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천사의 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2-12-20 오후 14:37:39
- 이선미(을지대학병원 간호사)
고요한 밤, 잠들지 못하고 복도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가 있어 의중을 살필 의도로 가까이 갔다.
밤근무 출근길에 희끗거리던 눈은 목화솜같은 모습으로 내려와서 적막한 겨울 도시의 밤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병실 순회 때 비어있던 병상의 J다.
그는 대장암으로 8개월 쯤 전에 처음만나 항암약물요법을 할 때마다 입원을 하는데 지난번 검사에서 암이 폐로 전이되었고 기침이 계속되어 병상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늘 인사로 오늘 본인의 기분이나 변화를 먼저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인실을 사용하며 그 병실 5명 환자들 병상 정보와 이웃병실의 보호자나 퇴원한 환자의 안부까지도 전달하고 입원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병원생활 안내까지하며 간호하는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
‘이간호사님, 백발 노인네가 오늘은 식사를 다 했어요. 죽을 잘 먹더라고. 전에 안먹던 건 자식네가 안와서 안먹은거지 속이 안좋아 못먹던게 아니었나봐.’
‘이간호사님, 어제 오전에 김씨가 외래오는 날이라 들렀다가 갔어요. 안색이 좋아졌더라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고 살갑게 표현하는 이 환우에게 뭐든 간호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물으면 늘 나한테 해 줄 거는 주사 안아프게 놔주고, 몸 아플 때 진통제만 얼른 주면 좋지, 하면서 싱긋 웃으신다.
가만히 J 옆으로 갔다.
“눈이 많이 와서...... 잠도 안오고....... .”
“네...... .”
“... ... 이간호사님.”
“네...?”
“그사람 있잖아, 이간호사님을 천사로 부르던, 본인은 이간호사님 앞에서는 어린양이라고 말하던 그사람... .”
“아, 네. 오늘 000님 면회 다녀 오셨어요? 잘계시죠?”
“내가 영안실가서 마지막을 보고왔어.”
“... ... .”
나를 천사로 부르던 H는 우리병동에서 흔히 말해 트러블메이커 환자였다. 5년 전 처음 만난 H는 우리병원을 작은집으로 여긴다고 했다.
‘오기 싫지만 올 수 밖에 없는데 막상 와서 지내다보면 이렇게 고맙고 편한 곳이 없지.’ 라고 말하던 그는 제 발로 걸어 병원을 온 것보다 혼수상태로 구급차에 실려서 온 횟수가 더 될 것이다. H의 질환은 알콜성간경변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뇨가 더해졌다.
처음 모습의 기억이 선명하다. 알콜성간경변이라는 내 환자가 입원했다는 정보를 받고 질병과거력 조사를 하러 H의 병실을 찾아갔는데, 6인실에서도 그는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울긋불긋한 얼굴과 목덜미에 거미상혈관종이 목주변으로 관찰되었고 무엇보다 콧등을 덮고 있는 거미상혈관종이 특징적인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초췌한 모습에 초점없는 눈빛이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경계하는 강한 눈빛을 보였었다. 담당간호사로 인사를 하였으나 대응이 없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좌로 돌리고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이날처럼 맨정신으로 가끔씩 병동을 찾아오기도 하였다. 입원에 대해 보호자 승낙이 필요하지만 홀로사는 주거형태라 보호자동의는 전화로 확인을 받고 입원을 결정한다.
또 다른 입원경로는 구급차를 통한 응급실행이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길이나 집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구급차를 통해 응급실 처치를 받고 병동으로 입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이 보호자가 없는 상태였다.
혼수상태에서 횡설수설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다 들어주고 간독성을 제거하기위한 투약정체관장을 하며 배설물을 처리하고 식도정맥류가 터져서 토하는 피를 대야로 받아내면서 보호자를 찾아 연락을 취하다 보면 나중에 주춤주춤 H의 어머니가 쌕, 쌕, 거리며 숨가쁜 모습을 하고 나타나셔서 아들의 모습을 보곤 눈물을 훔쳐냈다. 그렇게 준비하여 위치료내시경을위해 내시경실로 이송하여 처치가 끝나면 중환자실을 거쳤다가 오기도 하고 곧장 병동으로 복귀하기도 했었다.
H는 신규간호사들이나 실습간호학생들에게 빨간코아저씨로 통했고 소화기계에서도 간/담도질환계의 대표적인 리포트 케이스가 되었다. 고약한 성격으로 인터뷰가 쉽지 않은 게 아쉬운 점이었다.
중환자실이나 내시경실 치료가 끝나고 병실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때 그는 늘 불만투성이었다. 아주 가끔씩은 입원 중에도 병원 앞 상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와서 냄새를 풍기는 돌출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주사는 아파서 맞기 싫다.’, ‘한 번에 주사 못놓으면 내 살에 바늘 꽂을 생각 말아라.’, ‘무슨 피검사를 이렇게 많이 하느냐.’, ‘내가 너희들의 마루타야?’
1분이 아쉬운 근무시간에 생 떼를 부리면서 치료, 처치를 거부하며 손을 거둘 때나 적대적인 모습으로 돌아앉을 때는 아무리 환자 대 간호사이지만 난감하였다. 보호자도 없는 상태로 병동에 와서 본정신으로는 할 수도 없는 상스런 소리 들어가며 똥받아내고 피받아내고 닦아주고 입혀주며 손발이 되어 줬더니 이건 뭐 옛속담의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딱 해당된다면서 서운하더라는 동료들의 얘기를 들었다.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H같이 심술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환자일수록 침착하고 차분하게 늘 ‘아파서 병원을 오셨기 때문에 고쳐서 하루속히 집으로 가려면 이런 처치를 해야한다.’, ‘싫으면 건강하셔야한다.’, ‘꼭 필요한건데 정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권하지 않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어떤 게 더한 고통인지는 누구보다 잘 판단하시는 분이라 알고 믿는다.’하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조용히 불러서 눈짓으로 하라는 표현을 주거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하면서 간호처치에 응했었다.
J와 H는 같은 병실에서 만났다. 비슷한 또래의 두 환자가 한 병실에 장기입원을 하면서 암환자인 J의 긍정적이고 성실한 모습과 긍정적이고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하게 사는 기운이 H에게 시나브로 전달이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간식을 조절하였고, 인슐린 주사를 자가투약하며 건강신념을 보였었다. 물론 술냄새를 맡을 일도 없었다. 모든 의료진의 치료, 처치 계획과 일정에 반감없이 응해주는 것까지도 고마운데 보호자 없는 노인환우들의 식후 밥상정리를 도우며 식판을 내놓고 온수를 떠다 올리는 등의 배려 깊은 행동은 J를 따라 배운 변화였다. 이런 행동이 거듭될수록 얼굴인상도 부드러워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 무렵, 그런 그가 돌연 나를 ‘천사님’으로 불렀다. ‘아이구 우리 천사님 출근하셨습니까? 하하하.’ 교대근무를 하는 내가 출근하여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간호사실에서 업무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내 근무시간을 알았는지 거의 매일 H의 안부인사를 듣게 되었고 내가 출근하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H의 병실로 순회를 가면, ‘아이쿠, 우리 천사님 우리들의 약손 오셨네요. 흐흐흐.’ 하며 다인실의 환자 보호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병동이고 출.퇴근 시간의 병원입구 정원이나 1층 로비 등 장소에 상관없이 내 모습이 보일때마다 큰소리로 ‘천사님~~’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면 거수경례를 하며 오른쪽 눈을 찡긋 인사를 했다.
요즘같은 세상에 천사, 백의의 천사,가 어디있는가. 슬프지만 산타할아버지가 허구의 인물임을 유치원생들도 아는 것처럼 백의의 천사가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그 같은 초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천사님~’, 하고 부르는데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피식 웃고 지나가는데 믿을 수 없겠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내 발 앞으로 다가와서 부르며 안부를 묻는 행동에는 부끄러워서 몸둘바를 몰라 시선을 피해서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었다. 시간이 지나도 쑥스러워서 동료들이나 주변의 인파들이 있을 때는 짐짓 모른척 두리번거리든가 살짝 눈인사로 대응하였었다.
천사,라는 그 칭호가 부담스러워 내가 왜 천사냐, 아직 내게 맞지 않다,고 몇 번이고 물어보고 부족하니 그렇게 안불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려도 ‘이유없이 그냥 저에게 이간호사님은 천사님입니다. 백의의 천사입니다.’ 라고만 대답하고 내가 말한 것은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 믿겠다’고 말하던 H의 변화된 모습을 통 이해하기 힘들어 병상친구인 J는 혹시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봤었다.
일전에 H의 어머니와 내가 H의 병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산책하고 들어오는 길에 보았었단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치던 엄마를 보고 놀라 저 간호사가 무슨 소리를 하고 가더냐고 화가 나서 묻는 H에게 엄마는, 엉켜진 분과 한이 풀어졌다며 몇 년 만에 수심가득한 얼굴이 펴진 얼굴을 보고 나니 나에게 무한한 믿음이 생기면서 엄마와 본인에게 하늘에서 내려 주신 하얀 천사로 보이기 시작하더라며 J에게 듣게 되었다. 엄마가, 병원가면 고마운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말 잘 들으라,고 하면 또 그 소리 한다,고 투덜거렸었지만 이간호사님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H의 마음에서 나오는 천사,라는 거였다.
주말오후 H의 병상에서 보호자침대에 홀로 앉아계시던 어머니가 지나가는 내 가운자락을 잡아 세우시고는 속내를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시던 것이 기억났다. 입원 할 때 마다 보호자역할로 어머니가 오시는데, 노모도 성한 몸은 아니라서 우리병원 내분비내과와 호흡기내과 진료를 계속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노모가 가진 두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장사하다 빚을 떠안고부터는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는 만성간경화로 간이식 밖에 도리가 없다는 담당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 결정을 두 달 전에 했었다. 일억이 드는 간이식은 안하겠으며 앞으로 절대 술을 안먹겠다고 결정 된 날 밤 H가 소주를 먹고 일층 로비에 누워있던 것을 찾아 병실로 데리고 왔었었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생명이 간이식을 안하면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간이식을 하고 싶어하는 둘째 아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고 어미된 입장에서 있는재산 없는재산 다 당신과 둘째아들 치료비로 쏟아 내놓고 나니 큰아들내외 그늘에서 지내고 있으면서 선뜻 해 줄 수 없는 어미의 아린 마음과 해줘야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미약한 본인이 밉고 싫어 큰아들내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어느날 가족회의를 만들어 주섬주섬 간이식 이야기를 했더니, 그이들은 ‘술로 든 버릇 돈들이면 달라지겠냐 어머니나 가족들 더 속 썩이지 말고 네 술버릇만 고치면 십년은 거뜬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가족회의가 끝났다는 것이다.
어미가 못나고 부족해서 자식을 앞세우게 생겼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연신 눈물을 훔쳐 내시던 어머니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면서나 다녀가시면서도 늘 나를 찾아 질병관리를 상의하고, 생활고를 털어 놓고, 아들자식 며느리자식들 흉도 보고 큰손자 자랑을 하셨었다.
며칠 전 H가 토혈을 하여 내시경실로 보냈는데, 식도정맥류결찰 한 곳이 터져 응급조치 후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었다.
곧 회복되어 나타나서는 ‘천사님~’하고 싱긋 웃으며 ‘나 잘하고 왔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H의 병상일기는 오늘로 마감이 되었다. 그의 빈병상은 또 다른 아픔을 치료하기 위한 생명이 찾아 들것이고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만나고 또 이별도 하겠지. 생명과 죽음. 그리고 삶이 공존하는 이 곳.
내리는 눈이 병원의 보도블럭과 정원을 새하얗게 덮는 동안 H와의 병원인연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마음이 아프신가봐요.”
“응, 오늘 좀 그렇네. 그사람 제대로 못 펴보고 간 거 내가 잘 알지. 딱한 사람이야.”
“최근에 J님 만나면서 잘지내는 모습보고 고마웠어요. 후반에 J님 같은 좋은 분을 만났으니 좋으실 거예요. 따뜻한 마음으로 가셨을거예요. 이렇게 포근한 눈처럼이요.”
“그런가. 이간호사님은 그동안 이런사람 저런사람 많이 봤겠지만 그래도 H의 천사아닌가.”
“네,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기도하잖아요.”
“응, 그렇지. 그래야지.”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밤이 많이 깊었어요.”
“응, 그럼세.”
고요한 밤, 잠들지 못하고 복도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가 있어 의중을 살필 의도로 가까이 갔다.
밤근무 출근길에 희끗거리던 눈은 목화솜같은 모습으로 내려와서 적막한 겨울 도시의 밤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병실 순회 때 비어있던 병상의 J다.
그는 대장암으로 8개월 쯤 전에 처음만나 항암약물요법을 할 때마다 입원을 하는데 지난번 검사에서 암이 폐로 전이되었고 기침이 계속되어 병상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늘 인사로 오늘 본인의 기분이나 변화를 먼저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인실을 사용하며 그 병실 5명 환자들 병상 정보와 이웃병실의 보호자나 퇴원한 환자의 안부까지도 전달하고 입원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병원생활 안내까지하며 간호하는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
‘이간호사님, 백발 노인네가 오늘은 식사를 다 했어요. 죽을 잘 먹더라고. 전에 안먹던 건 자식네가 안와서 안먹은거지 속이 안좋아 못먹던게 아니었나봐.’
‘이간호사님, 어제 오전에 김씨가 외래오는 날이라 들렀다가 갔어요. 안색이 좋아졌더라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고 살갑게 표현하는 이 환우에게 뭐든 간호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물으면 늘 나한테 해 줄 거는 주사 안아프게 놔주고, 몸 아플 때 진통제만 얼른 주면 좋지, 하면서 싱긋 웃으신다.
가만히 J 옆으로 갔다.
“눈이 많이 와서...... 잠도 안오고....... .”
“네...... .”
“... ... 이간호사님.”
“네...?”
“그사람 있잖아, 이간호사님을 천사로 부르던, 본인은 이간호사님 앞에서는 어린양이라고 말하던 그사람... .”
“아, 네. 오늘 000님 면회 다녀 오셨어요? 잘계시죠?”
“내가 영안실가서 마지막을 보고왔어.”
“... ... .”
나를 천사로 부르던 H는 우리병동에서 흔히 말해 트러블메이커 환자였다. 5년 전 처음 만난 H는 우리병원을 작은집으로 여긴다고 했다.
‘오기 싫지만 올 수 밖에 없는데 막상 와서 지내다보면 이렇게 고맙고 편한 곳이 없지.’ 라고 말하던 그는 제 발로 걸어 병원을 온 것보다 혼수상태로 구급차에 실려서 온 횟수가 더 될 것이다. H의 질환은 알콜성간경변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뇨가 더해졌다.
처음 모습의 기억이 선명하다. 알콜성간경변이라는 내 환자가 입원했다는 정보를 받고 질병과거력 조사를 하러 H의 병실을 찾아갔는데, 6인실에서도 그는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울긋불긋한 얼굴과 목덜미에 거미상혈관종이 목주변으로 관찰되었고 무엇보다 콧등을 덮고 있는 거미상혈관종이 특징적인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초췌한 모습에 초점없는 눈빛이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경계하는 강한 눈빛을 보였었다. 담당간호사로 인사를 하였으나 대응이 없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좌로 돌리고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다.
이날처럼 맨정신으로 가끔씩 병동을 찾아오기도 하였다. 입원에 대해 보호자 승낙이 필요하지만 홀로사는 주거형태라 보호자동의는 전화로 확인을 받고 입원을 결정한다.
또 다른 입원경로는 구급차를 통한 응급실행이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길이나 집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여 구급차를 통해 응급실 처치를 받고 병동으로 입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이 보호자가 없는 상태였다.
혼수상태에서 횡설수설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다 들어주고 간독성을 제거하기위한 투약정체관장을 하며 배설물을 처리하고 식도정맥류가 터져서 토하는 피를 대야로 받아내면서 보호자를 찾아 연락을 취하다 보면 나중에 주춤주춤 H의 어머니가 쌕, 쌕, 거리며 숨가쁜 모습을 하고 나타나셔서 아들의 모습을 보곤 눈물을 훔쳐냈다. 그렇게 준비하여 위치료내시경을위해 내시경실로 이송하여 처치가 끝나면 중환자실을 거쳤다가 오기도 하고 곧장 병동으로 복귀하기도 했었다.
H는 신규간호사들이나 실습간호학생들에게 빨간코아저씨로 통했고 소화기계에서도 간/담도질환계의 대표적인 리포트 케이스가 되었다. 고약한 성격으로 인터뷰가 쉽지 않은 게 아쉬운 점이었다.
중환자실이나 내시경실 치료가 끝나고 병실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때 그는 늘 불만투성이었다. 아주 가끔씩은 입원 중에도 병원 앞 상점에서 소주를 마시고 와서 냄새를 풍기는 돌출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주사는 아파서 맞기 싫다.’, ‘한 번에 주사 못놓으면 내 살에 바늘 꽂을 생각 말아라.’, ‘무슨 피검사를 이렇게 많이 하느냐.’, ‘내가 너희들의 마루타야?’
1분이 아쉬운 근무시간에 생 떼를 부리면서 치료, 처치를 거부하며 손을 거둘 때나 적대적인 모습으로 돌아앉을 때는 아무리 환자 대 간호사이지만 난감하였다. 보호자도 없는 상태로 병동에 와서 본정신으로는 할 수도 없는 상스런 소리 들어가며 똥받아내고 피받아내고 닦아주고 입혀주며 손발이 되어 줬더니 이건 뭐 옛속담의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딱 해당된다면서 서운하더라는 동료들의 얘기를 들었다.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H같이 심술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환자일수록 침착하고 차분하게 늘 ‘아파서 병원을 오셨기 때문에 고쳐서 하루속히 집으로 가려면 이런 처치를 해야한다.’, ‘싫으면 건강하셔야한다.’, ‘꼭 필요한건데 정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권하지 않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어떤 게 더한 고통인지는 누구보다 잘 판단하시는 분이라 알고 믿는다.’하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조용히 불러서 눈짓으로 하라는 표현을 주거나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하면서 간호처치에 응했었다.
J와 H는 같은 병실에서 만났다. 비슷한 또래의 두 환자가 한 병실에 장기입원을 하면서 암환자인 J의 긍정적이고 성실한 모습과 긍정적이고 하루하루의 삶을 감사하게 사는 기운이 H에게 시나브로 전달이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 간식을 조절하였고, 인슐린 주사를 자가투약하며 건강신념을 보였었다. 물론 술냄새를 맡을 일도 없었다. 모든 의료진의 치료, 처치 계획과 일정에 반감없이 응해주는 것까지도 고마운데 보호자 없는 노인환우들의 식후 밥상정리를 도우며 식판을 내놓고 온수를 떠다 올리는 등의 배려 깊은 행동은 J를 따라 배운 변화였다. 이런 행동이 거듭될수록 얼굴인상도 부드러워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 무렵, 그런 그가 돌연 나를 ‘천사님’으로 불렀다. ‘아이구 우리 천사님 출근하셨습니까? 하하하.’ 교대근무를 하는 내가 출근하여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간호사실에서 업무준비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내 근무시간을 알았는지 거의 매일 H의 안부인사를 듣게 되었고 내가 출근하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H의 병실로 순회를 가면, ‘아이쿠, 우리 천사님 우리들의 약손 오셨네요. 흐흐흐.’ 하며 다인실의 환자 보호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병동이고 출.퇴근 시간의 병원입구 정원이나 1층 로비 등 장소에 상관없이 내 모습이 보일때마다 큰소리로 ‘천사님~~’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면 거수경례를 하며 오른쪽 눈을 찡긋 인사를 했다.
요즘같은 세상에 천사, 백의의 천사,가 어디있는가. 슬프지만 산타할아버지가 허구의 인물임을 유치원생들도 아는 것처럼 백의의 천사가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그 같은 초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천사님~’, 하고 부르는데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피식 웃고 지나가는데 믿을 수 없겠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내 발 앞으로 다가와서 부르며 안부를 묻는 행동에는 부끄러워서 몸둘바를 몰라 시선을 피해서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었다. 시간이 지나도 쑥스러워서 동료들이나 주변의 인파들이 있을 때는 짐짓 모른척 두리번거리든가 살짝 눈인사로 대응하였었다.
천사,라는 그 칭호가 부담스러워 내가 왜 천사냐, 아직 내게 맞지 않다,고 몇 번이고 물어보고 부족하니 그렇게 안불러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려도 ‘이유없이 그냥 저에게 이간호사님은 천사님입니다. 백의의 천사입니다.’ 라고만 대답하고 내가 말한 것은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 믿겠다’고 말하던 H의 변화된 모습을 통 이해하기 힘들어 병상친구인 J는 혹시 알고 있을까 싶어 물어봤었다.
일전에 H의 어머니와 내가 H의 병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산책하고 들어오는 길에 보았었단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치던 엄마를 보고 놀라 저 간호사가 무슨 소리를 하고 가더냐고 화가 나서 묻는 H에게 엄마는, 엉켜진 분과 한이 풀어졌다며 몇 년 만에 수심가득한 얼굴이 펴진 얼굴을 보고 나니 나에게 무한한 믿음이 생기면서 엄마와 본인에게 하늘에서 내려 주신 하얀 천사로 보이기 시작하더라며 J에게 듣게 되었다. 엄마가, 병원가면 고마운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말 잘 들으라,고 하면 또 그 소리 한다,고 투덜거렸었지만 이간호사님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H의 마음에서 나오는 천사,라는 거였다.
주말오후 H의 병상에서 보호자침대에 홀로 앉아계시던 어머니가 지나가는 내 가운자락을 잡아 세우시고는 속내를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시던 것이 기억났다. 입원 할 때 마다 보호자역할로 어머니가 오시는데, 노모도 성한 몸은 아니라서 우리병원 내분비내과와 호흡기내과 진료를 계속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노모가 가진 두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장사하다 빚을 떠안고부터는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는 만성간경화로 간이식 밖에 도리가 없다는 담당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 결정을 두 달 전에 했었다. 일억이 드는 간이식은 안하겠으며 앞으로 절대 술을 안먹겠다고 결정 된 날 밤 H가 소주를 먹고 일층 로비에 누워있던 것을 찾아 병실로 데리고 왔었었다.
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생명이 간이식을 안하면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간이식을 하고 싶어하는 둘째 아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안되고 어미된 입장에서 있는재산 없는재산 다 당신과 둘째아들 치료비로 쏟아 내놓고 나니 큰아들내외 그늘에서 지내고 있으면서 선뜻 해 줄 수 없는 어미의 아린 마음과 해줘야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미약한 본인이 밉고 싫어 큰아들내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어느날 가족회의를 만들어 주섬주섬 간이식 이야기를 했더니, 그이들은 ‘술로 든 버릇 돈들이면 달라지겠냐 어머니나 가족들 더 속 썩이지 말고 네 술버릇만 고치면 십년은 거뜬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가족회의가 끝났다는 것이다.
어미가 못나고 부족해서 자식을 앞세우게 생겼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연신 눈물을 훔쳐 내시던 어머니를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면서나 다녀가시면서도 늘 나를 찾아 질병관리를 상의하고, 생활고를 털어 놓고, 아들자식 며느리자식들 흉도 보고 큰손자 자랑을 하셨었다.
며칠 전 H가 토혈을 하여 내시경실로 보냈는데, 식도정맥류결찰 한 곳이 터져 응급조치 후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었다.
곧 회복되어 나타나서는 ‘천사님~’하고 싱긋 웃으며 ‘나 잘하고 왔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H의 병상일기는 오늘로 마감이 되었다. 그의 빈병상은 또 다른 아픔을 치료하기 위한 생명이 찾아 들것이고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만나고 또 이별도 하겠지. 생명과 죽음. 그리고 삶이 공존하는 이 곳.
내리는 눈이 병원의 보도블럭과 정원을 새하얗게 덮는 동안 H와의 병원인연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마음이 아프신가봐요.”
“응, 오늘 좀 그렇네. 그사람 제대로 못 펴보고 간 거 내가 잘 알지. 딱한 사람이야.”
“최근에 J님 만나면서 잘지내는 모습보고 고마웠어요. 후반에 J님 같은 좋은 분을 만났으니 좋으실 거예요. 따뜻한 마음으로 가셨을거예요. 이렇게 포근한 눈처럼이요.”
“그런가. 이간호사님은 그동안 이런사람 저런사람 많이 봤겠지만 그래도 H의 천사아닌가.”
“네,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기도하잖아요.”
“응, 그렇지. 그래야지.”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밤이 많이 깊었어요.”
“응, 그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