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간호 공동기획] 국군간호사관학교 - 간호사신문
1. 재난간호에 대한 이해
크리미아 전쟁 당시 나이팅게일 활약
군 간호학 교육이 재난간호 모태 역할
한국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정
ICN-WHO '재난간호 핵심역량 기틀' 마련
사람들은 자신이 뜻한 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거나 일이 자신의 통제 밖을 벗어났을 때 농담처럼 재난을 언급한다. 사전적인 정의의 재난(disaster)은 '나쁘다'의 뜻을 지닌 'dis'와 별의 뜻을 지닌 'aster'가 만나 불운의 별이 떨어져 재앙이 발생한다는 의미의 부정적인 단어다.
간호사들이 알고 있어야 할 재난의 정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재난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사건이며,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분류하고 있다. 자연재난은 태풍·홍수·호우 등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이다. 사회재난은 화재·붕괴·폭발 등으로 인한 피해, 에너지·통신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 감염병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 등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 전쟁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사회재난 중 가장 최악의 재난이다.
그래서 재난간호의 기원을 크리미아 전쟁 당시 나이팅게일의 활약에서 찾을 수 있다. 위생관념이 없고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군 병원에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관리자로서 보여준 활약은 현재 재난간호의 영역과 유사하다. 또한 지난 60년간 군 전투력 보존을 위해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군 간호학을 교육해온 것이 재난간호를 발전시킬 수 있는 모태가 될 수 있었다. 군 간호현장에서 시작된 재난간호를 현대에서는 재난과 관련된 지식과 술기를 체계적이고 융통성 있게 활용하고 다른 전문직과 협동하면서 재난으로 인해 발생한 건강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간호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난의 빈도와 종류가 증가하고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재난을 대비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국제간호협의회(ICN)와 WHO가 협력해 '재난간호 핵심역량 기틀(ICN Framework of Disaster Nursing Competencies)'을 만들었으며, 간호사에게 필요한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WHO에서 여러 보건의료전문직 중 특히 재난에 대한 간호사의 핵심역량을 규명한 이유는 그만큼 재난에 있어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지역사회 및 병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자, 교육자, 정책가, 환자옹호자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보건의료인력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간호사 윤리강령 등에 따라 재난을 포함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책임감이 투철하며, 이미 복잡한 임무를 수행할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재난이라는 특수상황에 대한 교육 후에 즉각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재난대응과 간호사의 역할
초기 대응 - 중증도 분류 - 직접간호 - 교육자 역할
지역주민 맞춤형 재난대비 교육 실시
보건소-응급의료기관 협업에서 중심 역할
의료기관평가인증에 재난관리계획 등 포함
재난에서 중요한 간호사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재난대응체계가 활성화되면서 경찰서, 소방서, 보건소,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 의료기관, 필요시 지원요청을 받은 지역 군부대 등이 협업을 하게 되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다양한 인력들이 대응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재난대응에 참여하는 보건의료인력 중 간호사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없는 대상자를 위해 재난의 단계별로 간호를 제공하게 된다. 간호사의 역할은 단순히 재난대응 이상을 포함한다.
WHO와 ICN에 따르면 간호사는 재난이 발생하면 초기 대응자, 중증도 분류자, 직접간호 제공자, 간호 조정자, 정보 제공자, 교육자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간호사는 평상시부터 개인과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비 계획을 수립하는 일원이다. 그리고 재난이 발생하면 초기 대응자의 일원으로 즉각적인 간호 제공을 통해 최대한 다수의 생명을 구하고, 복구단계에서 추가적인 요구를 파악하고, 옹호자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재난의 전 단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2009년 발표된 `ICN 재난간호 핵심역량 기틀'에서는 간호사의 재난간호역량을 4개 영역, 10개 하위 영역, 130개 하위 영역별 행동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예방완화 역량 = 위험 감소와 질병예방·건강증진, 정책개발과 계획 △대비 역량 = 윤리적·법적 실행과 책임, 의사소통과 정보공유, 교육과 대비 △대응 역량 = 지역사회 관리, 개인과 가족 관리, 심리적 관리, 취약집단 관리 △회복·복구 역량 = 장기적인 개인·가족·지역사회 관리 요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ICN 재난간호 핵심역량 기틀'은 재난 시 일관성 있는 간호를 제공하게 해주며, 위기 의사소통을 돕고, 자신감과 전문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해 다학제적 팀의 일원으로서 간호사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준이 되고 있다.
재난 시 간호사의 역할을 기관별로 구분하면 크게 지역사회 차원의 보건소와 임상을 대표하는 병원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보건소, 종합병원 및 응급의료기관이 재난 시 긴급구조지원기관이 된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의 장은 정기적으로 재난대비훈련 계획을 세우고, 매년 재난대비 훈련을 실시하고 보고해야 한다.
재난관리를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작하게 되므로 여러 기관 중 재난 발생 시 보건의료에 대한 제반 사항은 지역 보건소가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보건소장은 재난 발생 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하고, 다수사상자 발생 시 대응훈련을 연 1회 실시해야 한다.
이때 보건소 간호사는 재난관리계획 구성과 재난현장에서의 소방서, 지역 응급의료기관과의 협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주민과 노약자,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접근하기 용이하고, 건강정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 간호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건강교육을 하고 있으므로 재난대비 교육을 실시하기에도 적합하다. 특히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방문간호사는 정기적인 가정방문을 통해 대상자에게 건강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재난 대비를 위한 교육을 주민들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병원 역시 재난 대응기관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의료기관평가인증 항목에 재난관리계획, 지역사회 재난 파악 및 모의훈련 연 1회 실시 여부가 포함돼 있다. 재난상황 시 병원 간호사는 원내에서는 평상시 간호와 구별되는 건강관리 제공, 희소자원 관리, 진료 조정, 진료표준 변경 여부, 선별검사, 평가, 감염관리, 취약집단 관리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병원은 24시간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으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다수의 사상자를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재난대응계획이 마련돼 있어야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해 다수 사상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때로는 병원 자체도 재난현장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간호사는 24시간 늘 병원을 지키고 가장 병원을 잘 아는 보건의료인력으로서 재난대응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병원 간호사는 직접 재난현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재난현장으로 파견되는 재난의료지원팀의 일원이 되며 이때 재난의료지원팀의 주된 역할인 중증도 분류, 응급처치 및 이송을 팀원들과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간호사는 재난관리의 모든 단계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간호사가 재난 시 대응역량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재난에 대한 교육과 정기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재난은 가장 마지막에 경험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간호사들은 평상시에 실전처럼 재난상황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해야만 실제 재난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가능한 한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3. 재난간호 전문인력 양성
국군간호사관학교, 재난교육의 메카
간협 위탁 ‘재난간호교육과정’ 운영
도상훈련-시뮬레이션-모의종합훈련 등
실습 위주 교육 통해 간호사 역량 강화
간호사는 재난의 위험을 사정하고 다학제적 관리 전략을 수립해 재난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재난의 규모, 유형, 상황에 따른 건강문제를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활용 가능한 자원을 이용해 이를 해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WHO와 ICN에서 강조하는 재난간호 핵심역량은 윤리적, 법적인 쟁점에 대한 의사결정, 치료원칙, 간호제공, 건강문제 사정과 계획, 안전과 보호, 의사소통과 대인관계, 공중보건, 응급상황에서의 건강관리 체계와 정책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난간호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재난간호 전문인력 양성과정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재난간호교육과정(80시간)'이 있다. 재난간호교육과정은 대한간호협회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에 개발 및 운영을 의뢰한 간호사 대상의 재난간호 보수교육 프로그램으로 2008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다. 2018년까지 총 294명이 이수했으며, 지역 의료기관과 보건소, 간호대학 등 소속기관에서 재난 대비대응 계획 수립 및 훈련, 교육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재난간호교육과정'에서는 국내외 재난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재난간호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재난의 4가지 단계인 재난 예방과 대비, 대응과 복구를 총체적 관점에서 다루며 재난관리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본 과정에서는 교육의 질 관리와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 과정별 참여인원을 3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이론과 토의, 단계별 실습과 종합훈련으로 구성된 80시간 교육과정 중에 모든 대상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돕는다.
주요 교육내용은 △재난에 대한 개념과 유형, 재난관리 과정, 국가재난관리 체계 등 전반적인 재난간호 이해를 돕는 '총론' △재난을 최소화하고 대비하기 위해 지역사회, 의료기관, 긴급구조와 현장을 중심으로 그 역할을 배우고 훈련하는 '재난예방·대비단계' △의료기관과 재난현장에서 중증도를 분류하고 주요 외상별 응급처치·환자간호, 이송을 시행하는 '대응단계' △재난의 취약계층 간호와 심리사회적 간호, 위기 의사소통, 재난 시 법적·윤리적 쟁점, 해외 긴급구조 등을 다루는 '복구단계' △방사선, 생물과 화학 재난과 같은 '특수재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재난간호교육과정 이수 후에는 국군간호사관학교장과 대한간호협회장 공동명의의 수료증을 받게 된다.
교육은 강의와 문제중심학습법(PBL)을 토대로 한 조별 토론과 발표, 대량 재난환자 처리를 위한 도상훈련, 고성능 환자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실제와 유사하게 연출한 재난상황 대응 모의종합훈련 등으로 진행된다. 강의를 통한 일방향식 지식 전달이 아닌 재난상황에서의 간호사의 실제 역량 향상을 위한 실습 위주의 교육이다.
재난간호는 급성질환이나 외상을 가진 환자에게 간호를 제공하는 응급간호나 외상간호와는 차별화된 영역이다.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비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재난간호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간호실무에서 최선을 다해 소임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재난간호 역량을 향상시켜야 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또한 급변하는 의료환경 속에서 주기적이고 계속적인 보수교육을 통해 자질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재난간호 역량 유지를 위한 정기적인 교육과 함께 중요한 것이 학술연구이다. 특히 재난과 관련된 연구는 최근 들어 간호학계에서 간호사나 간호학생 대상의 재난교육과 관련된 연구 위주로 진행이 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학술연구과 함께 생성된 재난 관련 지식을 전파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재난분야 연구 및 실무 발전을 위해 2009년도부터 국제재난간호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nce on Disaster Nursing, ICDN)를 개최해오고 있다.
2018년 제7회를 맞이한 국제재난간호컨퍼런스는 세계 각국의 재난 전문가들이 모이는 한국 대표 재난간호 학술대회로서 재난 관련 최신 경향을 공유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4. 재난관리 시스템 개선과제
재난교육, 의료인 의무교육으로 제도화해야
재난대응 의료인력 체계적 관리 위해
일원화된 정부 전담부서 필수
재난관리의 목적은 지역사회가 위험과 재난 대처능력을 보유하게 하고, 보다 안전한 지역사회를 구축하게 하는 데 있다.
재난관리는 재난의 발생위험을 경감시키고, 대비·대응·복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재난관리 역량 구축 및 유지, 개선에 필요한 모든 활동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재난의 개념 통합 및 효율적인 재난관리체계 확립,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재난관리 현장대응 강화, 재난관리 종합체계 구축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재난인 경주와 포항 지진, 사회재난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인적 피해가 있을 때마다 의료인 개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재난관리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체계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제언은 크게 두 가지로 할 수 있다. 의료인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 교육받은 의료인에 대한 관리이다.
첫째, 재난대응 인력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단순히 강의식 교육의 경우 재난상황에서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토의, 실습, 훈련 등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실습이나 훈련을 위해선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므로 개별 교육기관이 아닌 국가주도의 교육기관 지정이 필요하다.
특히 의료인의 의무교육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의료인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지정된 감염관리, 의료법령, 의료윤리, 성희롱·성폭력 예방 등과 같이 재난대응 업무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둘째, 효과적인 재난관리를 위해서는 미국, 일본과 같이 전담부서에서 의료인력을 관리해야 한다.
현재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에서 재난을 총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의료인의 대응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해당해 보건복지부에서 대부분 총괄하게 되며, 발생한 재난의 유형과 장소 등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병원의 재난대응은 보건복지부, 방사능 재난의 경우는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신종감염병과 같은 생물재난은 질병관리본부, 재난현장 출동은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는 보건소 등으로 업무가 나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의료인에 의한 초기대응이 사망이나 부상과 같은 인적 피해 최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격을 갖춘 또는 관련 경험이 있거나 교육을 받은 인원을 적시적소에 투입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면, 해외재난 발생 시 우리 정부가 파견하는 해외긴급구호대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의해 인력 관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국내 재난대응에는 이러한 노력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보건복지부와 같은 재난 의료대응 총괄부처에 전담부서를 설치해 재난의료 인력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고 현황을 유지하는 등의 체계적 활동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