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간호사"
한명자 <미 중서부한인간호사협회 이사>
[미중서부한인간호사협회 ] 한명자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09-27 오전 10:45:19

백의의 천사. 한국인들은 간호사를 일컬어 이렇게 부른다.
나의 어머니는 '백의의 천사' 가운데 한 분이셨다. 그녀는 일제시대인 1930년대와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에 간호사와 조산사로 활동하셨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어머니 사진들을 가지고 있다. 밝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고 계신 어머니는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답고 당당해 보이셨다.
사진속의 어머니는 강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 직업을 가지고 외부에서 활동하던 여성이 흔치 않던 당시의 한국문화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어머니는 놀라울만큼 현대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를 갖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척자, 일하는 엄마, 동정 많은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내 간호의 영감이었다. 1968년에 나는 어머니의 소명을 이어 받아 간호사가 됐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큰 일을 하길 원했다. 슈바이처 박사가 세운 아프리카 우간다의 랑바레네 병원에서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어릴적 내 꿈이었다.
해외 취업을 시도했었지만 영어실력이 부족해 탈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내 게 오랜 시간을 걸려 극복해야 했던 쓰디쓴 실패였다.
뒤돌아보면 외국으로 나갈 수 없어 화가 났었던 것 같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했던 것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내 마음과 영혼을 그들에게 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이런 일들을 돌아보면 낯설기마저 하다. 간호사가 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곳 미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많은 일들을 성취했다. 비록 아프리카에 가도록 허락하진 않았지만 '간호'는 필요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지금껏 나는 칭송받거나 유명하진 않지만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일해왔다. 또한 내가 일하는 곳은 아프리카만큼 이국적이고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간호사로서의 내 모든 삶은 고통스러운 실패를 통해 단련돼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간호사로서의 내 모습에 만족하기 때문에 항상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간호사는 굉장히 멋진 전문직이다. 나는 간호사가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매일 아침이면 누군가의 백의의 천사가 되기를 마음속 깊이 소망하며 병원을 향한다.
한명자 <미 중서부한인간호사협회 이사>
※ 이 글은 미국 스웨디쉬병원이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는 왜 위대한 전문직인가?'를 주제로 공모한 에세이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