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년 전 여성의 교육권-직업권-참정권 주장
◇당시 신문에서는 '놀랍고 희한한 일' 반응
'여권통문'을 기념하는 표석이 설치됐다. 여권통문은 여성의 근대적 권리인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다.
여권통문은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인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출신의 이소사와 김소사 이름으로 발표됐다. 당시 '소사'라는 단어는 기혼여성을 일컫는 말로 여권통문이 여성에 의해 작성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체적이고 근대적인 여성들이 출현했음을 알리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여권통문은 세상을 향해 여학교를 설립하자고 외치는 내용으로 여성의 근대적 권리인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통문이 신문에 실린 후 최초의 여성단체 '찬양회' 및 최초의 민간사립여학교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한 장소인 당시 '홍문섯골 사립학교'(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백년관 앞)에 표석이 설치됐다.
여성가족부는 여권통문 기념 표석 제막식을 지난 8월말 개최했다. 또한 여권통문의 존재와 역사적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기기 위해 2014년 '북촌에서 온 편지' 특별전, 2018년 '여권통문' 심포지엄, '오늘, 여권통문을 다시 펼치다' 특별전 등을 개최한 바 있다.
여권통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 3가지다.
첫째,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교육권). 교육은 남녀평등의식을 고양시키고 교육을 통해서 여성은 정치참여의식, 직업의 기회를 가진다.
둘째, 여성도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다(직업권). 경제활동은 여성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독립된 인격 확립의 시작이다.
셋째, 여성도 문명개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참정권).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 여성들도 개화정치에 등장해야 한다.
당시 여권통문 전문이 황성신문(1898년 9월 8일) 및 독립신문(1898년 9월 10일)에 실렸고, 발췌문이 제국신문(1898년 9월 6일) 및 독립신문 영문판(1898년 9월 10일)에 게재됐다.
여권통문을 실으면서 황성신문에서는 '하도 놀랍고 신기하야'라는 반응, 제국신문에서는 '진실로 희한한 일이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독립신문 한글판에서는 아무런 사족 없이 전문을 그대로 실었고, 영문판에서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