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의 첫 발자국
유정아 소위
[소위] 유정아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1-07-26 오전 10:46:33

간호장교로 임관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됐다.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과 같다고 했던가? 언제 이렇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사관생도시절 '간호장교가 되면 환자들에게 이것만은 꼭 해줘야지'라며 나 자신과 약속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4개월동안 그 약속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분주하게 생활했다. 단지 새로운 환경에 어서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반병동도 아닌 중환자실이라는 것을 무기로 내세워서 말이다.
중환자실은 무의식 상태인 환자의 신체적 간호에서부터 의식이 있는 환자들의 정신·영적 간호까지 그야말로 4년동안 학교에서 배운 전인간호를 실천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다이아몬드를 단 햇병아리 간호장교인 내가 선배들처럼 능숙하게 간호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모자란 것 투성이었다. 수년간의 준비끝에 발사된 인공위성도 자기궤도을 찾아 맡겨진 임무를 다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는데 어쩜 내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산소호홉기 없이는 잠시도 숨을 쉴 수 없는 환자들을 보면서 매일매일 어서 속히 좀 더 능숙하게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간호장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간호장교로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군 장병 한명을 살려내면 한사람분의 전투력은 보강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한 장병이 치유됐을때 동료 전우들이 느끼게 되는 심적 안정감과 그로인해 증진되는 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다보니 어느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가 없게 됐다.
사고는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 전역을 하루 앞두고 사고로 경추손상을 입은 장병이 입원했다. 하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더 이상의 손상을 예방하는 일과 정서적 지지가 전부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환자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전류가 흐르는 것같은 온몸의 통증 때문이라기 보다 회복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절망의 울부짖음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도 나는 환자의 아픈 몸을 주물러주며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환자는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도리어 내게 위안을 주었다.
중환자실. 환자를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소진시켜야 하는 곳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났을 때 나 자신에게도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환자가 회복돼 일반병동으로 옮겨지게 될 때 비로소 내게 맡겨진 사명을 다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면서 말이다.
생도시절 임상에서 활동하다 보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말을 듣곤 했다. 간호장교로 중환자실에서 보낸 몇 개월동안 그말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됐다. 후배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주고 자기개발을 위해 애쓰는 선배 간호장교들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은 매너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도 모든 장병에게 최선을 다하는 선배들을 본받아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