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붕어빵에서 배우는 성실함
[울산 화산보건진료소장] 변묘숙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3-11-13 오전 10:43:24

지난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동경을 다녀왔다. 지인의 갑작스런 권유로 준비 없이 급하게 떠나게 됐다. 비싼 물가는 알고 있었지만 민박집까지의 전철표 한 장이 우리 돈 만원임에 깜짝 놀랐다. 머무르는 동안 민박집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온 것이 다행이었다.
과거사니 뭐니 하는 것보다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질투심으로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일본은 확실히 우리보다 앞서가면서 잘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됐다.
무엇을 보고 느끼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편적이나마 일본의 저력을 동경시내 중심가에 있는 붕어빵가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도 맛 보고간 붕어빵집이라기에 굉장한 곳인가 보다라고 짐작했지만 두서너 평 남짓한 가게는 대통령이 왔다간 집이라고 하기엔 외관이 너무 초라했다. 게다가 긴 줄을 아랑곳하지 않고 붕어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일본사람들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저렇게 뱀또아리 틀듯 긴 줄이 이어지고 있는데 답답하기 그지없이 크지도 않은 동그란 빵 틀 하나로 한사람이 붕어빵을 굽고 있다는 거였다. 빵이 구워져 틀 밖으로 나오면 중년 여인 한 분이 조금 탄 듯 느껴지는 지느러미부위를 가위로 오려 종이봉투에 넣어주는 걸로 공정은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어느 단계 하나도 대충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지느러미를 오리는 일은 대충 손으로 처리해도 상관없을 듯한데 이마저도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최종 마무리하듯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맛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어쩜 이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 싶게 몸통을 팥 앙금으로 꽉 채워버린 맛있는 일본 붕어빵에 대해 할 말을 잊었다. 이런 맛이라면 어디서고 달려와서 누군들 줄을 서지 않겠는가.
놀란 것은 기계를 몇 대 더 갖추어 놓고 빵을 구워 판다면 주인 입장에서는 수익이 더 올라 좋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다리지 않아 좋으련만 한 대의 기계로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조상의 얼을 받들어 가업을 이어가고 싶은 그들만의 고집인지 아니면 고도로 기획된 전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가게 좌우 어디에도 오리지널을 흉내낸 아류들이 없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라고 말았다.
우리의 붕어빵을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된다면 식구들 모두 제각기 빵 틀을 차고앉아 정신없이 빵을 구워낼 것이다. 나날이 부자가 되는 붕어빵집 때문에 못내 속이 불편했던 이웃가게들은 어느 날 다같이 변신을 꾀할 것도 분명하다. 원조붕어빵집, 진짜원조붕어빵집, 옛날원조붕어빵집, 또원조붕어빵집, 또또원조붕어빵집, 원조원조붕어빵집 ….
어디멘가 있다는 소문난 붕어빵집을 찾아 사람들이 찾아들겠지만 정말 원조를 맛보고 싶었던 많은 사람들은 마을 초입에서부터 현란한 아류 간판들의 어지러움에 정신을 잃고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현장만 확인하고 떠나지 않겠는가.
일본의 그 붕어빵이 대를 이어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한마디로 `맛에 대한 성실함'이라고 대답하겠다.
성공의 요소에는 뭔가 독특한 비결이 있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참 단순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갈망만큼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동경의 작은 붕어빵 가게는 나를 뒤돌아보게 하였다.
변묘숙(울산 화산보건진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