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Home / 간호문학상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인쇄
제35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면회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4-12-16 오후 13:51:36
권은희 (대전 웰니스병원)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병원 뒤편에 자리 잡은 야트막한 산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에 낙엽의 농축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산에 걸터앉아 있는 병원의 구조 때문에 정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중환자실에 들어 갈수 있는 이층의 출입구가 나온다.

보호자 대기실 격으로 놓여있는 몇 개의 의자를 지나 중환자실의 자동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중환자실에 발령 받고 보호자들이나 환자들과 사소한 일로 싸우지 않게 세상과 단절시켜 준 고마운 문이다. 드르륵 닫히는 자동문 소리를 들으며 탈의실로 들어섰다. 이름이 삐뚤 하게 붙여 있는 탈의장 문을 열고 소독약 냄새가 훅 끼치는 하늘색 가운을 재빠르게 갈아입었다.

언제 묻은 핏자국인지 가운 왼편 주머니 언저리에 갈색으로 들러붙어 있는 핏자국을 두 손으로 문질렀지만 지워지지 않고 가루가 되어 오히려 옆으로 더 번져 버렸다.
살짝 염색물이 빠진 어깨 언저리의 머리카락을 모아 하나로 묶어서 말아 올리고 큐빅이 한두개 빠진 망핀에 말아 올린 머리를 대충 구겨 넣었다.

“안녕하세요?”

주렁주렁 밀림의 늘어진 나무줄기들처럼 달려 있는 링거들의 라인 사이에서 얼굴을 들고 선배가 인사를 받는다. 이제 나에게 아침 근무동안 환자들에게서 있었던 일들을 인계하고 병원의 소독약 냄새를 털면서 집으로, 아니면 늦은 약속장소를 향해 갈 것이다.

“어, 안녕? 일찍 왔네?”

“네. 오늘은 버스에 사람이 얼마 없었어요.”

건성이 묻어나는 대답을 하며 기구 카운트 장부를 들고 응급 카트와 응급약물 장부를 들고 카운트를 시작했다. 매일 새는 거라 눈으로 카운트를 해서 금방 마쳤다.

마약까지 숫자를 세고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달달한 설탕냄새가 나는 커피를 한잔 마셔야 일을 시작 할 때 병원 밖의 일들을 머리에서 내보내고 환자들의 상태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간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습관이다.

간밤에 숙취 때문인지 믹스커피의 끝 맛이 텁텁했다.

전날에는 비어 있었던 3개의 침대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와 있었다.
스테이션 바로 옆자리에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습기를 머금은 산소를 내뿜는 기계에 맞춰 흉곽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고 심전도 모니터까지 달고 있는 것이 무슨 환자인지 쉽사리 감이 오지 않았다. 힐끗 침대위의 환자들을 눈으로 한번 훑고 인계 받을 준비를 했다.

인계를 줄 선배가 아직 채 일을 마치지 않았는지 스테이션 옆의 환자 발치에 있는 챠트를 보고 있다.

“오늘도 환자가 들어왔네?”

이건 오늘도 바쁠 거라는 계시다. 물론 나에게 일부러 일을 나눠 주는 한가한 신 따위는 없겠지만.

‘손진문’

새로 들어온 스테이션의 옆 할아버지 이름이었다.

힐끔 환자를 쳐다보는 사이 인계 준비를 마친 선배가 자리에 앉았다.
시원한 향수 냄새가 얼굴이 하얗고 예쁜 선배의 여성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어제의 환자들은 상태 변화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는 드라마틱하게 상태 변화가 있는 환자 보다는 그렇지 않은 환자가 더 많다.

수두증으로 6살 지능을 가진 김민식 아저씨는 욕창 때문에 수술방에 가서 엉덩이 부분의 살들을 잘라 냈다고 했다. 아마 여섯 살 아이만큼의 표현력으로 많이 아파했을 것이다.

신환인 손진문 할아버지, 67세에 2급 농약을 먹고 응급실에서 녹색의 농약을 위세척하고 올라온 환자였다. 아마도 먹은 건 몇 모금이었겠지만 희석된 녹색의 세척물은 몇 L나 되었을 것이다. 자살을 목적으로 농약을 먹은 환자.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짜증이 미간을 모으게 만들었다. 뇌출혈에 뇌경색, 간경화 환자들 틈에서 인공호흡기까지 달고 있는 것이 오늘 오후의 기계 알람들을 담당하지 싶었다.

그리고 잠시 스치는 아빠의 얼굴.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농약을 먹고 온 환자가 있으면 항상 떠오르는 사람이다. 좋지 않은 기억.

그날은 간만에 오프라 자취방에서 삼십분이 걸리는 도시에 살고 있는 언니 자취방에 놀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조그맣고 빨간 티코의 카세트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핑클의 신나는 댄스곡이었고 내용의 강약과 상관없이 울린 전화벨을 끊고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았었다.

“아빠가..죽었어.”

“왜?”

모든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말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몰라. 술에 농약을 타서 먹었단다.”

울었을까? 담담함에서 나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쩌면 울음이 묻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속이 보이지 않는 깊은 연못의 밑바닥 질척한 진흙처럼 공포가 찐득하게 묻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을 끝으로 끊었는지도 모르게 전화를 끊고 일자로 입을 닫고, 시끄러운 노래를 끄고 핸드폰 가게에서 일하는 셋째를 태우고 대천으로 내려갔다.
나와 동생은 차안에서 울지 않았지만 운전을 하는 언니는 소리 없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기에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초저녁에 도착한 집은 이미 동네 상조회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 세 자매는 엉겁결에 받아든 하얀 소복을 입고 간 옷 위로 겹쳐 입었다. 언니는 맏이라는 중책으로 크게 하는 일없이 바빠졌고 나와 셋째는 한 번도 사람이 많이 들어차지 않았던 어두운 집에 전기를 끌어와 여기저기 백열전구로 불을 밝힌 낯선 집, 낯선 동네 사람들 사이에 멀거니 서있었다.

술에 취하지 않는 날이 365일중 5일이나 될까한 아빠와 과연 무엇 때문에 같이 사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던 엄마는 의아하게도 울고 있었다. 그것도 집에서 백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의 큰소리로 혼자가면 어떻게 하냐고, 이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나는 또 어쩌냐며 술에 취하면 곧잘 아빠가 누워 있던 시멘트 바닥에 두 다리 뻗고 대성통곡을 했다.

‘어떻게 하긴? 여태까지 엄마도 혼자였고 우리도 아빠다운 아빠가 없었는데?’

이렇다 할 애정을 부녀간에 표현한적 없는 가슴에선 엄마의 통곡소리도, 항상 관속처럼 어두웠던 집이 잔칫집 마냥 시끌벅적하고 밝은 것도 어색했다.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 뜬금없는 사건을 맞이한 기분으로 멀거니 서있으니 윗집 아주머니가 타박을 하고 나섰다.

“어째 이집에선 곡소리가 안나노? 그렇게 하면 못 쓴다.”

끝에는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교복을 입은 막내 남동생이 야간 자율학습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도착해서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주는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모자를 썼다. 마른 몸에 푸대 자루를 덮은 모습이었다.

아래채에 방을 썼던 아빠만의 방에 아빠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술 냄새가 섞인 이산화 탄소를 내뿜지 않은 채로 말이다.
염을 이미 한 상태였고 병풍 뒤에 누워 있다고 했다.
사남매가 들어가니 방이 좁았다. 오래 되서 낡은 나무 서랍장 하나와 천으로 된 이불 넣는 간이 이불장이 전부였다. 문을 열면 지린내와 술 냄새가 진동을 하던 방. 한 번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던 방인데 기이한 초대로 들어가게 된 아빠의 방은 너무나 좁았다. 메스꺼운 가래 냄새와 지린내가 나는 것 같아 장녀와 장남을 제외하고 나가도 된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나왔다.

언제 적 사진인지 영정까지 준비되어 있었고 아빠의 방문 앞 조그만 마루에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 아빠는 입을 다물고 있어 술에 취해 넘어지면서 어딘가로 굴러가 버린 앞니의 부재를 숨기고 있었다.

오늘이 보름이던가?
보름달이 영정 한구석에서 어울리지 않게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마당을 지나 재래식 화장실을 지나 논둑길로 조용히 빠져 나왔다. 하얀 시멘트 길을 지나 집을 돌아보니 휘엉청 빛이 뿜어져 나오고 이상한 활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간간히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내 집 인데도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잔칫집에 초대받아 온 것 같았다.

하얀 소복 속 청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내 쥐었다. 어딘가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미영이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바닷가로 여행을 갔을 때 풀이 죽은 미영이 전화를 받고 여행지에서의 들뜬 언성으로
“왜 그래? 키우던 개라도 죽었냐?”

아직도 왜 그 단어를 선택했는지 허벅지를 꼬집고 싶은 심정을 만든 건 미영이의 대답이었다.

“아빠가 죽었어. 너도 잘해..”

암이라고 했다. 그때 그랬지. 나는 그때의 내 대답도 생각났다.

“난 아빠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 물론 눈물 한 방울 안 나올걸.”

그 대답을 지금 저 익숙하지 않은 집에서 막 실행하고 나온 터였는데 가슴인지 머리인지에 커다랗고 시커먼 구멍이 느껴졌다. 슬프지 않았다. 아픈 거 같았다. 체한 것 같은 답답함.

막 집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들은 말은 커다란 플라스틱 소주병에 녹색의 농약이 타있었고 그 앞에 거꾸러져 있는 아빠가 있었다고 했다. 밭에 농약 뿌리는 일을 담당하던 엄마는 그 농약이 제초제라고 했고 그건 혀에만 닿아도 죽는다고도 했다. 그 활기차고 이상한 잔치를 벌이게 만든 아빠의 죽음은 같은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고 술만 먹으면 왜라며 울고불고 하게 만드는 추하고 창피한 주사의 씨앗이 되었다.

어제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소주에 기름진 삼겹살을 먹고 결국에는 울고불고 왜라고 왜치다 헤어진 기억이 창피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는 농약과 자살이라는 조합을 가진 저 할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놈의 일...내가 그만둬야지.’

향수 냄새로 중환자실의 똥냄새며 소독약 냄새 그득한 곳을 향기롭게 하던 선배는 인계를 마치고 향수냄새 이외의 냄새를 툴툴 털어 버리고 자동문 바깥의 세상으로 나갔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줄에 커다란 나비 망핀이 걸리는 걸 싫어하는 나는 선배가 나간 자동문 소리가 닫히자마자 핀을 빼서 스테이션 한곳에 툭 던져 버렸다. 간호사를 하기 싫었던 수많은 이유중 하나를 대라면 저 다소곳하고 무언의 억압을 주는 망핀을 껴야 한다는 것도 빠른 순위안에 들었다. 물론 나의 상처를 주기적으로 들쑤시는 농약 먹은 자살 기도자들도 삼순위 안에 든다.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제정신인지 있는지도 모르는 환자들의 체위를 변경하며 중환자실을 돌기 시작했다. 그다지 친한 간호사 없는 이 중환자실에서 그나마 마음이 맞는 털털한 면도 있지만 환자들에겐 꼼꼼한 수간호사의 말을 떠올리며 체위변경과 시트에 신경을 쓰며 한쪽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몸을 사정하면서 반대쪽으로 돌아 눕히며 더러운 침구는 빼고 깨끗한 시트를 팽팽하게 침대 매트 밑으로 접어 넣었다. 묽은 똥을 엉덩이에 질퍽하게 묻힌 환자와 예쁜 모양으로 치우기 쉽게 배설한 환자의 기저귀를 갈고 나니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손끝이 야무지지 못한 후배와 손을 맞추며 시트와 반시트를 갈고 환의를 갈아입히며 김민식 아저씨 차례가 됐다.

“아저씨 오늘 수술 했다면서요?”

“응. 아파.”

엉덩이에 커다란 거즈뭉치를 붙이고 있는 게 엉덩이뼈까지 고름이 찬 상처를 얼마나 긁어 냈는지 안봐도 짐작이 갔다.

“우와. 아저씨 오늘 용감했었겠다?”

“아파.”

마지막으로 스테이션 옆자리에 자리한 나이 지긋해서 자살을 시도한 손진문 할아버지 옆으로 갔다. 세척했지만 입에서 나는 농약냄새는 입안에 꽂은 튜브 옆으로도 진하게 흘러 나왔다.
아마도 저 무책임하고 나약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어마어마한 비용을 부담 시킬 것이었다.
정부에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책임한 자살시도자에게는 의료보험 혜택을 베풀지 않을 것이므로.
나이에 비해서 할아버지는 체격이 제법 크다.

“할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올드한 자살시도자는 눈을 떠서 나를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올려다 봤다. 인상이 부드럽다. 어쩌면 이 중환자실에 들어오기 전에 가족들한테나 이웃들에게 그리 험한 사람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제 말 들리시죠?”

오늘 하루가 제법 길고 두려웠을 터라 대답대신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 그거 입에 있는 튜브요, 할아버지 숨 쉬게 해주는 거라서 뽑으면 안돼요.”

어차피 자살시도자란 딱지 때문에 혹시나를 우려해 두 손은 억제대에 묶여 있어 빼지는 못할 것이지만 묶는다고 묶어도 신창원도 울고 갈 만큼의 실력으로 가끔 억제대를 풀고 몸에 있는 주사 바늘이며 소변 줄을 빼버리는 환자들이 있어 미리 의미 없는 다짐을 받았다. 체위변경 하느라 힘을 써서 더워진 몸으로 자리에 앉아 정규 챠팅을 하고 그렁거리는 소리에 맞춰 재빠르게 환자들의 가래를 뽑아 주었다.

오늘도 김민식 환자는 혼잣말을 시작한다.
6살 지능을 가진 사람이기에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 그는 홀홀 단신 이었다. 어쩌다 형이 면회를 오긴 했지만 그건 명절이나 되어야 오는 뜸한 일이었기에 하루 두 번의 면회 시간에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이 오면 가끔은 구슬프게 울기도 했다.

“아저씨, 오늘은 무슨 노래 부를 거예요?”

“몰라. 안 불러.”

“에이, 그러지 말고 한곡만 불러 줘요.”

질병적인 문제 보다는 엉덩이에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욕창 때문에 중환자실에 1년째 머무르는 김민식 아저씨는 간호사들의 농을 받아 얘기를 하다가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저렇게 애기처럼 토라져 있는 날도 있었지만 나는 동네 골목대장 마냥 약을 올리기도 했다. 기계 소리와 가래 소리를 채운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동안 대화가 가능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에이, 아저씨 노래 하나도 모르는 구나?”

“아냐, 알어.”

“두만강,,”

김민식 아저씨가 부르는 트로트 노래를 뒤로 하고 시간이 정해진 주사를 준비해 환자들에게 투약했다. 식판으로 날라져 오는 저녁을 먹는 도중에도 쿨럭 대며 가래를 생성해내는 환자들의 가래를 뽑아내고 다시 밥을 삼켰다. 콩나물국이 숙취에 시원했다.

면회시간이 되고 자동문을 열고 고정 시켜 놓았다. 오늘도 자신의 가족을 정해진 짧은 시간 면회하기 위해 몇몇 보호자들이 가운을 걸쳐 입고 바깥의 이물질을 씻고 면회를 시작한다.
뇌출혈 환자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보호자들은 그들의 상태에 대해 긍정적인 물음으로 궁금한걸 물어보았고 나는 상태에 대해서 직업적인 친절함을 덧씌워 말해주었다. 손진문 할아버지는 자식은 안 오고 자그마한 할머니가 면회를 왔다. 얼핏 보니 키가 작은 축에 속하는 나보다도 한 뼘은 작았다. 체격이 큰 할아버지 옆에 있으면 흔히들 표현하는 고목나무에 매미가 딱이었다.

할머니는 물수건을 더운물에 빨아 정성스레 환자를 얼굴부터 손이며 닦아 내려갔다.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손끝에 부드러움과 정성이 묻어있다.

‘저렇게 잘하는 부인이 있는데 뭐가 모지라서 약을 드셨담’

나는 면회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가는 보호자와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환자 곁에 머무르는 보호자들을 보다가 정해진 시간보다 3분정도 뒤에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우리 할아버지 좀 잘 봐줘요.”

손 할아버지를 두고 나가는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에게 해되는 일은 하지 않은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 그득한 주름은 사납지 않았다.

“네, 할머니 걱정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릴께요.”

면회가 끝나고 환자들의 혈압을 재고 시간에 맞추어 체위를 변경 해주었다.
뇌병변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대화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손진문 할아버지 옆 침대에 걸터 앉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면회가 끝나고 조금은 안정이 되었는지 눈을 감고 외면하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어떻게 만났어요?”

입에 튜브를 보며 아차하며 나는 바로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

“할아버지 중매 했어요?”

할아버지는 이놈 보게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할아버지는 키도 크신데 할머니는 많이 작던데요?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잘하던데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잘 안 해 주셨죠?”

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여긴 내공간이라서 이래도 된답니다를 풍기며 농을 걸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의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어려서인지 많은 기억은 아니고 단편적인 몇 가지지만 항상 좋은 미소로 나를 봐주었던 기억이었다. 손 할아버지처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해질 무렵 집 앞의 작은 저수지 언덕에 올라 물끄러미 먼 곳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에게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알리는 것도 나의 몫이었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들한테 스스럼이 없는 편이다.

갈색으로 그을린 나이 많은 저 얼굴은 나무의 나이테마냥 지나온 세월을 담고 있겠지.
나는 할아버지를 보다가 술에 취해 자식들에게 주정을 하던 아빠에게 악에 바쳐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이만 들어봐, 내가 아빠 쳐다나 볼 줄 알아?”

어쩌면 술에 탄 농약이 독이 아니라 내가 한말들이 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흔들어 불편한 마음을 털어 내었다. 이런 저런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다 할아버지 곁을 떠나 밤 근무 번에게 인계할 사항과 환자들의 신체 사항을 확인했다.

밤근무자가 오고 오전번이 그랬듯 나는 중환자실의 냄새를 조금은 품고 퇴근을 했다.
퇴근을 하는 버스에서도 아까의 생각이 뒤를 이었다. 아빠가 자신의 생을 멈춘지도 이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알 수 없는 물음표와 회한이 1+1 세일 상품처럼 묶여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출근길이 가벼웠다.

오늘만 일하면 내일은 오프라 엄마와 바로 밑 여동생과 군대간지 5개월이 된 막내에게 면회를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남동생이 보고 싶다기보다 양평을 지나가는 코스였기에 좋은 풍경을 보며 간만에 바람을 쐬며 기분전환을 하러 다녀올 생각이었다.

환자가 더 늘지도 않았고 환자들의 인계 사항도 크게 문제될게 없었다.
어제보다 더 지저분해진 하늘빛 가운을 갈아입고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장기 환자들도 김 아저씨도 여전히 그대로다. 가끔 출근을 하면 일반 병동으로 전동을 가거나 병원 뒤편의 영안실로 자리를 옮기는 환자들이 있지만 오늘은 별 이벤트가 없었다.

오늘은 환자들이 별다른 사건이 없으면 발톱들을 깎을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왔다. 물품 카운트를 마치고 서랍장에서 손톱깎이를 꺼내 스테이션에 놓고 인계를 받았다. 면회 시간이 되고 세명의 보호자가 들어왔다. 조용히 환자들과 얘기를 하거나 의식이 없는 환자를 보는 보호자들의 얼굴엔 웃음기는 보이지 않았다. 손 할아버지의 할머니도 면회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자마자 몸보다 두 배는 큰 보호자 가운을 갈아입고 물수건을 들고 들어와 싱크대에서 따뜻하게 적셔 할아버지를 닦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상태가 적힌 챠트를 한번씩 뒤적이며 보호자들을 살폈다. 너무 많은 드라마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혹시 환자가 죽었으면 하는 보호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 드라마에서처럼 산소줄을 뺀다든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주사를 슬그머니 빼버리는 일처럼 말이다. 세상엔 다른 사람의 부재를 바라는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학생일 때 아빠도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자취집과 한시간 반거리의 집이었지만 나는 집엘 잘 가지 않았다. 술주정하는 아빠와 학생인 동생들을 챙기며 그늘이 져가는 엄마의 모습을 뒤로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우울한 솜뭉치를 가슴에 구겨 넣고 오는 것과 같은 즐겁지 않은 행사였기 때문이다.

수술을 한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엄마도 수술이나 아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나도 아빠가 입원 했다는 말만 들었지 한 가지도 더 묻지 않았었다.
내가 혹시라도 면회를 갔다면 저들처럼 살갑게 물수건을 손에 들지도 빨리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가자라는 눈길을 줄 자신은 없었다.

뒤틀어진 가슴 한구석에선 저들 중 누군가는 환자가 비싼 병원비를 축내지 않고 또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 구성원이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을 바엔, 아니 의무는 둘째 치고 괴롭히지 않게 죽기를 바라는 보호자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마른 침을 삼키며 함께 밑바닥으로 가라앉혔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자살시도자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괜찮다는 표정... 그냥 다 괜찮다는 표정이 의아스러웠다. 정성스럽게 자기보다 세배는 큰 몸을 구석구석 발부터 얼굴까지, 닦고 손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몇십년을 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공유하고 나누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처럼 진저리 치게 하는 술주정이 있었다면 저렇진 않겠지?

항상 악다구니와 술 냄새와 지린내 속에서 가족의 화목 같은 건 알 수가 없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할머니가 주섬주섬 오래 되서 낡은 천 가방에서 찐 감자 세알을 꺼내 내놓는다.

“우리 할아버지 잘 좀 봐줘요.”

삶은 지 오래되지 않은 감자는 달큰한 냄새를 풍겼다. 할아버지가 입에 인공호흡기 튜브를 꽂고 있지 않았다면 저 두 사람은 작고 노인 냄새가 나는 방에서 두런두런 감자껍질을 벗기며 저녁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감자를 스테이션 한쪽에 올려 두었다.

그렁거리는 가래들을 뽑고 석션 통을 비우고 하는 찰나 손 할아버지의 인공호흡기 알람이 울렸다. 으레 가습을 하는 통에 물이 찼나 보다 하고 통을 비우려 했지만 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녹색의 농약은 할아버지의 폐까지 침투했는지 가래를 뽑아내도 산소 수치는 올라가지 않았고 호흡과 기계의 박자가 맞지 않았다.
혈압도 잴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할아버진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급하게 당직 과장을 호출하고 현재 증상과 의식에 대해 말하고 급하게 오더를 받아 혈액을 뽑아 검사실로 보냈다. 식은땀이 등에서 송글송글 솟아나 뭉쳐 흘러 내렸다.
할아버지의 심전도는 불규칙한 파동으로 지켜보는 사람의 심장도 요동치게 했다.

근처가 집이라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급하게 할아버지 상태를 말하고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말하고 나는 당직의의 오더를 받아 급하게 주사액을 혈관으로 밀어 넣었다.
할머니가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할아버지의 심장은 전기적 신호만 보낼 뿐 더 이상 몸 안의 장기들에게 산소가 풍부한 피를 보내지 않았다.

며칠을 함께 하며 정성을 쏟았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농약을 먹고도 살아서 나갔지만 할아버진 그러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이런 저런 말들과 표정을 생각하며 죽은 환자를 사정하던 대로 펜라이트로 할아버지의 동공을 비추다 엉겁결에 뒤로 물러섰다. 열릴 대로 열어진 동공은 까맣고 어두운 터널이었다. 알 수 없는 두려운 터널의 입구를 연 것 같은 기분에 찬 기운이 등으로 번졌다.

할머니는 의사의 사망진단을 듣고 주저앉아 버렸고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사망 환자는 빨리 영안실로 보내는 게 룰이었기에 나는 등골이 차가워진 채로 죄책감과 묵직한 감정을 안고 할아버지의 몸에 있는 라인들을 제거했다. 퇴근길은 무거웠고 할아버지의 동공을 본 뒤로 봐서는 안 되는 걸 본 것 마냥 섬짓하고 께름칙했다.

밤사이 뒤척이다 부은 얼굴로 간단히 짐을 챙기고 화장을 한 나는 엄마의 봉고차에 올라탔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의 출퇴근용이자 일을 할 때 짐을 나르는 역할을 하며 생계의 큰 역할을 했던 봉고차는 낡아 녹색의 펄 페인트가 군대 군대 벗겨져 있었다. 밤에 잠을 못 잤다는 핑계로 한숨 자야겠다며 뒷자리에 자릴 잡은 나는 턱을 창문에 대고 바깥 풍경을 흘러 가는대로 멍하니 보았다. 도시들을 지나고 외곽으로 달리는 차위로 녹음이 흩어져 내렸다.

졸립다는 동생과 앞으로 자리를 바꾸고도 나는 창밖만 봤다.

죽음이 유치했다. 아빠도,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환자들도 그랬다. 아빠는 유언 없이 혼자 농약탄 술을 훌렁 마시고 아직도 많이 남은 녹색의 소주와 부엌 맨바닥에서 발견 됐고 환자들은 짧은 시간에 이미 의식 없는 몸만 의료진들에게 내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주저앉은 할머니가 예전에 주저앉아 통곡하던 엄마와 겹쳐지며 생각이 났다.

“엄마, 엄마는 아빠 사랑했어?”

뜬금없는 내 말에 엄마는 앞차를 쫒던 눈을 돌려 나를 슬쩍 보기만 했지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는 늘 그랬듯 어제의 일을 엄마에게 주절주절 감정과 함께 쏟아냈다.
별 대꾸 없는 엄마를 두고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낮은 산들과 어울려 하얗고 풍성한 구름들은 조화를 이루었다.

“그냥... 혹시 말야... 아빠도 우릴 사랑했을까?”

어릴 때 단 한번 나를 씻겨준다며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고 목욕을 시켜주었던 아빠가 생각이 났다. 아빠와 딸 같은 시간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싶다. 좋았다기 보다 벗은 몸이 창피했던 초등학교 4학년때의 기억이었다. 두들겨 맞던 기억과 언제 모은 건지 내가 받은 상장들을 꼬인 발음으로 술친구에게 자랑하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혹시 모르지... 아빠도 우릴 사랑했을지도 몰라,.. 그냥 방법이 달랐던 건가..’

참 쉬웠다. 우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지라 그렇게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모든 게 쉬워지고 가벼워졌다. 어제 본 손진문 할아버지의 영혼이 빠져나온 깊고 어두운 터널의 동공이 떠올랐다.

아빠도 그렇게 동공을 열고 영혼이 나왔겠지. 외로웠을까?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집에서 혼자 소주병을 안고 고꾸라질 때는. 어쩔 수 없었음을, 그리고 끝이 그럴지라도 나는 내 우울함을 책임지는 아빠를 다르게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게 최선 이었을 거라고. 아빠는 무언가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거였을까? 무엇이 가족으로 만난 우리를 서로 엇나가게 만든 것일까?

우린 서로에게 무엇을 잘못했을까? 왜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 했을까? 그런데 난 아빠를 미워했는데 아빠도 날 미워했어?

꼬리에 무는 의문점과 감정들이 엉켜 버렸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평화로웠다. 커다랗고 하얀 구름은 산에서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까웠고 달콤하던 풀 냄새들은 더 짙어져서 비릿해졌다. 저런 풍경만 보고 산다면 마음 복잡할 일이 생기지 않을 것 만 같다. 그냥 구름은 구름대로 산은 산대로 자기들 생긴 대로 사니까 서로 그렇게 인정해 버리니까.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용서할게 아빠... 용서할게.”

누가 누굴 용서한단 말인가란 생각을 하며 허탈한 웃음을 입꼬리로 잡고 나는 잠의 터널로 들어갔다.

쉬웠다. 그렇게 어렵고 생각지도 않았던 두글자를 발음하니 마음에 넣어 두었던 무거운 솜뭉치는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동생의 면회 장소에 도착할 동안 가벼운 잠에 들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 중앙대 건강간호대학원
  • 보험심사관리사 자격과정
간호사신문
대한간호협회 서울시 중구 동호로 314 우)04615TEL : (02)2260-2571
등록번호 : 서울아00844등록일자 : 2009년 4월 22일발행일자 : 2000년 10월 4일발행·편집인 : 신경림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경림
Copyright(c) 2016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koreanursing.or.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