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요양시설에서 입소 노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는 여전히 법과 제도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치매, 뇌졸중 등 복합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이 급격히 늘고 있는 현실에서, 간호사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복합 만성질환 속에 놓인 요양시설 노인들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보건복지부 용역으로 수행한 ‘요양시설 내 적정 의료행위 범위 설정 연구’에 따르면 장기요양수급자는 평균 3.5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3개 이상 질환을 보유한 비율은 67.2%에 달했다. 치매·뇌졸중 환자 비율은 56.4%로 절반을 넘는다.
이처럼 복합 질환이 일상인 요양시설에서 상주 의사가 없고, 간호사마저 제한된 범위의 업무만 가능하다는 것은 곧 건강관리 공백을 의미한다.
간호사 부재로 인한 건강관리 사각지대
현재 계약의사가 월 2회 이상 방문하지만, 실제 활동은 단순 진찰과 처방 발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간호조무사를 포함하더라도 간호관련 인력이 근무하는 요양시설은 25% 미만으로, 전문 간호사의 상시 배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상태가 악화하 경우 입소 노인은 외부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가정간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며, 이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불편·불안을 안기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간호사 역할 확대, 법·제도적 뒷받침 필요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요양시설 간호사의 역할 확대를 제안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요양시설 관계자의 80.3%, 계약의사의 61.8%가 “간호사의 일부 처치를 허용하기 위한 규정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간호사를 단순 건강관리 인력이 아닌 △질환 악화 예방 △약물·투약 관리 △필요 시 간호 처치 수행 등을 책임지는 핵심 의료·돌봄 인력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는 간호사 의무 배치가 필요하며, 기준은 입소자 50명당 1명, 장기적으로는 25명당 1명 이상으로 제시됐다. 계약의사의 75.4%, 시설운영자의 69.2%가 이에 동의했다.
허용해야 할 의료행위와 실행 방안
간호사가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로는 △혈액·소변 등 검체 채취 △수액·항생제 주사 △비위관·도뇨관 삽입 △욕창 및 상처 관리 등이 제시됐다. 이러한 처치는 의사가 발급하는 ‘요양시설 간호지시서’에 따라 수행하도록 해 안전성과 법적 근거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계약의사의 69.7%가 간호지시서 발급 의향을 밝혔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입소 노인의 건강을 상시적이고 밀착적으로 관리하려면 간호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