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작
별이 빛나던 밤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2-12-20 오후 13:45:21
- 박영희(경북 경산시 대원보건진료소)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막 잠이 들려는 참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현관에 나가니 유리문 너머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겁이 났으나 보건진료소에 급한 볼일이 있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그는 ‘화장’이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말기 암으로 대구의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더는 희망이 없어 오늘 병원차로 몇 시간 전 집으로 모셔왔다는 것이다. 병원차가 돌아가고 나서 보니 링거 바늘이 꽂혀있던 팔이 부어 있었고, 수액이 들어가질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것도 먹을 수 없어 링거액만이라도 마저 맞게 해 주고 싶어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했다. 함께 자기 집에 좀 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왔다.
산골 보건진료소에 근무한 지 겨우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은 부모님께서 계시는 고향에서 네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다. 처음 부임하면서 높고 깊은 고개를 두 개나 넘다 보니 멀미까지 했다. 두 번째 고개는 비포장이었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껴지는 아득한 길 위에 잠시 쉬면서 심호흡을 했다. 고지대의 적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길이 다시 오지 않을 내 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음을 예감했던 걸까. 그렇게 산을 감고 돌아 만난 작은 면 소재지에서 다시 오 킬로미터나 더 들어간 동네에 내가 근무할 진료소가 있었다.
면 소재지에서 그곳까지 오는 길은 그때 겨우 포장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곳 오지 마을에서 얼마 동안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갖가지 야생초와 은빛 개울물이 내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위안을 주었다.
사각의 썰렁한 건물이었다. 사면이 흰색으로 칠해진 아무 장식 없는 건물에 지붕은 파란 기와가 얹혀 있었다. 화단에는 라일락 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작은 건물 내부는 숙소와 진료실과 대기실로 나뉘어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과 언니들 그늘에서만 자란 나는 독립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키워왔다. 문명과는 먼 외진 곳이지만 내 영역이 생긴 것이 좋았다. 부모님은 나와 달리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을 만나고 집을 둘러보며 보수를 해주셨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당분간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철재장 속에 가득 들어있던 문서들을 꺼내어 밤마다 훑어보며 업무 파악을 했다. 주민의 진료 기록을 살피면서 직무 관련 책자도 다시 보았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그곳에서 석유난로에 기름 붓는 방법도 배웠다. 밋밋한 흰 벽에 마른 꽃과 그림을 붙였다. 일주일 만에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가 허전했으나 엄마와 나는 모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저녁을 맞았다. 일찌감치 엄마와 자리를 펴고 누웠다. 산골의 늦가을 밤은 빠르고 깊었다.
그날 밤 낯선 남자의 방문은 당황스러웠다. 진료소가 있던 동네 지명이 ‘구천’이라 꺼림칙했는데, ‘화장’이란 동네 이름을 들으니 무섭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를 어떻게 믿나.
그러나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교체용 바늘과 물품을 챙겨 그를 따라나서자 엄마도 같이 나섰다.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칠흑 같은 밤중에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막내딸을 덜렁 봉고차에 태워 보내기에는 엄마도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차는 포장도 안 된 길을 덜컹대며 달렸다. 가도 가도 도착지가 안 나왔다. 인신매매범이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유괴하여 팔아넘긴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던 터라 더욱 겁이 났다. 두려움과 긴장의 시간이었다.
도착한 곳은 지붕이 낮은 집이었다. 인신매매범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안내된 방은 천정이 머리에 닿을 것 같았다. 어두침침한 방에는 병마에 지친 앙상하고 초췌한 환자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누워 있었다.
침침한 조명 아래서 가지고 온 주삿바늘이 환자의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혈관보다 더 굵어 보였다. 혈관은 손상되었거나 숨어버려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살핀 끝에 겨우 혈관 하나를 찾았다. 다행히 연결에 성공했다. 굳었던 표정이 풀어짐과 동시에 영혼의 반이 떠나 버린 듯한 환자의 얼굴에서도 순간 희미한 미소가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엄마의 얼굴에도 비로소 평화가 깃들었다. 엄마는 방 밖에서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이다. 딸이 선택한 길 위에서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마당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수한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이 빛나는 광경을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날 밤의 별들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추어 주었다.
진료소로 돌아온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곳은 별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또 생각보다 오래 이곳에 머물게 될 것 같다고.
그날의 별들은 이십여 년 묵은 세월의 벽을 뚫고 아직도 내 마음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막 잠이 들려는 참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났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현관에 나가니 유리문 너머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겁이 났으나 보건진료소에 급한 볼일이 있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그는 ‘화장’이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말기 암으로 대구의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더는 희망이 없어 오늘 병원차로 몇 시간 전 집으로 모셔왔다는 것이다. 병원차가 돌아가고 나서 보니 링거 바늘이 꽂혀있던 팔이 부어 있었고, 수액이 들어가질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것도 먹을 수 없어 링거액만이라도 마저 맞게 해 주고 싶어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했다. 함께 자기 집에 좀 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왔다.
산골 보건진료소에 근무한 지 겨우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은 부모님께서 계시는 고향에서 네 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었다. 처음 부임하면서 높고 깊은 고개를 두 개나 넘다 보니 멀미까지 했다. 두 번째 고개는 비포장이었다. 하늘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껴지는 아득한 길 위에 잠시 쉬면서 심호흡을 했다. 고지대의 적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길이 다시 오지 않을 내 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음을 예감했던 걸까. 그렇게 산을 감고 돌아 만난 작은 면 소재지에서 다시 오 킬로미터나 더 들어간 동네에 내가 근무할 진료소가 있었다.
면 소재지에서 그곳까지 오는 길은 그때 겨우 포장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곳 오지 마을에서 얼마 동안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갖가지 야생초와 은빛 개울물이 내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위안을 주었다.
사각의 썰렁한 건물이었다. 사면이 흰색으로 칠해진 아무 장식 없는 건물에 지붕은 파란 기와가 얹혀 있었다. 화단에는 라일락 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작은 건물 내부는 숙소와 진료실과 대기실로 나뉘어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과 언니들 그늘에서만 자란 나는 독립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키워왔다. 문명과는 먼 외진 곳이지만 내 영역이 생긴 것이 좋았다. 부모님은 나와 달리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을 만나고 집을 둘러보며 보수를 해주셨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당분간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철재장 속에 가득 들어있던 문서들을 꺼내어 밤마다 훑어보며 업무 파악을 했다. 주민의 진료 기록을 살피면서 직무 관련 책자도 다시 보았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그곳에서 석유난로에 기름 붓는 방법도 배웠다. 밋밋한 흰 벽에 마른 꽃과 그림을 붙였다. 일주일 만에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가 허전했으나 엄마와 나는 모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저녁을 맞았다. 일찌감치 엄마와 자리를 펴고 누웠다. 산골의 늦가을 밤은 빠르고 깊었다.
그날 밤 낯선 남자의 방문은 당황스러웠다. 진료소가 있던 동네 지명이 ‘구천’이라 꺼림칙했는데, ‘화장’이란 동네 이름을 들으니 무섭기까지 했다. 더욱이 그를 어떻게 믿나.
그러나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교체용 바늘과 물품을 챙겨 그를 따라나서자 엄마도 같이 나섰다.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칠흑 같은 밤중에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막내딸을 덜렁 봉고차에 태워 보내기에는 엄마도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차는 포장도 안 된 길을 덜컹대며 달렸다. 가도 가도 도착지가 안 나왔다. 인신매매범이 봉고차를 타고 다니며 사람을 유괴하여 팔아넘긴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던 터라 더욱 겁이 났다. 두려움과 긴장의 시간이었다.
도착한 곳은 지붕이 낮은 집이었다. 인신매매범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안내된 방은 천정이 머리에 닿을 것 같았다. 어두침침한 방에는 병마에 지친 앙상하고 초췌한 환자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누워 있었다.
침침한 조명 아래서 가지고 온 주삿바늘이 환자의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혈관보다 더 굵어 보였다. 혈관은 손상되었거나 숨어버려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살핀 끝에 겨우 혈관 하나를 찾았다. 다행히 연결에 성공했다. 굳었던 표정이 풀어짐과 동시에 영혼의 반이 떠나 버린 듯한 환자의 얼굴에서도 순간 희미한 미소가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엄마의 얼굴에도 비로소 평화가 깃들었다. 엄마는 방 밖에서 기다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이다. 딸이 선택한 길 위에서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마당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수한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이 빛나는 광경을 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날 밤의 별들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추어 주었다.
진료소로 돌아온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곳은 별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는 곳이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또 생각보다 오래 이곳에 머물게 될 것 같다고.
그날의 별들은 이십여 년 묵은 세월의 벽을 뚫고 아직도 내 마음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