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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후쿠시마의 밤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5-12-16 오전 11:18:34
오주훈(삼육보건대 간호과 3학년)



후쿠시마에 밤이 찾아왔다. 방제 펜스 너머로 야간 작업등이 보였다. 발전소의 깨진 지붕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불길한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정찰기가 점멸등을 깜박였다. 똑, 똑, 똑. 붉은 빛이 규칙적으로 하늘을 적셨다. 항적 아래에는 수상한 웅덩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죽음을 머금은 채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시커먼 구멍들.


창밖 너머로 별빛이 가득했다. 자정의 시간을 기다려온 첩자처럼 살의를 품은 빛이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말미잘이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피 묻은 촉수를 꿈틀거리는 식인 말미잘. 소리를 지르거나 불을 켜는 것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난 이 불길한 밤을 조금은 즐기고 싶었다. 자연스레 클리토리스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신중하면서도 다급히 그것을 자극했다. 까끌까끌했다. 그러더니 점점 끈적거리는 질감으로 변해갔다. 달아오름 같은 진부한 감각은 없었다. 다만 처녀의 그것처럼 쓰렸다. 따끔거리고 알알했다. 잠시 후 지스팟이 떨리기 시작했다. 별빛과 말미잘을 나직한 신음소리가 뒤덮었다. 나는 적지에 남은 최후의 병사요, 절정의 순간에 장렬히 전사하리라. 신에게 자비를 구원하는 자들은 바보들이다. 신은 이미 인간에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단을 제공했다. 수십 억 년 진화의 역사는 결코 헛된 세월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내 생각에 료코 할머니는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도 우리를 지켜주시옵고,” 옆방에서 그녀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구원해주시옵소서.” 초겨울 습기로 눅눅해진 다다미 사이로 그녀의 중얼거림이 배어들었다. 나와 달리 할머니는 경건함으로 이곳의 밤을 견디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경건함은 종교인들의 흔한 신앙과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 이 집에 온 날 밤,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신을 믿으시나요.”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야. 물론 앎의 대상도 아니지.”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믿거나 알 수는 없는 법이지.” 내가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왜, 어떻게 기도를 올리나요.” 할머니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왜냐하면 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속이 텅 빈 존재이기에, 어떤 속성도, 성질도, 성격도, 인격도, 신격도 지니지 않은 존재이기에, 그야말로 ‘무’이고, 그야말로 공허이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 있는 자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지. 오직 신만이,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님으로 인해,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네.” 내가 다시 집요하게 물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님은 죽음이 아닌가요.” 할머니가 내 질문을 받아쳤다. “자네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나.”


료코 할머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소개(疏開) 지역 취재라는 표면적 명분 이면에는 죽음의 냄새를 맡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할머니의 집을 찾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다 까마귀 시체들을 봤었다. 수십 마리의 죽은 까마귀들이 꼿꼿하게 강직된 몸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황폐한 잔해와 연기들 사이에서 그것들은 잔혹한 인광을 그때까지도 뿜어대고 있었다.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으며 오직 이국의 바다를 향해 날개 짓을 하다가 몰살당한 단말마가 엿보였다. 난 그 인광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죽음은 매혹이었다. 절멸의 미학. 막 태어나서 우글거리는 구더기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만큼이나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선 늘 매력을 느껴왔다. 어느 날 관계를 마친 후 남자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섹스와 죽음을 결부시킨 좀 식상한 말들도 얼마간 늘여놓았다. 심지어 묘한 여운을 남기며 시간증(屍姦症)에 대해서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는 마뜩하지 않은 표정으로 등을 돌렸고, 나는 그에 대한 모든 입맛이 사라짐을 느꼈었다.


할머니의 기도가 끝난 모양이었다. 침묵 속에서 다다미가 적요한 숨을 쉬었다. 가을이 거의 끝나가고 초겨울에 접어드는 시점인데도 창밖에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이곳 뒷마당의 귀뚜라미는 꼭 자정이 지나 할머니의 기도가 끝나면 소리를 냈다. 그것의 울음소리는 지독히도 규칙적이었다. 물론 귀뚜라미는 대개 정해진 박자를 따라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는 곤충이다. 그런데 이 집 귀뚜라미들은 뭔가가 달랐다. 시간의 분절에 대해 훨씬 더 강박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여는 귀뚜라미들과 달리 이놈들이 내는 소리는 달랐다. 귀뚜라미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물을 그 집요한 박자에 종속시켰다.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그 강박증은 분명 료코 할머니와 상당 부분 연관이 있었다. 그녀는 질서에 대해 보통 일본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병적으로 집착했다. 집안 곳곳에 시계를 부착해 거의 매 시마다 체크했고 모든 집안 물건을 정확한 위치에 따라 배열을 유지했으며 항상 동일한 순서로 집안일을 수행했다. 원전 근처였던 탓에, 대지진 훨씬 이전부터 그녀의 하루 일과에는 가이거 계수기 측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해진 시각에 측정기를 들고 집안과 주변을 돌아다녔다. 일단 각 방의 수치를 측정하고 다음으로 부엌, 욕실, 거실을 측정한 뒤, 베란다를 문을 연 경우와 아닌 경우로 나누어 측정했다. 이어서 현관의 안과 밖을 측정하고 앞마당과 뒷마당의 텃밭과 감나무 아래, 울타리도 측정했다. 집 앞 국도도 반경 이십 미터 정도의 범위에서 측정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모든 측정치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심지어 추이 그래프와 집 주변 오염도를 갱신하기까지 했다.


할머니의 그런 행동은 발전소를 불과 수 킬로미터 앞둔 곳에 일부러 체류하는 것에 비추어 무척 모순적이었다. 그녀와 세 번째로 맞이하는 아침 식사 자리. 난 조심스레 질서에 대한 그녀의 집착을 언급하며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할머니가 숟가락을 든 채 말했다. “규칙과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현기증을 느낀다네. 하다못해 고인 빗물이 평지 위로 아무렇게나 퍼지며 흘러 다니는 것도 참지를 못했지. 배수로나 홈을 따라 정연하게 흘러야 안심이 되었어.” 할머니가 이번에는 숟가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질서란 말이지, 단단한 껍데기로 감싸는 일이야. 그것은 극도로 투명한 창살 같은 것이지. 질서로 자신을 속박하면 할수록,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보호를 받게 되지. 이 우주가 가능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바로 자신을 자연 법칙에 철저하게 종속시켰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말하지. 우연과 사건의 충만을 찬양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자유가 대체 무언가. 그 자유를 통해 뭘 얻고 다니는가. 고작해야 고함이나 치고 다니는 게 전부 아닌가. 너저분한 걸레 쪼가리만도 못하지. 끔찍할 정도로 천박해. 대지진이 나고 발전소가 저 꼴이 되고 나서 며칠 뒤, 사람들이 나보고 이름만 겨우 알고 있는 도시의 무슨 양로원에 가 있으라고 하더구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두고 욕지거리나 주고받는 곳. 그런 곳에 가서 살라는 거야. 싸구려 시장에서 곰팡내 나는 신발 고를 자유나 누리며 살라는 게지. 자네 같으면 그러고 싶겠나. 난 차라리 이 집에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미라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지.”


그렇다. 질서에 대한 할머니의 강박은 곧 그녀 자신을 가두고 보호하는 투명한 형식이었다. 그것은 그저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건강이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피난을 갔지 잔류를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끝없는 공허와 죽음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을 정도의 강인함이었다. 기억과 영혼의 수준까지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이었다. 그것을 그녀는 질서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을 통해 얻어내고 있었다.


역시 다다미방은 추위가 관건이었다. 이불을 이마까지 덮어도 쫓아낼 수 없는 냉기가 달려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삼 년 전 그날. 그와 함께 놀러간 교외의 한 펜션에도 냉기가 가득했었다. 난 온기를 얻으려고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귀를 필사적으로 물어뜯으며 말했다. 네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싶어. 귓불에 살짝 피가 배어나오자 그가 소리를 쳤다. “앗!” 난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어깨와 유두와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으며 외쳤다. “제발 너를 열어줘.” 그가 나를 밀치며 말했다. “그만! 적당히 좀 해!” 나는 그 ‘적당히’라는 말을 얼마나 혐오했던가. ‘적당히’ 사는 사람들 앞에선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주고받으며 서로 히뜩거리든가, 아니면 잔뜩 삿대질을 하다가 끝내 악수를 하며 마무리하는 인간들. 그 미적지근하고 밍밍한 자들에겐 나 역시 적당히 가면이나 들이 내미는 것으로 족했다. 난 내 남자가 그런 잡스러운 범주의 인간에 속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본래 료코 할머니의 잔류는 엄밀히 말해 불법이었다. 그저 어찌어찌해서 강제 퇴거를 당하진 않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도쿄전력 직원이 집으로 찾아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어제 오전에도 전력 회사 직원이 비죽거리며 대문으로 들어왔다. “여, 할머니, 오늘도 수치가 높게 나오셨나.” 그러더니 방독면을 쓴 채 팔짱을 끼고선 팔자걸음으로 건들건들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벌써 삼주일째 보는 얼굴이라 내게도 씩 웃으며 아는 척을 했다. 난 한국말로, “재수 없어.” 라고 중얼거렸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귀를 후볐다. 그리고 방독면을 잠시 뒤집어 불쾌감 섞인 침을 탁 뱉었다. 할머니가 거칠게 쏘아붙였다. “왜 남의 마당에 침은 뱉고 지랄이여!” 그가 방독면을 탁탁 치면서 받아쳤다. “아이고, 미안하게 되었수다. 공기가 좀 탁해야 말이지.” 료코 할머니는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발전소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칠십 년대 초 원전이 세워진 곳이 남편이 수장된 바다 앞이었다. 종종 남편을 생각하며 앉던 바위에 가지 못하게 된 건 할머니에겐 둘째 문제였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원전이 세워진 후 지역 전체의 무언가가 뒤틀려버렸다는 점에 있었다. 수상한 트럭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종종 들리는 가이거 계수기의 바늘 돌아가는 소리, 하룻밤도 빼놓지 않고 발전소 지붕을 물들이는 붉은 신호. 그 모든 게 그녀를 불길한 구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사십 년 동안을 그 옆에서 산다는 건 자신 안의 물기를 바짝 말리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자기 같은 여자를 수십 년 동안 대하느라 저 치들도 꽤나 힘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할머니에 의하면 남편은 어부였다. 종종 산책을 가곤 했던 해변에서 말없이 스치는 사이였다고 한다. 무척 가난했던 그는 그물 당기는 기술 외에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퉁명스럽고 내성적이며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그에게 할머니도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햇빛이 쨍쨍했던 어느 날. 할머니는 나신이 된 채 모래알로 온 몸을 문지르는 그를 발견했다. 적조로 더러워진 몸을 모래로 훔치고 있었던 것이다. 갈색으로 그을린 그의 몸은 바다 일로 단련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마치 돌고래를 연상시키는 그의 나신을 보며 할머니는 처음으로 남자를 알았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할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그에게 정성을 다했고 딸도 한 명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겐 특이한 취미가 하나 있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배를 타지 못하는 날이면, 늘 간단한 장비만 챙겨서 잠수를 하는 게 그것이었다. 뭐 하러 그 지겨운 바다를 또 들어가느냐고 물어도 그저 웃기만 했다고 한다. 뭘 채집해오거나 발굴해오는 것도 없이, 그저 뿌옇고 컴컴하기만 한 바다 속으로 집요하게 잠수를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난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할 때 할머니가 말했다. “결혼을 하고 오 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사람, 그날도 잠수하러 나갔는데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지. 그 후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네. 대체 그 양반 뭘 그렇게 찾으려고 했나 말일세. 물고기도 아니고 수장된 보물도 아니고 진주조개도 아니고 하다못해 해양 쓰레기도 아니고, 대체 뭘 위해 그렇게 미친 듯이 바다 속을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말일세. 대체 뭐가 아쉬워서 가족을 놔두고 그렇게 스스로를 지우기 위해 애를 썼는지에 대해서 말일세. 그렇게 묻고 또 물으며 사십 년을 살았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왔다. 나오코라는 이름의 딸은 죽은 남편을 닮아 말수가 적고 침울한 아이였다고 한다. 내가 후쿠시마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밤, 할머니가 차를 갖다 주며 말을 꺼냈다. “그 애는 구석이나 다락방에 있기를 즐겼지. 이웃 어른들이 웃으면서 다가와도 숨기 일쑤였어. 집에 없을 때면 늘 발전소 철조망 근처나 언덕에 앉아서 멍하니 방사능 폐기물 트럭들이 오가는 걸 보곤 했지. 사춘기가 되고, 청소년기를 지나,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지. 그 애 어릴 적, 한번은 친척들과 더불어 유원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네. 또래 아이들은 서로 장난치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애만 거의 울상이었어. 그날 저녁 조용히 손을 잡고 이유를 물어봤지. 그랬더니 자기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을 지은 채 두런두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는 거야.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얼굴이 꽤 곱상해서 들이대는 남자들도 좀 있었네. 물론 다들 그 애의 성정을 알자마자 떨어져나갔지만. 그러다가 어느 날 그림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지.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제법 그럴싸하게 주로 화지에 그림을 그렸네. 그런데 하나같이 비쩍 마른 사람들이 잔뜩 꼬인 자세로 하늘을 응시하는 작품만 그리는 거였어. 나중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그런 그림들을 만드는 것에만 집착했지. 난 딸애가 저러다가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었다네. 결국 저 애를 저렇게 만든 건 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 하루는 물감이 수북한 방바닥에서 손에 멍이 들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나오코의 모습을 봤다네. 난 문득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그걸 찢어버렸네. 그리고 방에 있던 다른 그림들도 전부 내버렸지. 나오코는 그 날 밤 집을 나갔네. 그 후로 다시는 그 애를 볼 수 없었네.” 할머니의 말을 들은 후 난 얼추 계산을 해보았다. 나오코는 나와 나이가 비슷했다. 내가 무수한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한결같은 진부함과 졸렬함에 식상함을 느낄 무렵,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림들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다르다면 다른 삶이었다. 하지만 내가 남자들과의 섹스가 끝나면 가졌던 느낌을 나오코라면 왠지 이해할 것 같았다. 곰삭은 담뱃재에 찌들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말이다.


할머니는 오후 세 시경이면 바깥 상황도 살필 겸, 집 인근을 삼십 분 정도 걷곤 했다. 쓰나미 직후와 비교해 많이 정리가 되긴 했어도 마을은 여전히 폐허에 가까웠다. 곳곳에 산재한 방사능 표지는 마을 전체를 금단의 장소로 보이게 했다. 온전한 집은 한 채도 없었고 지붕과 벽에는 쓰나미가 몰고 온 녹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어떤 집은 잔해조차도 남기지 않고 쓸려가 공터로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간신히 남은 명패만이 그곳의 과거를 증언할 뿐이었다. 간혹 떠돌이가 된 고양이나 개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어김없이 죽은 자기 동료들의 시체가 있었다. 피 묻은 입으로 살점을 뜯고 있는 그것들의 모습은 인간 없는 자연에 대한 모든 낭만적 찬양을 비웃고 있었다. 일상이 확립되어 있던 시절과 모든 것이 박살난 지금 사이의 간극은 분명 평범한 감성으로는 메우기가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간극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 모든 스산한 모습들을 받아치듯, 꼿꼿하게 머리를 든 채 허리를 펴고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예전에 두부 가게였음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을 지났다. 비교적 깨끗한 간판에는 누군가의 손길도 닿은 상태였다. 할머니는 바로 자신이 종종 청소를 했다고 말하며 덧붙였다. “그 양반이나 딸애나 모두 두부를 지독히도 좋아했지. 특히 그 양반은 늘 무뚝뚝했지만 두부 반찬만 나오면 입가가 조금 누그러지곤 했어. 나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살짝. 남편이 죽고 딸애가 없어진 다음에도 난 거의 매일 이곳에서 두부를 사 먹었다네. 쓰나미가 있고 나서 제일 먼저 달려와 상태를 확인한 곳도 여기였어. 잿빛 속에 파묻힌 간판이라도 보려고.”


창 너머 발전소 쪽에서 희미한 폭발음이 들렸다. 아마도 수증기압으로 인한 폭발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어렵사리 발전소 안을 야간에 취재할 수 있었다. 삼엄한 초소를 지나 도착한 복구 작업 현장에는 십 여 개의 푸르뎅뎅한 수은등이 가득했다. 널브러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에는 철근이 삐죽삐죽 더듬이처럼 뻗어 나와 있었다. 삐걱, 삐거걱. 갈라진 바닥 위에 설치된 수평 비계가 밤바람에 흔들거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낙엽 몇 장도 마당 이편에서 저편 사이를 바람에 따라 규칙적으로 왕복했다. 발전소 지붕에 팔을 얹혀 놓은 크레인도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무질서한 현장과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박자가 묘한 대조를 이뤘다. 발전소는 이미 여러 번 일어난 수증기 폭발로 지붕이 상당 부분 날아간 모습이었다. 외벽 여기저기에는 얼룩과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금도 서너 개 관찰이 되었다. 드륵, 드륵륵, 드르르륵. 누군가 대형 드릴을 콘크리트 덩어리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서 있던 곳까지 파편이 비산했다. 드르륵 드륵 드륵. 득, 득. 철근에 걸렸는지 드릴이 뭔가에 막힌 소리를 냈다. 왠지 모르게 내 목에도 막힌 느낌이 들었다. 가래침이라도 세게 뱉어내고 싶었다. 작업자가 막힌 지점을 피해 다시 드릴을 밀어 넣었다. 먼지가 주변을 뿌옇게 만들 정도로 일어났다.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만 목이 텁텁했다. 세슘 입자들이 후두와 기관지에 달라붙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캑, 캑. 별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헛기침을 해보았다. 방독면에 흡수된 기침 소리가 꼭 물먹은 스펀지를 짜증스럽게 짜내는 것 같았다. 그때 난 적잖이 당황했다. 며칠 전 까마귀들의 시체에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때문이었다. 작업 현장의 방사능 먼지들은 죽음이 가진 비루한 측면을 구현하고 있었다. 살갗이 벗겨지고 몸 여기저기에서 피를 흘리며 급기야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내쉬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남자들과의 잠자리가, 내 지스팟이, 첫 경험을 했던 날이 생각났다. 내가 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장면들이.


소개 지역으로 선포된 후쿠시마 원전 반경 오 킬로미터 이내에 불법 잔류하는 사람은 료코 할머니 외에도 대여섯 명 정도가 더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이 지역에서 거주한 지가 수십 년이 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물자 교환이나 정보 교류의 이유를 목적으로 이삼 주에 한 번 정도 료코 할머니 집에 모이곤 했다. 삼 일 전. 한 명의 할아버지와 세 명의 할머니 그리고 그중 한 할머니의 수발을 드는 중년 여성. 이렇게 다섯 명이 모였다. 처음에 나는 이런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면 그렇듯이 다소 정감이 넘치고 위로의 말이 오가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모임은 다들 처음 본 사람처럼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돌아가며 신에 대해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물론 대지진 이전에 교회를 다닌 사람은 료코 할머니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본인 특유의 민간전승 신앙을 염두에 둔 것 같지도 않았다. 기도가 끝난 뒤에는 간단히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빌려주거나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말이 많지 않았고 상대의 처지에 대해서 필요 없는 동정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모임이 끝난 뒤, 난 넌지시 할머니에게 모임이 생각보다 차분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막 받은 식료품을 정리하며 말했다. “허허. 당연하지. 시끄럽게 떠들만한 사람들은 벌써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대피를 했거든. 요란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식의 생활을 감내하지 못해. 아가씨가 좀 남달라 보여서 내가 이런저런 얘기도 해줬네만, 사실 나도 그렇고 다들 자기들 얘기를 하길 꺼려해. 서로 위로한답시고 물기 있는 말을 주고받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내가 만난 남자들의 불평이 떠올랐다.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잠자리에서 내가 그다지 살갑지 않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 불만에 대해 나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한창 달아오른 순간, 귓속에 얄팍하고 달콤한 말들을 속삭여 김빠지게 하지 말라고. 나는 섹스에 무슨 물렁물렁한 감정을 갖다 붙이는 인간이 아니라고. 내게 섹스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늪을 통과하는 일이라고. 구원과 추락의 갈림길에서 내 전부를 걸고 하는 내기라고.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다.


밤은 깊어갔고 나는 여전히 잠자리를 뒤척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손거울 두 개를 꺼내들었다. 거울을 얼굴 양쪽에 갖다놓았다. 잠이 안 올 때면 하던 습관이었다. 별빛을 받은 희미한 얼굴의 무한 반사상이 만들어졌다. 거울 속 아득한 저편에 미지의 여인들이 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겼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에 갇혀 있는 여인들. 왠지 그곳에선 내가 사는 우주와는 다른 법칙이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 속으로 유폐된 자들의 영혼에 꼭 맞는 특유의 법칙이. 문득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고요하기만 할 것 같은 거울 속으로. 슬슬 졸음이 밀려오면서 선잠이 들었다. 료코 할머니가 꿈속에 나타났다. 지금의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지을 거라며 내게 설계도를 하나 내밀었다. 그런데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설계도는 경악스러웠다. 일단 설계도에 나온 건물에는 출입구가 하나도 없었다. 지하로 통하는 문도 없고 지붕이 개방적인 구조도 아니고 옥상으로 통하는 곳도 없었다. 하다못해 감옥에도 잠글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이 건물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징이 창문들이 하나같이 하늘만 보이게끔 설계가 되었다는 점이다. 절묘한 각도로 설계된 창은 옆 건물을 피해서 오직 하늘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평범한 창문이라기 보단 거의 천체 감상용 구멍에 가까웠다. 그런데 압권은 전체의 내부 구조에 있었다. 건축물에는 복도나 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니까 오직 방들만 있었던 것이다. 그 방과 방 사이에는 문만 있었다. 예를 들어 이쪽 끝의 방에서 저쪽 끝의 방으로 가려면 수많은 방들의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집 전체의 평수도 엄청나서 그 안에 있는 방의 개수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방들의 배치도 어지럽고 현란하기까지 한 게, 딱 미로라고 보면 좋았다. 요컨대 그 설계도에 묘사된 집은 끔찍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이었다. 어지간한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고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집이었다. 내가 꿈속의 료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정말 이런 집에서 살려고 하세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영원히 살 집이지.”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는 기척에 잠이 깼다. 한국에서 온 문자였다. 이제 제발 귀국하라는 편집장의 밤늦은 종용이었다. 벌써 여러 번째였다. 예정된 취재 기한인 일주일을 보름이나 넘겼으니 그런 난리도 이해가 됐다. 기사 작성도 작성이고 방사능 노출 문제도 생각한다면 진작 귀국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난 귀국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어떤 것 때문이었다. 언젠가 페스트에 대한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났다. 까뮈는 아니었고 익명의 소설가가 쓴 책이었다. 중세 시절 페스트로 황폐해진 어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작품이었다. 다소 지루한 문체였고 줄거리나 인물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하나.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도시의 밤에 대해 묘사한 부분만은 기억이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고, 수 천 마리의 죽은 쥐들이 뿜어댄 초록색 인광이 가득한 밤이었다. 초현실적 공포가 가득한 밤거리를 거의 유일한 생존자인 주인공이 걷고 있었다. 그는 모든 미래의 시간이 단번에 얇은 종이 두께로 구겨졌음을 느낀다. 미래를 염두에 둔 모든 기획, 희망, 기대, 두려움, 불안, 집착이 무의미해졌음을. 아마 지금 나를 붙들고 있는 그 무엇도 비슷한 성격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대책 없는 체류에는 미래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언제는 미래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텔에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때나 욕실에서 클리토리스를 만질 때나, 나는 그 순간들에 모든 것을 걸었다. 광기에 가까운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면 늘 종말의 냄새를 맡았다. 여기서 그냥 죽어도 좋다는 느낌. 세상이 나를 모두 비난해도 좋다는 느낌. 신이 나를 버려도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구원을 희구하기도 했다. 질척한 관계들과 말라비틀어진 시간을 모조리 끝내고 영원 속으로 침잠하고 싶다는 욕망. 료코 할머니의 경우는 어땠을까. 감금이나 다름없는 유폐를 스스로에게 강요한 그녀에게, 매일 가이거 계수기로 자신의 종말 시계를 가늠해온 그녀에게, 죽은 남편이 목도했을 심해의 어둠을 상상해온 그녀에게,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딸을 기억하는 그녀에게 세상은 어떤 의미였고 구원은 또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다가 다시 잠이 들 무렵.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가까워졌다. 아마 좀 전의 수증기 폭발음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누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와 현관문을 두드렸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밑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밤인데다가 방호복과 방독면에 가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좀 전 폭발 여파로 대규모 방사능 누출이 있으니 대피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신발장 위에 놓인 가이거 계수기의 바늘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중 하나가 우리에게 자신들의 것과 같은 옷을 건네며 어서 입으라고 재촉했다. 대문 너머로 많은 차량이 오갔고 방독면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언덕 건너편 하늘에서는 헬기도 몇 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의 불길했지만 평화로웠던 밤은 순식간에 비상등과 소음으로 어지러워진 상태였다. 대문 앞에 앰뷸런스가 다가왔고 옆에 있던 요원들이 탑승을 재촉했다. 료코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요원이 다시 탑승을 재촉하며 말했다. “고집 그만 피우세요. 이 수치 좀 보시라고요. 집안에 계셔도 위험….” 요원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할머니가 욕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당황했다. 밖에선 무전기와 확성기 소리가 더 커졌다. 집안에는 온통 방독면을 착용한 요원들이 곳곳을 수색하며 잔류 인원을 찾고 있었다. 할머니가 매일 정성을 다해 정리한 가재도구들이 흐트러졌다. 깨끗하던 바닥에는 온통 진흙이 묻었다. 사태가 심각함을 직감한 나는 할머니는 내가 설득하겠노라 말하며 요원들을 잠시 집에서 나가 있게 했다. 요원들이 나가자 할머니가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일단 나와 함께 대피할 것을 권유했다. 할머니가 내 손을 붙잡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라도 떠나게나. 난 말이지, 그 양반이랑 딸아이가 파놓은 구멍 속에 갇혀 있다네. 빠져나가기엔 너무 깊어. 자, 어서 가게나, 어서.” 할머니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몇 분 후 요원이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말했다. “일단 아가씨라도 먼저 나가서 구급차를 타세요. 저희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요.” 난 한 요원에 의해 거의 끌려가다시피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내가 탄 앰뷸런스는 결국 할머니를 태우지 못한 채 움직였다. 할머니는 어떻게 되느냐는 말에 차 안 요원들은 누구도 대꾸하질 않았다.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웠고 당장 내게 재갈이라도 물릴 기세로 보였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한국말과 일본말을 번갈아가며 욕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난 지쳐서 아무런 말도 할 힘이 없어졌다. 문득 차창 밖을 보았다. 후쿠시마의 어지러운 풍광이 지나갔다. 응급차와 군인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니 타버린 잔해, 무너진 건물,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안 가는 시체, 쓰레기, 진창, 구덩이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차가 움직인다기보다는 마치 주변 사물과 세상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극장에 앉아서 한 편의 사실주의적인 영화를 보는 느낌. 그냥 가만히 앉은 채 그렇게 상영되는 영화를 계속 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 난 후쿠시마 외곽의 임시 대피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모든 갑작스런 일에 진이 빠졌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대피소 앞마당에는 며칠 전 회합 때 보았던 주민들의 얼굴이 보였다. 낙담한 표정도, 놀란 표정도, 화난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 안의 모든 것이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에 어수선한 그곳을 벗어나 외진 곳의 벤치로 갔다. 꽤 바람이 불었지만 흥분했던 탓인지 그리 추위가 느껴지진 않았다. 대피소 주변 들판에서 갈대들이 바람에 쓸려서 누웠다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귀뚜라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제법 규칙적인 박자로 움직였다. 가만히 그 박자에 나를 맞추다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마 다시는 료코 할머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뚜껑 열린 발전소의 모습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일들은 말라붙은 화석이 되어 그저 신만이 기억하리라. 후쿠시마 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선 발전소의 붉은 빛들이 만들어내던 잔영이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은 그저 검고 짙었다. 문득 그 하늘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었다. 갈대들이 눕는 소리가 커졌다.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겨 들판 전체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은밀한 곳에서 고요하고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어떤 오르가슴도 선사하지 못했던 웅숭깊은 전율이었다. 후쿠시마의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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