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정책은 그 어떤 사회정책보다도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특히 간호사와 같이 환자 곁에서 의료를 직접 수행하는 인력의 교육과 자격관리는 국민 생명 안전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엄격해야 하고, 체계적이어야 하며, 검증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진료지원 업무 수행 간호사’ 제도의 교육 방식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명분으로 교육기관을 별도의 심사 없이 ‘신고제’로 등록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 이수 여부는 병원장의 확인서 하나로 갈음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양성된 간호사가 수술실 등 중요한 진료 현장에 투입된다는 발상은 의료계는 물론 국민 다수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신고제란 말 그대로 누구나 교육기관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천 개 교육기관에서 수만 명이, 수백 가지 방식으로 교육을 받는 상황을 단 몇 명의 공무원이 명단 파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행정 환상일 뿐이다. 표준화된 교육 과정도 없고, 교육 품질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도 없으며, 자격 검증을 위한 시험이나 평가도 없다면 이는 의료인의 최소 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이 같은 신고제 방식은 사실상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는 단순 보조가 아니라, 일부 의사의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고난도의 행위다.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전문성과 실무 능력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부적절한 처치 등이 발생할 경우 환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며, 이로 인한 법적 분쟁과 국민 불신은 고스란히 의료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간호계는 정부에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 진료지원 간호사의 교육과 자격을 총괄하는 통제 기구를 마련할 것. 둘째, 전국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구축할 것. 셋째, 자격증 제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도를 공식적으로 인증할 것. 이는 결코 간호계의 기득권 주장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