 했다.
이러한 봉사의 정신은 졸업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원용 초대 회장(의대)과 신응범 동문회장(치대)을 비롯한 선배들은 ‘봉사의 씨앗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지금까지 총 2억 원이 넘는 장학금이 마련돼 203명의 재학생들이 도움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금전적 지원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너희가 걷는 길은 사회와 함께하는 길”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원더스의 정신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 전체가 얼어붙었던 시기에도 원더스는 방역과 검사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의료인 양성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또한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불거졌던 시기에도 원더스는 환자와 주민을 우선시하며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의료”를 몸소 보여주었다.
원더스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이다. 이 말은 원더스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서로 다른 학문과 직종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로 봉사하는 경험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봉사의 기회를 넘어, 의료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 태도와 협업의 가치를 가르쳐 준다. 이는 현대 의료 현장에서 더욱 절실한 덕목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 지역 간 의료 불균형, 코로나19 이후의 보건 위기 등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더스가 걸어온 길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의료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존엄을 지켜내는 일이자, 공동체 전체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봉사의 길은 곧 함께 잘 사는 길이다. 원더스가 지난 50여 년간 보여준 발자취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지켜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더스의 역사가 단지 한 대학의 동아리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연대와 화합의 문화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이지아 경희대 간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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