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흔히 환자 곁에서 따뜻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단순히 환자를 간호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의료 시스템의 틈새를 메우고 조직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핵심적인 ‘그림자 노동’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출간된 다비나 앨런의 저서 <간호사의 그림자 노동>은 간호사들의 ‘보이지 않는 일’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들의 사회적 기여를 재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간호사가 어떻게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지를 풍부한 현장 사례와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밝혀낸다.
이 책에 따르면 간호사는 단순히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조력자가 아니다. 그들은 병원 내 여러 부서와 직종을 연결하는 ‘조율자’이자 ‘의무통과점’ 역할을 한다. 환자가 입원부터 퇴원까지 거치는 복잡한 치료 과정에서 간호사는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며,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이는 환자의 치료 궤적이 끊기지 않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핵심적인 업무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서 퇴원을 앞둔 환자의 집 열쇠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의사가 빠뜨린 약 처방 때문에 퇴원이 지연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간호사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하고 약사와 협의해 임시 조치를 취한다. 이러한 유연하고 즉각적인 대처는 공식적인 매뉴얼에 없는 ‘조직화 업무’이며, 의료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다.
또한 간호사는 개별 환자의 요구와 병원 전체의 시스템적 요구를 동시에 고려하는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 환자가 특정 시설로 옮겨가기를 원할 때, 간호사는 단순히 환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해당 시설의 수용 가능 여부와 병원 전체의 병상 운영 상황까지 파악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의사가 개별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간호사는 시스템 전체를 조망하며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간호사의 이러한 조직화 업무가 단순히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전문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간호사가 수행하는 보이지 않는 일, 즉 ‘그림자 노동’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간호 인력 교육과 인력 구성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호사의 그림자 노동>은 간호라는 직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며, 병원의 중심 축에서 빛을 발하는 그들의 숨은 가치를 조명한다. 이 책은 간호학 연구자, 의료 행정가, 그리고 의료 시스템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저자 다비나 앨런, 번역 이지윤, 김형숙, 전경자, 김수련, 3만7000원, 264쪽, 한울 아카데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