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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간호문학상 소설 가작
추림(秋霖)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3-12-18 오전 09:12:38
- 김에스더 (고신대복음병원)


이번 연도는 추림(秋霖)이 있다. 무더운 여름엔 비가 오는 날을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맑기만 하더니 가을이 되자 비가 시작 되었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중국 만주 지방으로 올라갔던 장마 전선이 북태평양 기단의 약화로 후퇴하면서 발생하는 짧은 기간의 장마, 이 가을장마는 수확을 앞 둔 농사철에 많은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무더위가 사라져 더운 햇빛을 안 봐도 된다고 좋아하던 내게 또 다른 피해를 주고 있다. 더운 햇살도 싫고 추적추적 비도 싫은 내게, 가을은 사계절 중 유일하게 만족하는 기간 이었건만, 그토록 무덥던 여름을 지나 이젠 장마 있는 가을이다. 이번 연도는 내가 밉다보다. 어디 한군데 정붙일 곳을 안주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비가 온다는 라디오 기상 캐스터 목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살피니 어둑어둑한 하늘과 창문과 가까이 있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보인다. 아침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하늘은 어둑하니 비를 몇 방울 씩 뱉어 낸다. 많이 오지는 않고 방울을 셀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갯수를 세어내듯 내려오는 것 같다. 몇 시인지 시간을 한 번 더 살피고 신발장을 열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노란 장화와 색색의 무늬로 그려진 알록달록한 우산이 보인다.

‘내는 이렇게 비가 좋은데. 니는 누구 딸이고. 와 그리 비를 싫어하노. 아빠가 예쁜 장화랑 어두운 데서도 잘 보이는 우산 사준다 아이가. 이거 봐라 예전에 니 키우던 삐약이 색깔이네.’ 아빠도 참, 그게 언제 적 삐약이래요. 나 초등학교 때 키우다 죽은 걸 아직도 기억해? 나 노란색 별론데. 까만색 사주지. 내 나이가 벌써 30이 다 되가는 데 애들이나 할법한 노란 우산과 장화라니, 부끄럽게. 하여간 주책이야.



아직 이른 아침이라 길가엔 사람들이 없다. 톡 톡. 노란 장화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노란 장화, 역시 이건 정말 좀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이려나 싶지만, 뭐 어때 오늘 일 마치고 약속도 없는데. 초등학생 때나 노란 색을 좋아했었지, 크면서는 좀 어두운 색이 좋았다. 그게 나랑 잘 어울리는 듯도 했고, 너무 튀는 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다 노란색은 좀 싫어하는 색에 가까웠다. 왠지 모르게 뭔가 어린 그 느낌이 싫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내 첫 애완 동물이었던 병아리, 삐약이가 생각나서였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샀던 삐약이는 내 친구들 병아리와는 다르게 말도 알아들었던 것 같다. 친구 병아리들은 방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움직이며 똥을 싼다고 더러워서 이제 못 키우겠다고 했었는데, 우리 삐약이는 베란다에 만들어준 자기 공간 안에서만 움직였다. 똥도 누라고 만들어둔 곳에만 누던 착하고 예쁜 내 첫 애완동물이었다.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얼른 학교 마치고 우리 삐약이 보고 싶어서.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갔다 베란다에 오니 그 삐약이가 없어졌다. 진환이 말이, 베란다 사이를 넘어가버려 밑으로 떨어져 죽었단다. 처음엔 믿지를 못하고 애꿎게 진환이에게 화를 냈다. 그러다 진환이가 삐약이를 묻었다는 곳에 나를 데려다 주었을 때, 그때 얼마나 펑펑 울었었는지. 다음날이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연주회였는데 엄마가 하루 종일 내 눈에다 얼음 마사지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퉁퉁 부으면 사진 못나온다면서 연주회만 잘하면 강아지를 사주겠노라 약속까지 했다. 그만 울고 피아노 연습이나 하라 고도 말했다. 그러나 나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엎드려 한참을 더 울었다. 그렇게 울어대는 나를 껴안고 아직 어렸던 진환이는 자기 누나 운다고 옆에서 같이 울었다. 삐약이가 죽기 전엔 무섭다고 베란다 근처엔 가까이도 못 갔던 게.



병원 가는 길은 걸어서 10분. 노래 두 세곡 정도를 들을 수 있는 시간.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으며 옷매무새를 정돈 한다. 역시 좀 춥다. 이 장마가 그치면 아마 곧 겨울이 되 있지 않을까 싶다. 새벽 공기가 차다.

좋아하는 발라드를 듣는데 비오는 날에 발라드는 역시 너무 처지나 싶다. 다른 밝은 노래를 들어 볼까 하며 노래가 흘러나오는 휴대폰을 꺼냈다. 무음이라 못 받았는지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엄마였다. 누가 아침형 인간 아니랄까 봐 이 새벽에 2번이나 전화를 하셨네. ‘딸, 요즘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이사는 또 왜 했는데? 베란다 없이 어떻게 빨래를 널려고, 얘도 참. 얼마나 바쁘길래 전화를 안 하니? 진환이 녀석도 한번 전화 주는 적이 없어요. 엄마는 너희 안부 묻고 다니는 사람이니 정말. 이 나이 먹고 자식 키운 대접 못 받는 나만한 사람도 없을거다. 어쩜 너희는 남매 아니랄까 봐 니네 아빠를 그리 쏙 빼 닮았어. 전화 한통 먼저 안 하던 양반....지은아 듣고 있어?’

저번 주 월요일에도 이 시간 쯤 전화가 와서 이렇게 말을 했더랬다. 그래 놓고 나는 또 일주일이나 전화를 못 걸었네. 우리 엄마 많이 삐졌을 것 같다. 전화를 지금 해볼까. 그렇게 전화 버튼 누르려던 엄지손가락은 허공에서 한참을 머물다 접혀 졌다.



비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일기 예보에 따르면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올 것이라 던데, 이 우산에 떨어지는 비의 느낌도 없어 우산을 닫았다. 내가 옷을 껴입어서 그런가? 지금 비가 오는 건지도 모르겠네. 멈춰 서서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비가 한 방울... 한 방울.. 아주 조금 떨어진다. 이젠 우산 없이도 괜찮을 정도다. 약해지는 비를 보다 걸음을 옮기는데 불현듯 7호실에 있는 이성민님이 떠오른다. 누가 간호사 아니랄까 봐 일 시작 전에도 병원생각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내가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던 그 해부터 암을 진단받고 우리 병원에 입원했던 분이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니까. 10년 넘게 항암을 받으며 병원 입원을 반복했던 분들 가운데 아직도 병원에 오는 사람은 이성민님 밖에 남지 않았으니, 연차가 쌓이고 만난 환자들이 많아지며 이젠 환자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는 나도 이성민님은 이름만 들어도 생각나는 것이 많다. 통통하고 하얀 얼굴이며 곱게 길렀다며 자신의 자랑이라는 콧수염, 그리고 그 밝은 특유의 너털웃음.

가만 생각해 보니 처음 내가 정맥 주사를 놓으려 팔을 걷어 부친 분도 이성민님이었던 것 같다. 첫 항암이라서 그 때는 아직 혈관이 좋았더랬다. 하지만 처음 주사 놓는 생 초짜 신규였던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한번을 성공 못하고 다른 샘에게 부탁을 했었지. 선생님 이분 한번만 놓아 주세요 죄송해요 하면서. 내게 짜증이 날만도 한데 이성민님은 특유의 콧수염을 만지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모든 게 처음엔 어려운 거야, 처음은 하는 게 중요 한 게 아니라 배우는 게 중요해. 간호사 샘 잘했어. 다음에 올 때는 한방에 놔주는 거요, 알겠지?”

지금 생각하니, 갑작스러운 위암의 발병과 CT사진 상 폐와 간의 전이까지 의심된다는 의사의 설명 후 시작된 항암으로 이성민님은 그 나름대로 상황이 복잡했을 텐데, 신규였던 나를 이해하고 내게 용기를 준 것 이었다. 그리고 매번 그 방을 들어갈 때 마다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내게.



한 달마다 하는 고통스러운 항암, 12번을 다 채우고, 추가로 시작된 방사선 치료와 변경되어 다시 시작된 다른 항암치료들. 그 오래 시간 동안 이성민님은 항상 웃는 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 보는 것을 좋아하던 분이었다. 항상 7호실에 묶기를 원했다. 자리가 없어 다른 방에 입원되면 변경 신청을 꼭 했다. 그 방의 햇살이 가장 따뜻하다고 말하면서.

“자고로 사람은 햇살을 보며 살아야지 암, 거참 따뜻하고 좋구만. 간호사양반.”

내게 그렇게 말하던 그 미소가 꼭 햇살 같았다는 건 알고 계셨을까.



병동에 올라와 간호사실에 들어서려는데 뭔가 분위기가 분주해 보인다. 야간 근무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이번에 올라온 신규 간호사는 울 듯한 표정으로 혈압계를 들고 뛰어 가는 게 보였다. 옷을 갈아입으려 사물함 문을 여는데 간호사실로 3년차 간호사인 혜정이가 들어왔다.

“샘 이성민님 돌아가셨어요”

뭐? 순간 대답도 못하고 입을 벌려 고개를 돌려 혜정이를 보았다. 혜정이는 바빠서 양치도 못했다면서 사물함에서 칫솔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샘 쉬는 번이셨던 주말동안 좀 안 좋아 지는가 싶더니, 1시간 전에 돌아가셨어요. 지금 아들이랑 며느리가 안와서 아직 장례식장엔 못 내려가고 있어요. 거기다 딸은 미국에 있다는데..”

사물함 문을 열다 말고 혜정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혜정이는 입을 한번 헹구고 나를 쳐다본다.

“참, 주말에 샘을 한번 찾았다고 하던데요? 이성민님이. 뭐 때문인지는 말 안하시고 샘을 한번 찾더래요.”

양치를 후다닥 끝낸 혜정이가 나가버리고 나는 간호사실에 혼자 남겨졌다.

나 참, 왜 이렇게 멍을 때리는 거야. 이러다 수 선생님 출근 하겠네. 빨리 옷을 벗고 간호사 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머리는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뭔가 정신이 없다. 장화를 벗으려는 내 손에 힘이 빠지더니 엉거주춤 주저앉고 말았다. 간호사실 구석에 조금 열린 창문 틈새로 불어온 찬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갑자기 한기가 오르는 듯하다. 멈춰진 초점 사이로 장화가 희미하게 빛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초등학생 때 키우던 병아리 삐약이 같이 샛노랬던 이 장화는 언제 이렇게 바래졌을까. 분명 처음엔 유치한 노란색이었는데.

‘딸아, 비 오고 어두운 날엔 밝은 색 우산이랑 장화를 신어야 사고가 안 난다. 봐라 니랑 잘 어울린다 아니가. 노란색, 참말로 이쁘네. 밝은 햇살 같으네, 우리 딸.’ 그러는 아빠는 햇빛 쨍쨍한 날보다 어둡게 비오는 날을 좋아하면서. ‘하하, 내는 비오는 날이 이상하게 좋지만, 햇빛 비추는 날이 얼마나 사람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알지. 생명력이 솟는다 아니가? 니가 햇빛 나는 날이랑 닮았다니까’ 우웩, 하여튼 딸 바보. 주책이야, 진짜. 근데 지금 어디 가는 데? ‘병원, 건강검진 결과 나왔다고 오라네? 갔다 오면 맛있는 거 먹을까. 니 좋아하는 초밥 먹으러 가자’



10년 넘게 병원을 다니던 이성민님은 뇌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장기와 림프절의 전이로 점점 아파져 갔다. 더 이상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진통제를 간간이 투여할 뿐이었다. 진통제를 놓으러 잠깐씩 들어 갈 때면, 그 아픈 고통 속에서도 7호실에서 풍기는 밝음이 느껴졌다. 울상인 보호자에게 말을 걸며 웃음을 짓는 이성민님에게서 나온 밝음 이었으리라. 아파 죽겠다며 호출 벨을 눌러 진통제를 달라던 보호자 말이 아니면 그렇게 밝게 웃는 이성민님이 진짜 아픈지, 분명 저 멀리서 본다면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 사이로 통증을 참으려 애쓰는 미간 사이 떨림이라던가, 이젠 그 좋아하는 햇살 가까이 서지도 못할 만큼 부어버린 다리와 가득 찬 복수. 하얗던 얼굴이 얼마나 노랗고 까매졌는지 안다면, 이성민님이 뭘 준비하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생활 시작부터 나를 봤던 분이라 그런가. 유독 나를 딸같이 생각해 주셨다. 내가 들어가면 시원한 음료수라도 주라고 보호자에게 말했고, 미국 간 딸을 못 본 지가 꽤 됐다며, 가끔 핸드폰 사진으로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참 간호사 양반이랑 닮았어. 둘 다 환한 얼굴이 꼭 햇살 같아’ 햇살, 햇살을 좋아하던 그분은 딸과 내가 환한 햇살을 닮았다고 말하곤 했다. 핸드폰 사진 속 환히 웃는 이성민님 딸의 얼굴은 정말 환한 햇빛 같았으나, 솔직히 밝다기보다 우울한 그늘이 씌워 진 것 같은 내 얼굴이 뭐 그렇게 따님과 닮았는지 잘 몰랐다. 그냥 아니라고 말하기 그래서 그 말에 조금 웃어 드렸다. 우리 아빠도 그렇게 말하긴 하던데 정말 제가 그런가요 이죽거리면서.

환자는 환자일 뿐이라고 그렇게 다정한 간호사가 되지 못한 나였어도 생각하면 그분은 나도 참 좋아했다. 이성민님은 너무 따뜻한 분이었고, 다정했고, 진정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분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건 어느 주말 들어선 7호실에서, 내게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시던 그 날 부터였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병실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이렇게 예쁜데. 내가 지금 죽은 것도 아닌데 힘내야지. 끝이 정해져 있어도 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이 무서운 병마와 싸워 나가고 싶어."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성민님의 부고를 들으며, 대체 무슨 이유로 아빠 생각이 나는가.

아빠는 건강검진 확인을 받으러 병원을 간 그날, 위암을 진단 받았다. 간까지 전이되어 항암을 해야 한다고 얘기를 들었단다. 항암을 해서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지 생존율을 올리는 것은 아니라고 의사는 말했고, 우리는 그날 저녁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사실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점점 어두워진 아빠의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조금 했을 뿐이었던 우리는 햇살 좋은 아침, 아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며칠 뒤에야 병에 대한 진단 사실을 알았다.

너무 놀랍고 믿겨 지지가 않아서 그럴까. 전화를 받고 멍하게 눈만 껌벅이던 나는 장례식장에 가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너무 힘들다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장례식장에서 기절하듯 울고 있는 엄마를 부축하던 진환이 역시 울지 않았었다.



툭 툭.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 눈물이 흐른다. 뺨을 지나 손등으로 떨어지는 이 물들이 정말 내 눈물이었다.

간호사실,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다시 시작된 빗소리가 들린다.



'..지은아 듣고 있어? 딸, 집에 좀 내려오고 그래. 나도 참 늙었다 보다. 왜 이리 주책인지.’



삐약이가 떨어져 죽은 그 베란다에 서서 아빠가 뛰어 내렸다. 햇살이 환하게 비추던 밝은 날이었다.



‘....너처럼 베란다 없는 집으로 도망이나 갈까. 2년이나 더 된 일인데. 베란다만 쳐다보며 울고 있는 엄마가 더 바보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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