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작
끈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2-12-20 오후 14:34:58
- 이아르미(삼성서울병원 간호사)
“고마, 단디 잡으라!”
끈을 꼭 쥐고 있던 할아버지의 손은 할머니를 향한다. 할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할아버지는 그 손을 놓칠새랴, 꼭 붙들고 천천히 걸음을 뗀다.
“고마해라.. 내 힘들다..”
기력이 없는 할아버지는 얼마 못가 주저앉고 만다.
“어데! 퍼뜩 업히라!”
할머니는 깡마른 할아버지를 단숨에 업고 병실 밖을 나가자 할아버지는 민망해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야야, 사람들이 본다 안카나. 고마하고 드가자..”
“됐다, 마.. 누가 본다 카노? 오늘 날씨가 참말로 좋다 안카나.. 잔말 마라.”
숨 한번 크게 고른 후 할머니는 천천히 걷는다.
‘이 양반 와 이리 가볍노.. 숨은 와 이리 거칠게 쉬노.. 몸은 또 와 이리 차노..’
휴게실 창밖으로 하얀 벚꽃이 흩날리고 할머니의 눈에도 어느 새 하얀 눈물이 흐른다.
병실로 돌아온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침상 난간에 묶인 끈을 할아버지 손에 쥐어 준다.
“고맙데이.. 꽃 귀경 잘 했데이.. 내 벚꽃이 이리 이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참말로 고맙데
이.. 그리고 미안하데이..”
“됐다, 내가 보고 싶어 그런 기다.. 퍼뜩 자래이..”
노부부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지만 몇 십 년 만에 함께 바라본 벚꽃이 눈앞에 아른 거려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유난히도 추운 어느 겨울 날.. 할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여.. 내다..”
떨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순간 정적이 흘렀다.
“누군교? 와요? 와 전화 했습니꺼?”
할머니의 목소리는 얼음장만큼 차갑고 날카로웠다. 30년 만에 듣는 남편의 목소리.. 할머니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이 아프단다.. 그.. 머라카드라 어.. 그래.. 백혈병 이라카데.. 내 입원해야 한단다.”
간절하고 절실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야야, 내 말 듣고 있나? 내 참 우습제? 꼴 참 좋다카고 있제? 미안타.. 내 연락할 사람이 니 밖에 없데이..”
“몇 십 년 만에 전화해가 하는 소리가.. 뭐? 아프다꼬? 그래서.. 어딘데?”
얼음장 같았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내 사르르 녹아 내렸다.
30여 년 만에 부산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보자 할머니는 다리가 풀리는 것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말했다.
“하이고, 마.. 꼴좋다.”
“이리 좀 와보이소! 이 양반 코피 납니더!”
병동에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 됐다마. 선상님 괘안습니더, 내 하도 코가 답답해가 건들였더니.. 에이!! 피 마이 안납니더, 니는 별거 아닌데 바쁜 선상님을 와 부르노!”
할아버지는 휴지로 코를 틀어막으며 할머니를 타박했다.
“참말로.. 내가 코 후비라 했노? 지가 지 손으로 파 놓고 누구한테 썽을 내노!”
“하이고, 두 분 쫌 그만 하이소. 어째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꼬. 할배요 지금 혈소판이 낮아가 피나면 큰일 난다 아입니꺼. 할매 말 쫌 들으이소 마.”
간호사는 할아버지 코에 박힌 휴지를 빼고 솜으로 막았다.
“하이고.. 선상님 내가 저번에도 말했다 안카나.. 이 양반이랑 나는 전생에 웬수였다. 웬수!!”
하지만 할머니의 눈은 어느 새 할아버지의 코를 향해 있었다.
‘웬수.. 조심 좀하지.. 저게 머꼬..’
그간의 세월에 묻어온 설움과 울분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 듯 노부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기 일쑤였다.
“뭔 노무 몸뚱이가 성한 데가 없노.. 혈압이 뭐 150이 넘는다카이, 혈압 높아가 머리 터져 죽는 거 아이가?”
격양된 할머니의 말투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할아버지는
“됐다, 마.. 머? 머리 터져 죽어? 니 지금 말이라꼬 하는 기가?”
간호사가 건넨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신부전.. 여섯 개의 약봉지를 뜯어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조용히 병실로 나와
“선상님.. 저 양반 괜찮은 기가? 요 봐 바라. 어제는 혈압이 안 높았는데.. 오늘은 와 이리 높노?”
‘혀랍 백삼십이에 육십칠, 해모그로빈 팔 혈서판 만’
할머니는 옷 안주머니에서 혈압과 혈액검사 결과가 빼곡히 적힌 낡은 수첩을 꺼내들고 간호사에게 어제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할매요.. 할배 억수로 걱정 되나보네예.. 할배 앞에선 잡아 묵을 것처럼 으르렁 하더니만..”
“어데.. 몇 십 년 떨어져 살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데이.. 저 양반 때문에 내 몸뚱이 성할 날 없이 고생도 마이 했재.. 그래서 미워하고 원망도 마이 했다. 근데 우짜겠노.. 미우나 고우나 부부 아니겠나..”
할머니는 병실 문밖에서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맺어 준 부부의 끈.. 한때 노부부는 서로를 향해 곧게 뻗은 끈을 잡고 행복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없이 떠나면서 노부부가 잡고 있던 끈은 엉키고 꼬이게 되었다. 그 끈을 놓은 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부의 끈은 질기고 단단하기에 놓칠 수는 없지만 쉽게 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노부부는 엉키고 꼬여있던 잠시 놓았던 끈을 몇 십 년 만에 이곳 혈액종양내과에서 다시 잡았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몇 주가 흘러 할아버지는 밥 한술 뜨기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다.
“고마 퍼뜩 묵으라.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안카나. 안 묵으면 니만 손해다.”
할머니는 국에 말은 밥 한 숟가락을 할아버지 입에 억지로 넣었다.
“치워삐라. 묵기 싫다 안카나.”
할아버지는 국에 말은 밥을 그대로 뱉어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밥상을 치우고 간호사실로 나왔다.
“선상님. 우리 할배 밥을 통 못 먹네. 저러다 굶어 죽는 거 아이가?”
진토제, 영양제가 투여 중인 것을 알고 있지만 할머니의 걱정은 날로 늘어갔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상태에 더 예민해져 수시로 할아버지의 체온을 쟀다.
‘39도’
“선상님, 이 양반 열이 와 이리 오르노! 저러다 죽는 거 아이가?”
결국 할아버지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 패혈증이 찾아왔고 치료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정교수의 회진..
“선상님 저 양반 치료는 잘 되고 있습니꺼? 저러다 죽는 거 아임니꺼?”
정교수는 조용히 할머니를 불렀다. 최소한의 치료로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정교수의 말.. 매일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할머니의 등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할머니의 모습은 병원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심폐소생술거부(DNR)를 결정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할머니가 병동에 들어섰다.
“할매.. 괜찮습니꺼? 어디 갔다 오셨어예?”
간호사의 걱정 어린 말에
“하모, 괘안타.. 울 할배 잘 있었나?”
할머니는 애써 웃으며 치료실로 들어갔다.
“어데 갔다 이제 왔노! 어데 가면 간다꼬 말을 하고 가야될 꺼 아이가!!”
할아버지는 퀭해진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타박했다.
“와요? 내가 또 누구처럼 마 할배 버리고 내뺐을까봐?”
“그래.. 이 할매야.. 내는 할매가 내캉 도망 갔을까봐 무서웠데이.. 아무데도 가지 마래이..”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참말로.. 언제부터 내 생각을 그래 했노, 와요? 밧줄로 꽁꽁 묶어삐까?”
치료실을 나와 휴게실로 향한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부산 선암사.. 어제 하루 동안 할머니가 있었던 곳이다.
30년 전.. 말 한마디 없이 남편이 떠났다. 버림받아 홀로 남겨졌단 생각에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두 아들.. 내 자식새끼만큼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고 미움과 원망은 쌓이고 쌓여 강인한 마음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사람의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보자 미움과 원망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부처님, 우야면 좋습니꺼.. 부처님 말씀마냥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맞습니더.. 내.. 저 양반.. 살려달란 말은 아임니더.. 75년이면 살만큼 살았지예.. 저 양반 밉기도 마이 밉고 원망도 마이 했습니더..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꼬.. 불쌍하다 안캅니까? 가는 날까지 편하게 갔음 좋겠습니더.. 부처님 쪼매만 도와 주이소.. 자비 좀 베풀어 주실거지예..’
그렇게 할머니는 오후 내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할머니가 없던 부산병원 치료실.. 그곳엔 적막이 흐르고 공기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야야, 니 어매한테 전화 좀 해봐라. 우째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노.”
“간호사님, 우리 할매 어데 갔습니꺼? 우리 할매 쫌 찾아 주이소.”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할머니 걱정을 했다.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를 간호하던 작은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 지금 부산에 가셨어요. 내일 오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를 안심 시켰지만 치료실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어데? 와 이제 왔노? 어디 갔다 왔노?”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날 그렇게 할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30년 전..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싫어 아내와 두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서자 장밋빛 인생이 찾아온 듯 했다. 하지만 덜컥 암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병을 앓게 되자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살면서 가장 미안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가장 그리운 사람.. 바로 아내였다. 몇 십 년 만에 용기를 내 연락을 했고 고맙게도 받아주었다. 아내와 함께 한 동안 투정과 구박조차 행복했다. 하지만 아내가 없는 동안 불안하고 불행했다. 투정과 구박이 그리웠던 하루였다.
그렇게 노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엉켜 있던 끈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서서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늦은 밤
“야야, 내 물 좀 도..”
목이 말랐던 할아버지의 외침에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력이 쇠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려고 온힘을 다해 침대에서 손을 내뻗었다. 침상난간에만 의지한 채 몸을 가누지 못해 크게 휘청거리며 위태로운 순간 할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모꼬? 와? 와 그라는데?”
“야야, 물 좀 달라꼬.. 와 이리 안 일어나노.”
“미안타, 피곤해서 몬 인났나 보다. 선상님 부르지..”
할머니는 미안해하며 할아버지에게 시원한 물은 건냈다.
“옆에 니 있는데 뭐 하러 귀찮쿠로.. 대답 없길래.. 도망 가삤는지 알았데.”
할아버지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데.. 진짜 뭐 밧줄로 꽁꽁 묶어 삐까?”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는
“밧줄로 꽁꽁 묶어 삘 순 없고 내 잘 때 필요한 거 있으면 요 끈을 요래 흔들어라.”
침상난간에 하얀 끈을 묶었다. 얼마 뒤 할아버지는 쉴새없이 침상난간의 끈을 흔들었다.
“자나?”
“와요? 물 좀 주까?”
할머니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아니.. 내 그냥.. 아이다. 자래이.”
“와? 와 뭐 할 말 있슴니꺼?”
한참을 망설이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보호자 침대에 누우려하자
“........ 내 마이 밉제?”
어렵게 입을 연다. 그러자 할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하이고 마.. 그걸 말이라고 하노. 알면서 와 묻는데..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이고 할배 미워가 마 도망치삐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기다.”
“미안타.. 지금 이라도 도망 가뿌라.. 내 그동안 할매 혼자 고생만 시키고 해준 게 없어가 미안타.. 내 잠깐이라도 니랑 있고 싶었다. 근데.. 이게 내캉 없었던 때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데이.”
순간 침묵이 흘렀다.
“됐다, 마.. 몇 십 년 만에 철 들었고 마. 너무 늦었다. 할배 철도 늦게 들었고, 내 이제 도망가기도 너무 늦었다. 그라고 미운 정도 정이다.”
“그래.. 내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고마 해라, 퍼뜩 자라.”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불을 덮어주자 몸 안 가득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미안타고.. 참말로 미안타.. 내 할매 버리고 도망 나온 것도 미안코.. 근데 내 이 무시무시한 병에 걸렸다 카니까 하늘이 무너지드라.. 이 못나이 같은게.. 자꾸 할매 니가 생각난다 안카나.. 내 이제 죽는 거.. 무섭지 않타.. 그냥 할매랑 이렇게 있고 싶었다.. 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읍따.”
어느 새 할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내 버리꼬 배부르고 등 따시게 잘 살았나?”
노부부는 잠시 끊어졌던 30년 전.. 지난날의 안부를 물었다.
“부산 바닥에서 이 김문식이 모르면 간첩 이였다 아이가.. 부산 바닥에 돈은 내가 다 긁어모았을 끼다. 내 돈..억수로 마이 벌었재. 으리으리한 집에, 삐까뻔쩍한 차에.. 내 좋다카는 사람이 그리 많더라.. 그때는.. ”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뿐.. 술에 취하고 도박에 속고, 여자에 빠져 살면서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내 처음 사업이 잘되가 눈에 비는게 없었다. 그땐 니 생각 코빼기도 안했다. 이삐고 젊은 가스나들이 내 좋타카는데.. 가족이고 뭐고 무시 했다.. 근데 돈 없어 지니깨 다 없어 지드라.. 사람 참 간사하쟤.. 내 뭐 빈털털이로 그냥 그리 살았다..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드라..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는다는 말.. ”
할아버지의 신세한탄에 할머니도 켜켜이 묵혀 두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부산 시장골목 어귀.. 허름한 돼지국밥 집에서 할머니는 두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워냈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손맛은 쪼매 좋았다 아이가.. 내 국밥집 하믄서 먹고 살만치 살았다. 우리 정수, 정후이 대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내 임마들 때문에 산거나 마찬가지 였다. 내 여자 혼자 산다꼬 무시도 마이 당하꼬 억척스럽다고 욕도 참 마이 묵었다. 니 콱 죽어 삐라고 하루에도 몇 번을 빌었는지 아나?”
그렇게 평생을 고생하면서 할머니의 손은 물마를 날이 없었고 손바닥은 굳은살로 딱딱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딱딱하고 마른 손을 살며시 잡았다.
‘하이고.. 요 쪼매난 손으로.. 얼매나 욕봤노.. 참말로 미안테이..’
노부부는 끊어졌던 30년의 과거를 곱씹으며 밤을 지새웠다.
흐드러지던 벚꽃도 하나 둘 져가던 날, 겨우 숨쉬기만을 산소마스크에 의지하며 지내던 할아버지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할머니와의 끈은 절대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침상난간에 묶인 끈을 흔들며
“미안타.. 미안타.. 미안타..”
미안하다는 말을 수 없이 되새겼다.
“됐다, 마.. 다 안데이, 고마하자, 할배 힘들데이.”
차갑게 식어버린 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비비고 주물렀다. 입김을 불자 할아버지의 손에 온기가 돌지만 아주 잠시 뿐... 서로의 손을, 그 끈을 놓지 못한 채..
노부부는 이제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주치의를 찾아갔다.
“의사선상님, 우리 할배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꺼? 할배 손도 차고 숨도 잘 못 쉬는 것 같 습니더, 왜 사람도 못 알아 봅니꺼?”
이번 주를 넘기긴 힘들 것 같다는 주치의의 말..
언제 죽냐.. 이러다 죽는 것 아니냐..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이 빨리 온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죽음.. 이 세상에서 마지막 삶인 동시에 저 세상에서 새로운 삶이기도 하다. 이생에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저생에서의 새로운 삶을 축복하기로.. 이젠 더 이상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새벽 6시 30분..
“내 30분만 자리 좀 비웁시더, 우리 할배 잘 좀 봐 주이소.”
간호사에게 할아버지를 부탁하고 할머니가 향한 곳은 병원 불교실..
할머니는 낡은 염주를 손에 놓지 않은 채
‘부처님요, 우리 할배 편히 가게 좀 도와 주이소. 내 그동안 우리 할배 미워가, 할 말, 못할 말 했던거 고만 다 잊어주이소, 더는 후회할 것도 없심니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이소.’
그렇게 1주일을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할머니는 두 아들과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오늘 서울서 얘들도 오고 대구서 동생도 온다카네. 이삔 모습 보여 주입시더"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의 몸을 닦았다. 깡마른 얼굴과 가느다란 팔다리..
‘이게 모꼬..’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할머니는 이내 가슴이 메어왔다.
“요 좀 보소, 정후이랑 정수 왔다 아임니꺼. 함 보이소.”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침울한 표정의 큰 아들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의사선상님 말이 얼마 안 남았단다, 니들도 이제 맘 단디 먹고 천천히 준비 하래이.”
할머니와 두 아들들은 한참을 말없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온 몸의 통증으로 할아버지는 신음소리만을 반복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가 지속적으로 투여됐고 할아버지의 모든 장기는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숨소리는 거칠고 차가웠다. 병동을 방문한 수녀님과 목사님에게 할머니는 마지막 기도를 부탁했다.
“내는 절에 다니꼬 우리 할배는 교회문턱도 가본 적 없습니더. 우리 할배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더.. 마지막 가는 길..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 좀 해주이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난생 처음 찬송가를 듣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음 날 새벽.. 잠깐의 쪽잠이 든 할머니는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달콤함을 느꼈다. 무서운 예감이 들어 눈이 번쩍 떠졌다.
47.. 21.. 점차 느려지는 맥박수.. 거친 호흡.. 할아버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선상님! 선상님!”
할머니의 다급한 외침에 간호사와 주치의가 달려왔다. 맥박 수는 0, 심전도 모니터 상 자발호흡이 없는 사망 상태였다.
“김문식님 2012년 6월 20일 새벽 3시 37분 사망하셨습니다.”
주치의의 사망선고..
‘할배요.. 욕봤다.. 편히 쉬시요.. 다음 세상에서 또 보입시더.. 잘가시요..’
할머니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차갑고 딱딱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비로소 노부부의 엉
켜있던 끈이 풀려 서로를 향해 곧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이 흐른 뒤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할아버지가 살았던 부산의 달동네로 향한다.
“하이고.. 와 이리 높은 데서 살았는교.. 올라가도 끝이 없다 마, 조금만 쉬자.”
할머니는 땀을 닦으며 계단에 앉는다. 유난히도 청명한 여름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이리 하늘이랑 가까운데서 살았는 기가.. 그래서 빨리 간기가.. 여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억수로 힘들었겠다..’
할머니는 다시 계단을 한발자국 천천히 오른다. 달동네 제일 높은 곳.. 남루한 할아버지의 단칸방에는 이불 한 장, 낡은 옷 몇 가지, 낡은 신발 뿐 이다. 그리고 한 켠에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
‘하이고 이걸 이래 갖고 있었나.. 하이고..’
할머니의 뺨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흐른다.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할머니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잠시 계단에 앉아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낡은 수첩과 하얀 끈을 옷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름 모를 꽃잎이 할머니 무릎에 떨어졌다.
‘할배가? 벌써 도착 했나? 우리 같이 벚꽃 봤을 때 생각 납니꺼? 그때 할배 참 어린아마냥 좋아했었는데.. 거긴 이삔 가스나들 많은겨? 벌써 다른 가스나 만난 거 아이가.. 부부사이 끈이 이래 막 무서운 기래이, 놓아도 놓아도 이기 놓는게 아니라 묶여 있는기라... 떠난게 아니라 내보다 고마 믄저 간거제, 내도 곧 갈테니 그 끈 고마 단디 잡고 있으래이..’
할머니는 한참을 꽃잎을 바라보더니 낡은 수첩에 살포시 끼워 넣는다.
“하이고, 마 시원타. 아야, 내려가자”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간다.
어느 새 하얀 끈을 할머니 손목에 묶은 채로.. 서로를 향해 곧게 뻗어있던 끈이 비로소 하나가 된 순간 이였다.
“고마, 단디 잡으라!”
끈을 꼭 쥐고 있던 할아버지의 손은 할머니를 향한다. 할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할아버지는 그 손을 놓칠새랴, 꼭 붙들고 천천히 걸음을 뗀다.
“고마해라.. 내 힘들다..”
기력이 없는 할아버지는 얼마 못가 주저앉고 만다.
“어데! 퍼뜩 업히라!”
할머니는 깡마른 할아버지를 단숨에 업고 병실 밖을 나가자 할아버지는 민망해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야야, 사람들이 본다 안카나. 고마하고 드가자..”
“됐다, 마.. 누가 본다 카노? 오늘 날씨가 참말로 좋다 안카나.. 잔말 마라.”
숨 한번 크게 고른 후 할머니는 천천히 걷는다.
‘이 양반 와 이리 가볍노.. 숨은 와 이리 거칠게 쉬노.. 몸은 또 와 이리 차노..’
휴게실 창밖으로 하얀 벚꽃이 흩날리고 할머니의 눈에도 어느 새 하얀 눈물이 흐른다.
병실로 돌아온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침상 난간에 묶인 끈을 할아버지 손에 쥐어 준다.
“고맙데이.. 꽃 귀경 잘 했데이.. 내 벚꽃이 이리 이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참말로 고맙데
이.. 그리고 미안하데이..”
“됐다, 내가 보고 싶어 그런 기다.. 퍼뜩 자래이..”
노부부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지만 몇 십 년 만에 함께 바라본 벚꽃이 눈앞에 아른 거려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유난히도 추운 어느 겨울 날.. 할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여.. 내다..”
떨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순간 정적이 흘렀다.
“누군교? 와요? 와 전화 했습니꺼?”
할머니의 목소리는 얼음장만큼 차갑고 날카로웠다. 30년 만에 듣는 남편의 목소리.. 할머니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내 마이 아프단다.. 그.. 머라카드라 어.. 그래.. 백혈병 이라카데.. 내 입원해야 한단다.”
간절하고 절실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또 한 번의 정적이 흘렀다.
“야야, 내 말 듣고 있나? 내 참 우습제? 꼴 참 좋다카고 있제? 미안타.. 내 연락할 사람이 니 밖에 없데이..”
“몇 십 년 만에 전화해가 하는 소리가.. 뭐? 아프다꼬? 그래서.. 어딘데?”
얼음장 같았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내 사르르 녹아 내렸다.
30여 년 만에 부산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보자 할머니는 다리가 풀리는 것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말했다.
“하이고, 마.. 꼴좋다.”
“이리 좀 와보이소! 이 양반 코피 납니더!”
병동에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 됐다마. 선상님 괘안습니더, 내 하도 코가 답답해가 건들였더니.. 에이!! 피 마이 안납니더, 니는 별거 아닌데 바쁜 선상님을 와 부르노!”
할아버지는 휴지로 코를 틀어막으며 할머니를 타박했다.
“참말로.. 내가 코 후비라 했노? 지가 지 손으로 파 놓고 누구한테 썽을 내노!”
“하이고, 두 분 쫌 그만 하이소. 어째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꼬. 할배요 지금 혈소판이 낮아가 피나면 큰일 난다 아입니꺼. 할매 말 쫌 들으이소 마.”
간호사는 할아버지 코에 박힌 휴지를 빼고 솜으로 막았다.
“하이고.. 선상님 내가 저번에도 말했다 안카나.. 이 양반이랑 나는 전생에 웬수였다. 웬수!!”
하지만 할머니의 눈은 어느 새 할아버지의 코를 향해 있었다.
‘웬수.. 조심 좀하지.. 저게 머꼬..’
그간의 세월에 묻어온 설움과 울분들이 하나씩 터져 나오 듯 노부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기 일쑤였다.
“뭔 노무 몸뚱이가 성한 데가 없노.. 혈압이 뭐 150이 넘는다카이, 혈압 높아가 머리 터져 죽는 거 아이가?”
격양된 할머니의 말투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할아버지는
“됐다, 마.. 머? 머리 터져 죽어? 니 지금 말이라꼬 하는 기가?”
간호사가 건넨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신부전.. 여섯 개의 약봉지를 뜯어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조용히 병실로 나와
“선상님.. 저 양반 괜찮은 기가? 요 봐 바라. 어제는 혈압이 안 높았는데.. 오늘은 와 이리 높노?”
‘혀랍 백삼십이에 육십칠, 해모그로빈 팔 혈서판 만’
할머니는 옷 안주머니에서 혈압과 혈액검사 결과가 빼곡히 적힌 낡은 수첩을 꺼내들고 간호사에게 어제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할매요.. 할배 억수로 걱정 되나보네예.. 할배 앞에선 잡아 묵을 것처럼 으르렁 하더니만..”
“어데.. 몇 십 년 떨어져 살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데이.. 저 양반 때문에 내 몸뚱이 성할 날 없이 고생도 마이 했재.. 그래서 미워하고 원망도 마이 했다. 근데 우짜겠노.. 미우나 고우나 부부 아니겠나..”
할머니는 병실 문밖에서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맺어 준 부부의 끈.. 한때 노부부는 서로를 향해 곧게 뻗은 끈을 잡고 행복하게 살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말없이 떠나면서 노부부가 잡고 있던 끈은 엉키고 꼬이게 되었다. 그 끈을 놓은 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부의 끈은 질기고 단단하기에 놓칠 수는 없지만 쉽게 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노부부는 엉키고 꼬여있던 잠시 놓았던 끈을 몇 십 년 만에 이곳 혈액종양내과에서 다시 잡았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몇 주가 흘러 할아버지는 밥 한술 뜨기 힘들 정도로 기력이 떨어졌다.
“고마 퍼뜩 묵으라.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안카나. 안 묵으면 니만 손해다.”
할머니는 국에 말은 밥 한 숟가락을 할아버지 입에 억지로 넣었다.
“치워삐라. 묵기 싫다 안카나.”
할아버지는 국에 말은 밥을 그대로 뱉어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밥상을 치우고 간호사실로 나왔다.
“선상님. 우리 할배 밥을 통 못 먹네. 저러다 굶어 죽는 거 아이가?”
진토제, 영양제가 투여 중인 것을 알고 있지만 할머니의 걱정은 날로 늘어갔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상태에 더 예민해져 수시로 할아버지의 체온을 쟀다.
‘39도’
“선상님, 이 양반 열이 와 이리 오르노! 저러다 죽는 거 아이가?”
결국 할아버지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 패혈증이 찾아왔고 치료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정교수의 회진..
“선상님 저 양반 치료는 잘 되고 있습니꺼? 저러다 죽는 거 아임니꺼?”
정교수는 조용히 할머니를 불렀다. 최소한의 치료로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라는 정교수의 말.. 매일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할머니의 등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할머니의 모습은 병원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심폐소생술거부(DNR)를 결정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할머니가 병동에 들어섰다.
“할매.. 괜찮습니꺼? 어디 갔다 오셨어예?”
간호사의 걱정 어린 말에
“하모, 괘안타.. 울 할배 잘 있었나?”
할머니는 애써 웃으며 치료실로 들어갔다.
“어데 갔다 이제 왔노! 어데 가면 간다꼬 말을 하고 가야될 꺼 아이가!!”
할아버지는 퀭해진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타박했다.
“와요? 내가 또 누구처럼 마 할배 버리고 내뺐을까봐?”
“그래.. 이 할매야.. 내는 할매가 내캉 도망 갔을까봐 무서웠데이.. 아무데도 가지 마래이..”
할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참말로.. 언제부터 내 생각을 그래 했노, 와요? 밧줄로 꽁꽁 묶어삐까?”
치료실을 나와 휴게실로 향한 할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부산 선암사.. 어제 하루 동안 할머니가 있었던 곳이다.
30년 전.. 말 한마디 없이 남편이 떠났다. 버림받아 홀로 남겨졌단 생각에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두 아들.. 내 자식새끼만큼은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고 미움과 원망은 쌓이고 쌓여 강인한 마음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사람의 한없이 나약한 모습을 보자 미움과 원망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부처님, 우야면 좋습니꺼.. 부처님 말씀마냥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맞습니더.. 내.. 저 양반.. 살려달란 말은 아임니더.. 75년이면 살만큼 살았지예.. 저 양반 밉기도 마이 밉고 원망도 마이 했습니더..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꼬.. 불쌍하다 안캅니까? 가는 날까지 편하게 갔음 좋겠습니더.. 부처님 쪼매만 도와 주이소.. 자비 좀 베풀어 주실거지예..’
그렇게 할머니는 오후 내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할머니가 없던 부산병원 치료실.. 그곳엔 적막이 흐르고 공기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야야, 니 어매한테 전화 좀 해봐라. 우째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노.”
“간호사님, 우리 할매 어데 갔습니꺼? 우리 할매 쫌 찾아 주이소.”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할머니 걱정을 했다.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를 간호하던 작은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 지금 부산에 가셨어요. 내일 오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를 안심 시켰지만 치료실 병실 문이 열릴 때마다
“어데? 와 이제 왔노? 어디 갔다 왔노?”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날 그렇게 할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30년 전..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싫어 아내와 두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서자 장밋빛 인생이 찾아온 듯 했다. 하지만 덜컥 암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병을 앓게 되자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살면서 가장 미안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가장 그리운 사람.. 바로 아내였다. 몇 십 년 만에 용기를 내 연락을 했고 고맙게도 받아주었다. 아내와 함께 한 동안 투정과 구박조차 행복했다. 하지만 아내가 없는 동안 불안하고 불행했다. 투정과 구박이 그리웠던 하루였다.
그렇게 노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엉켜 있던 끈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서서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늦은 밤
“야야, 내 물 좀 도..”
목이 말랐던 할아버지의 외침에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력이 쇠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려고 온힘을 다해 침대에서 손을 내뻗었다. 침상난간에만 의지한 채 몸을 가누지 못해 크게 휘청거리며 위태로운 순간 할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모꼬? 와? 와 그라는데?”
“야야, 물 좀 달라꼬.. 와 이리 안 일어나노.”
“미안타, 피곤해서 몬 인났나 보다. 선상님 부르지..”
할머니는 미안해하며 할아버지에게 시원한 물은 건냈다.
“옆에 니 있는데 뭐 하러 귀찮쿠로.. 대답 없길래.. 도망 가삤는지 알았데.”
할아버지는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어데.. 진짜 뭐 밧줄로 꽁꽁 묶어 삐까?”
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는
“밧줄로 꽁꽁 묶어 삘 순 없고 내 잘 때 필요한 거 있으면 요 끈을 요래 흔들어라.”
침상난간에 하얀 끈을 묶었다. 얼마 뒤 할아버지는 쉴새없이 침상난간의 끈을 흔들었다.
“자나?”
“와요? 물 좀 주까?”
할머니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아니.. 내 그냥.. 아이다. 자래이.”
“와? 와 뭐 할 말 있슴니꺼?”
한참을 망설이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보호자 침대에 누우려하자
“........ 내 마이 밉제?”
어렵게 입을 연다. 그러자 할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하이고 마.. 그걸 말이라고 하노. 알면서 와 묻는데..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이고 할배 미워가 마 도망치삐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기다.”
“미안타.. 지금 이라도 도망 가뿌라.. 내 그동안 할매 혼자 고생만 시키고 해준 게 없어가 미안타.. 내 잠깐이라도 니랑 있고 싶었다. 근데.. 이게 내캉 없었던 때보다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데이.”
순간 침묵이 흘렀다.
“됐다, 마.. 몇 십 년 만에 철 들었고 마. 너무 늦었다. 할배 철도 늦게 들었고, 내 이제 도망가기도 너무 늦었다. 그라고 미운 정도 정이다.”
“그래.. 내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고마 해라, 퍼뜩 자라.”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이불을 덮어주자 몸 안 가득 따뜻한 온기가 퍼졌다.
“미안타고.. 참말로 미안타.. 내 할매 버리고 도망 나온 것도 미안코.. 근데 내 이 무시무시한 병에 걸렸다 카니까 하늘이 무너지드라.. 이 못나이 같은게.. 자꾸 할매 니가 생각난다 안카나.. 내 이제 죽는 거.. 무섭지 않타.. 그냥 할매랑 이렇게 있고 싶었다.. 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읍따.”
어느 새 할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내 버리꼬 배부르고 등 따시게 잘 살았나?”
노부부는 잠시 끊어졌던 30년 전.. 지난날의 안부를 물었다.
“부산 바닥에서 이 김문식이 모르면 간첩 이였다 아이가.. 부산 바닥에 돈은 내가 다 긁어모았을 끼다. 내 돈..억수로 마이 벌었재. 으리으리한 집에, 삐까뻔쩍한 차에.. 내 좋다카는 사람이 그리 많더라.. 그때는.. ”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뿐.. 술에 취하고 도박에 속고, 여자에 빠져 살면서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내 처음 사업이 잘되가 눈에 비는게 없었다. 그땐 니 생각 코빼기도 안했다. 이삐고 젊은 가스나들이 내 좋타카는데.. 가족이고 뭐고 무시 했다.. 근데 돈 없어 지니깨 다 없어 지드라.. 사람 참 간사하쟤.. 내 뭐 빈털털이로 그냥 그리 살았다..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드라..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는다는 말.. ”
할아버지의 신세한탄에 할머니도 켜켜이 묵혀 두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부산 시장골목 어귀.. 허름한 돼지국밥 집에서 할머니는 두 아들을 억척스럽게 키워냈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손맛은 쪼매 좋았다 아이가.. 내 국밥집 하믄서 먹고 살만치 살았다. 우리 정수, 정후이 대학 보내고 장가 보내고.. 내 임마들 때문에 산거나 마찬가지 였다. 내 여자 혼자 산다꼬 무시도 마이 당하꼬 억척스럽다고 욕도 참 마이 묵었다. 니 콱 죽어 삐라고 하루에도 몇 번을 빌었는지 아나?”
그렇게 평생을 고생하면서 할머니의 손은 물마를 날이 없었고 손바닥은 굳은살로 딱딱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딱딱하고 마른 손을 살며시 잡았다.
‘하이고.. 요 쪼매난 손으로.. 얼매나 욕봤노.. 참말로 미안테이..’
노부부는 끊어졌던 30년의 과거를 곱씹으며 밤을 지새웠다.
흐드러지던 벚꽃도 하나 둘 져가던 날, 겨우 숨쉬기만을 산소마스크에 의지하며 지내던 할아버지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할머니와의 끈은 절대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침상난간에 묶인 끈을 흔들며
“미안타.. 미안타.. 미안타..”
미안하다는 말을 수 없이 되새겼다.
“됐다, 마.. 다 안데이, 고마하자, 할배 힘들데이.”
차갑게 식어버린 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비비고 주물렀다. 입김을 불자 할아버지의 손에 온기가 돌지만 아주 잠시 뿐... 서로의 손을, 그 끈을 놓지 못한 채..
노부부는 이제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다음 날 할머니는 주치의를 찾아갔다.
“의사선상님, 우리 할배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꺼? 할배 손도 차고 숨도 잘 못 쉬는 것 같 습니더, 왜 사람도 못 알아 봅니꺼?”
이번 주를 넘기긴 힘들 것 같다는 주치의의 말..
언제 죽냐.. 이러다 죽는 것 아니냐..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의 죽음이 빨리 온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죽음.. 이 세상에서 마지막 삶인 동시에 저 세상에서 새로운 삶이기도 하다. 이생에서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저생에서의 새로운 삶을 축복하기로.. 이젠 더 이상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새벽 6시 30분..
“내 30분만 자리 좀 비웁시더, 우리 할배 잘 좀 봐 주이소.”
간호사에게 할아버지를 부탁하고 할머니가 향한 곳은 병원 불교실..
할머니는 낡은 염주를 손에 놓지 않은 채
‘부처님요, 우리 할배 편히 가게 좀 도와 주이소. 내 그동안 우리 할배 미워가, 할 말, 못할 말 했던거 고만 다 잊어주이소, 더는 후회할 것도 없심니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이소.’
그렇게 1주일을 매일 같이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할머니는 두 아들과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오늘 서울서 얘들도 오고 대구서 동생도 온다카네. 이삔 모습 보여 주입시더"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의 몸을 닦았다. 깡마른 얼굴과 가느다란 팔다리..
‘이게 모꼬..’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할머니는 이내 가슴이 메어왔다.
“요 좀 보소, 정후이랑 정수 왔다 아임니꺼. 함 보이소.”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침울한 표정의 큰 아들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의사선상님 말이 얼마 안 남았단다, 니들도 이제 맘 단디 먹고 천천히 준비 하래이.”
할머니와 두 아들들은 한참을 말없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온 몸의 통증으로 할아버지는 신음소리만을 반복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가 지속적으로 투여됐고 할아버지의 모든 장기는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숨소리는 거칠고 차가웠다. 병동을 방문한 수녀님과 목사님에게 할머니는 마지막 기도를 부탁했다.
“내는 절에 다니꼬 우리 할배는 교회문턱도 가본 적 없습니더. 우리 할배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더.. 마지막 가는 길.. 편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 좀 해주이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난생 처음 찬송가를 듣자..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음 날 새벽.. 잠깐의 쪽잠이 든 할머니는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달콤함을 느꼈다. 무서운 예감이 들어 눈이 번쩍 떠졌다.
47.. 21.. 점차 느려지는 맥박수.. 거친 호흡.. 할아버지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선상님! 선상님!”
할머니의 다급한 외침에 간호사와 주치의가 달려왔다. 맥박 수는 0, 심전도 모니터 상 자발호흡이 없는 사망 상태였다.
“김문식님 2012년 6월 20일 새벽 3시 37분 사망하셨습니다.”
주치의의 사망선고..
‘할배요.. 욕봤다.. 편히 쉬시요.. 다음 세상에서 또 보입시더.. 잘가시요..’
할머니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차갑고 딱딱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비로소 노부부의 엉
켜있던 끈이 풀려 서로를 향해 곧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이 흐른 뒤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할아버지가 살았던 부산의 달동네로 향한다.
“하이고.. 와 이리 높은 데서 살았는교.. 올라가도 끝이 없다 마, 조금만 쉬자.”
할머니는 땀을 닦으며 계단에 앉는다. 유난히도 청명한 여름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이리 하늘이랑 가까운데서 살았는 기가.. 그래서 빨리 간기가.. 여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억수로 힘들었겠다..’
할머니는 다시 계단을 한발자국 천천히 오른다. 달동네 제일 높은 곳.. 남루한 할아버지의 단칸방에는 이불 한 장, 낡은 옷 몇 가지, 낡은 신발 뿐 이다. 그리고 한 켠에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
‘하이고 이걸 이래 갖고 있었나.. 하이고..’
할머니의 뺨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흐른다.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고 할머니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온다. 잠시 계단에 앉아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낡은 수첩과 하얀 끈을 옷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이름 모를 꽃잎이 할머니 무릎에 떨어졌다.
‘할배가? 벌써 도착 했나? 우리 같이 벚꽃 봤을 때 생각 납니꺼? 그때 할배 참 어린아마냥 좋아했었는데.. 거긴 이삔 가스나들 많은겨? 벌써 다른 가스나 만난 거 아이가.. 부부사이 끈이 이래 막 무서운 기래이, 놓아도 놓아도 이기 놓는게 아니라 묶여 있는기라... 떠난게 아니라 내보다 고마 믄저 간거제, 내도 곧 갈테니 그 끈 고마 단디 잡고 있으래이..’
할머니는 한참을 꽃잎을 바라보더니 낡은 수첩에 살포시 끼워 넣는다.
“하이고, 마 시원타. 아야, 내려가자”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간다.
어느 새 하얀 끈을 할머니 손목에 묶은 채로.. 서로를 향해 곧게 뻗어있던 끈이 비로소 하나가 된 순간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