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현대간호를 기리며〉가 세계 최대의 정원 및 원예박람회인 첼시 플라워쇼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정원은 내년 5월 영국 세인트토머스병원에 영구 설치돼 병원 직원과 환자들을 위한 회복정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이 어떻게 설계되고 꾸며졌는지부터 정원에 담긴 나이팅게일의 유산과 정신, 글로벌 팬데믹과 간호전문직에 주는 교훈, 은메달 수상의 의미까지 살펴본다.
다음 기고문은 한국전통조경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탁영란 한양대 간호학부 교수가 집필했다.
[편집자주]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 모습으로 버데트간호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된 영상에서 캡쳐한 사진임.영상출처 및 바로가기
https://www.btfn.org.uk/florence-nightingale-garden/
세계 최대 정원축제에 마련된 나이팅게일 가든
방문객들에게 간호와 치유의 힘 전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현대간호를 기리며>가 108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큰 정원축제인 ‘첼시 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 2021)’의 ‘쇼 가든(Show Garden)’ 분야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의 원제는 ‘The Florence Nightingale Garden:A Celebration of Modern-Day Nursing’이다.
이번 은메달 수상은 세계 각국의 간호사들이 코로나19와 길고도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의 나이팅게일들’에게 큰 격려와 응원의 힘을 전하는 반갑고도 영광스러운 소식이었다.
첼시 플라워쇼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Royal Horticultural Society)가 매년 5월 런던 첼시에서 개최하는 일명 ‘위대한 봄의 축제’로 불리는 대규모 정원 전시회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은 지난 2020년 위대한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전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첼시 플라워쇼가 연기됨에 따라 해를 넘겨 올해 9월 실현됐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에는 쾌적하게 살랑거리는 바람결을 따라 가을 초화인 과꽃과 에키나시아, 보랏빛 버베나가 어우러지며 피어 있고, 그 사이로 억새풀이 살짝 눈길을 끌어올린다. 줄지어 동그란 주목은 다소곳이 몸을 낮추어 초록의 물결을 이어간다.
특히 팀버 목재 벽체에 음각되어 새겨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친필 글에서는 그녀의 열정과 혁신의 정신이 방문객들의 마음에 간호와 치유의 힘을 전해주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은 버데트간호재단(The Burdett Trust for Nursing)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로부터 시작된 현대간호를 기념하고, 오늘날 건강 옹호자로서 활약하는 간호사들의 사명을 더욱 고취하기 위해서다.
버데트간호재단은 간호사들이 최선의 간호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힘을 북돋우기 위해 2002년 설립됐다. 간호사들을 위해 보다 나은 근무환경을 조성하고, 간호전문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 기념해 기획
“자연을 통한 회복” 주제로 정원 조성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은 영국 조경가 로버트 마이어(Robert Myers)가 설계했고, 보울러 앤 와이어(Bowler & Wyer)가 시공에 참여했다.
정원의 주제는 “자연을 통한 회복(Nurture through Nature)”이다. 자연환경 혹은 정원을 통한 회복이야 말로 가장 빠른 건강회복의 지름길이라는 영감하에 현대간호가 건강회복을 위한 지름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회복을 위한 공간인 정원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건강과 안녕을 위한 간호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정원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고자 계획됐으며, 현대간호를 창시한 역사적 인물이자 혁신의 아이콘인 나이팅게일의 전설과 유산을 담고 있다.
설계자인 조경가 로버트 마이어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정원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현대간호의 표준과 병원설계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하고 주도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자연친화 소재를 활용하고, 생동감 있는 자연적 혼합 플랜팅으로 하이라이트를 주며, 건강과 회복에서 녹지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현대간호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한 그녀의 정신적 유산을 기리려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따른 의미와 상징성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박물관에서 많은 조사와 탐구를 거쳤다”면서 “역사적 유산을 현대간호와 연결하기 위해 조경가로서의 열정과 도전을 담아 설계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혁신의 아이콘 나이팅게일 생애 담아
친환경 자재 사용 --- 약용식물들 심어
이 정원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생애를 환기시킨다.
특히 친환경 자연친화적 최신 건축자재인 CLT 목재를 이용한 조형적 퍼골라는 나이팅게일이 병원설계에서 추구한 혁신의 정신을 보여준다. 자연친화 건축소재를 이용한 병원건축의 현대화에 선도적 주창자였던 나이팅게일의 업적과 자연채광 및 감염예방을 위해 교차환기를 강조했던 탁월한 의료적 통찰을 재료와 조형미로 그대로 드러낸다.
정원 후면에 조성된 수(水) 공간은 깨끗한 물과 오수처리, 손씻기에서 보여준 그녀의 환경과 건강에 대한 신념을 보여준다. 초화 및 정원 플랜팅은 그녀가 어린 시절 즐겼던 압화 수집 취미와 식물 애호를 나타낸다.
나이팅게일이 특히 좋아한 작약과 양치류, 여우장갑, 디기탈리스 퍼푸라와 루테아 등은 물론 오이풀, 바레리안, 블랙 달리아와 여러 종의 에키나시아 등 19세기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의학에서도 여전히 활용되는 약용식물들이 혼합 식재됐다.
대황과 개암나무 등 나이팅게일이 지역사회 방문간호(District Nursing)에서 사용한 이른바 ‘간호가방 속 약용식물’도 포함됐다.
나이팅게일 친필 글 목재에 새겨
독서하는 사진 유리 벽면에 투영
나이팅게일의 끊임없는 관찰력과 철저한 기록의 습관을 형상화하기 위해 목재 벽체에 그녀의 친필 글을 음각했다. 유리 벽면에는 그녀가 정원에서 사색하고 독서하던 모습의 사진을 투영함으로써 보건의료 혁신을 위한 광범위한 저술활동을 기리고 기념하고자 했다.
또한 정원의 오솔길을 따라 작은 원형 동판을 배치했다. 이는 현대 간호교육의 시초인 세인트토머스병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 졸업생에게 수여하던 ‘나이팅게일 배지(Nightingale Badge)’를 최근 복제한 상징물이다. 나이팅게일의 현대간호 정신이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짐을 상징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동판의 크기를 확대 배치했다. 미래 보건의료 분야를 이끌어갈 간호사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염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현대 병원설계의 선구자 나이팅게일
정원, 병원 내 건강과 회복의 공간
나이팅게일이 현대 병원건축에 기여한 점으로는 병원 내 감염예방을 통해 질병의 감염원을 차단하는 환경설계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강력히 주장했던 이른바 ‘파빌리온 스타일’ 병원 양식은 환자를 감염원으로부터 차단하고, 병동의 환기와 채광을 최적화해 회복적인 병원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역사상 최초로 환자의 안전을 위한 감염관리와 건강회복을 위한 병원설계로 평가된다.
또한 병원 내 회복공간으로 정원을 활용함으로써 자연과의 접촉이 갖는 회복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파빌리온 스타일에 코트야드를 추가한 나이팅게일식 병원설계 모델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과 영국 등 현대 신축 병원의 선도적 모델로 적용됐다. 런던의 세인트토머스병원은 1868년 새로운 부지에 건물을 신축하면서 나이팅게일이 제안한 파빌리온 스타일을 설계에 적용했다.
병원과 의료시설의 정원은 환자와 그 가족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간호사와 의료진들이 양질의 간호와 의료적 돌봄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은 현대사회에서 의료시설의 정원이 환자와 가족은 물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소진을 경험하는 간호사와 의료진 모두의 건강과 회복을 위한 ‘공동의 회복재(restorative commons)’로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년 5월 세인트토머스병원에 영구 설치
건강한 세상 밝히는 희망의 아이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정원〉은 내년(2022년) 나이팅게일 탄생일(5월 12일)에 맞춰 세인트토머스병원에 영구 설치돼 병원의 직원과 환자들을 위한 회복정원(restorative healing garden)으로 활용된다. 현재 코로나19 선별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공간에 설치될 예정이다.
세인트토머스병원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이팅게일의 데이터 분석과 근거기반설계(EBD)를 반영한 ‘파빌리온 스타일’ 병원설계가 적용되었던 곳이다. 환자경험 중심의 안전하며 회복적인 병원건축이 최초로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이다.
또 현대간호 최초의 전문교육기관인 ‘나이팅게일 간호학교’가 1860년 개교한 곳으로서 나이팅게일이 현대간호의 전문성을 위해 노력했던 간호역사의 산실이자 현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박물관’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첼시 플라워쇼 2021’은〈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정원〉을 통해 나이팅게일의 유산과 간호정신을 잘 보여줬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에서 헌신하는 현대의 나이팅게일이야 말로 보건의료시스템의 수호자임을 재확인하고, 현대간호가 건강과 안녕을 위한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새롭게 일깨우도록 했다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22년에는 세인트토머스병원 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가든에서 보건의료체계의 핵심 리더, 팬데믹을 극복하는 히어로, 미래 건강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글로벌 캠페인 “이제는 간호다(Nursing Now)”를 기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간호를 비롯한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사회개혁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이전 시대의 간호와는 차원이 다른 현대간호(Modern-day Nursing)를 창시했으며, 간호를 전문직으로 확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현대적인 간호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함으로써 체계적인 간호교육과 근거기반간호를 위한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여성 최초의 영국왕립통계학회 정회원인 나이팅게일은 병원은 물론 군 의료체계, 지역사회의 건강 및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근거기반정책을 제안했다. 또한 개혁을 이루고자 1만4000통이 넘는 편지와 200편의 이상의 책, 팸플릿, 기고문 등 글을 쓰는 데 평생을 헌신했다.
[글쓴이] 탁영란 한양대 간호학부 교수 / 한국전통조경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