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봉사하며 가슴을 나누는 귀한 만남 배워
[전북대병원간호사] 박정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3-04-24 오후 14:05:02

이기적이고 반항적인데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은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나다. 이런 나에게 이웃을 사랑하면서 함께 돕고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어 준,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작은 사슴의 섬, 바로 소록도다.
인터넷 다음카페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소사모)의 일원으로 소록도 봉사활동에 나선 횟수가 지난 2월로 어느새 일곱 번째가 됐다. `작은 사슴의 섬'이라는 뜻을 지닌 소록도는 한센병 환우들이 일제 때 강제로 격리 수용돼 현재까지 살고 있는 곳이다. 단순히 전염병 환자 격리를 넘어서 강제 노동력 착취와 단종, 구타 등으로 시련의 삶을 살아온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소록도는 환우들의 노고로 우리나라에서 조경이 잘 돼 있기로 유명한 곳이 됐으며, 손과 발은 비록 한센병으로 떨어져 나갔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하며 포기하지 않는 삶과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의 터전이다.
소사모는 소록도에 대한 사랑의 실천뿐만 아니라 소록도 환우들의 인권복지와 일제시대 받았던 참혹했던 처우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위해 힘쓰는 단체다.
1997년 처음 소록도를 알게 된 이후 많은 환자들을 만나 정을 쌓아왔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올해로 102세가 되신 정활수 할아버지다. 소사모 여름캠프를 통해 만나 뵌 이후 서신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나를 위로해 주시기도 했는데, 봉사활동을 마치고 헤어질 때 내가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울자 할아버지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울지 마라 아가, 세상 사람이 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돼 있으니 우리 웃는 낯으로 헤어지자"라고.
그러던 할아버지께서 이젠 "이번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먼저 눈물을 보이신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그런 걱정은 마세요. 이번 여름에 올 때는 할아버지와 같이 산책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는 나와의 여름 산책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놓지 않을 것이다. 삶의 끝이 있는 건 알지만 쉽게 보내드리고 싶지가 않다.
소록도의 착한 나환자들을 대하며 질병과 간호사의 만남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만남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귀중한 배움이 평소 병원에서 환자들을 간호하는데도 좋은 밑거름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박 정 은 (전북대병원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