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후송간호사로 에어앰뷸런스를 타고 전 세계를 누볐다.
젊은 시절 외국에서 잠시 생활하며 한국이 아닌 국제사회에서 간호사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리고 1998년 ‘인터내셔널 SOS'에서 후송간호사로 일하며 그 바람을 이뤘다.
인터내셔널 SOS는 글로벌 응급의료 지원회사다. 의료전용비행기인 에어앰뷸런스와 전 세계 70여개 지역에 클리닉을 운영하며 해외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24시간 응급의료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는 베트남과 베이징 지사에서 후송간호사로 일했다. 업무나 여행 등을 위해 오지나 개발도상국을 찾았던 회원들이 사고를 당하면 SOS 콜센터의 명령을 받아 의료팀을 꾸려 현장으로 출동했다. 출동 전 에어앰뷸런스의 의료기구와 장비를 점검하고 응급비상약 등을 준비하는 것부터 일의 시작이다.
사고 발생 지역에 도착하면 1차 응급치료를 하고 후송업무를 진행한다. 후송 중 비행기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간단한 베드사이드 케어에서부터 CPR, 인공호흡기 관리 등 중환자간호영역까지 수행한다. 한국 병원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근무를 했던 경력이 후송간호사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
9년여간 에어앰뷸런스를 타고 세계를 누비다 보니 임상간호의 표준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47세 나이에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도전은 이미 시작됐고, 매일의 일과들이 새로움과 떨림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UC샌디에이고병원과 앨바라도병원 두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UC샌디에이고병원에서는 에이즈병동에서 일하고 있다. 에이즈환자 간호는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에이즈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것이 더 두려웠다. 근무시간 이외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지냈다.
에이즈병동에서는 교육이 간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부족한 내 영어로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가는 무척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원칙을 정했다. 천천히, 서서히, 당황하지 말자. 이렇게 하니 환자나 가족들이 나를 더 신뢰하고 기다려 주며 믿음을 보여줬다.
앨바라도병원에서는 죄수병동에서 일한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죄수들을 연방정부로부터 위탁받아 돌본다. 이곳에도 총상환자와 같이 한국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환자가 많아 또 다시 책과 씨름해야 했다.
최근에는 종교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진행하는 해외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의 내 인생을 보면 걷지 않고 늘 뛰었던 것 같다.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은 간호사라는 전문직을 가졌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