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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희망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1-12-15 오후 15:50:25
- 최은아 (부산성모병원)

처음부터 그랬다. 자그마한 몸을 활처럼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두 무릎을 목에 꼭 끼우고는 어둠과 하나가 된 채로 앉아 두 눈은 아이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두 눈이 아이를 보는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보는지 어둠에 녹아든 자신의 모습을 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 어머니는 항상 그런 모습으로 병실 침대에 앉아 마치 병실에 있는 옷장처럼 병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침이나 낮이나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말도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 간호사들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십여 차례 입원동안 아이 어머니는 항상 말이 없었고,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는 말에 조차 작은 떨림 같은 몸짓으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과장님 회진 때도 그랬다. 질문도 대답도 없었다. 그래서 과장님도 아이의 상태, 경과, 언제쯤 퇴원하게 될 것이란 말만 하셨다.

“선생님, 태민이가 또 입원했어요. 어제 이브닝 때 태민이 주사한다고 힘들었대요….”

아이의 이름은 태민이다. 태민이의 입원 소식은 놀랍지도 않았다. 태민이는 이제 36개월이 되는 남자 아이지만 태어날 때 받은 뇌 손상으로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뇌기능 장애아이다.

태민이의 몸무게는 8kg으로 정상 아이의 8개월 정도 수준이지만 온몸의 강직이 심하고 잦은 경련이 있으며 삼키는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잦은 흡인성 폐렴으로 입원을 하고 있다. 이제 36개월인 태민이는 벌써 십여 차례 입원을 해 거의 생후부터 집에 있는 날보다 병원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선생님, 그런데요, 어젯밤에 나이트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글쎄 병실에 들어갔는데 불도 다 꺼져있고 컴컴한데, 태민이 엄마가 새벽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앉아서 태민이를 가만히 보고 있는 거 있죠. 그래서 제가 너무 놀랐어요….”

“…”

“왜, 선생님이 전에 그랬잖아요. 옛날에 선생님 신규 때, 우울증 증상이 있던 엄마가 밤에 베개로 애기 얼굴을 눌러서 죽이려고 한적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 어머니도 밤에 계속 안자고 애만 쳐다보고 있는 게 이상했다고 그랬잖아요…. 그 생각이 갑자기 나면서 무섭더라구요. 그래서 병실 라운딩을 진짜 많이 했어요. 엄마에게 왜 그러세요, 주무세요라고 했는데도 안 주무시더라구요. 새벽 6시정도에 겨우 자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 오늘 내가 태민이 어머니하고 한번 이야기를 해 봐야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해야 할 지 그 방법을 알 길이 없었다. 예전에도 우울해 보이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몇 번이나 말을 걸어 봤지만 불필요한 질문-태민이 치료에 필요한 게 아닌 질문-에는 작은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몇 번을 시도하고 포기했는데 갑자기 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태민이 아버님은 밤에 자주 오시니?”

“태민이 아버지는 많이 바쁘신가 보던데요. 무슨 음료수 대리점 하시는 것 같던데, 오셔도 한밤중에 오셨다가 잠깐 주무시고 다시 새벽에 나가시는 것 같던데요…. 그리고 매일 오시지도 않으시던데요.”

태민이 아버님한테 전화하는 일도 마땅치는 않았다. 그냥 우리 간호사들이 느끼는 막연한 느낌뿐인데, 직접 만나서 우회해서 이야기를 해도 우리 생각이 잘 전해질지 의문인데 무턱대고 전화를 해서 걱정을 얹어 드릴 수는 없는 일이다.

12시가 넘어서 병동이 잠시 조용해졌다. 점심시간이지만 조금 늦게 갈 생각을 하고 조심스레 태민이 병실에 들어섰다.

오늘도 그랬다. 태민이 어머니는 침대에 둥글게 만 몸을 두 팔로 끌어안고는 두 눈을 태민이게 고정시키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태민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태민이가 또 많이 아팠나 봐요.”

“…”

태민이 어머니는 나를 흘끗 쳐다 본 후 인사인 듯 아는 체인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일지 말지 고민하는 몸짓을 잠깐 보이다 다시 태민이에게 시선을 고정시켜 버렸다. 나는 나의 어떠한 말도 태민이 어머니에게 부딪히지 못하고 병실 안을 몇 번 방황하다 사라지고 말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젯밤에는 태민이가 좀 잘 잤나요?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아침보다 좀 덜한 것 같죠? 열은… 좀 전에 해열제 먹어서 좀 내렸죠? 어머니 점심식사는 좀 하셨어요? 태민이가 자주 입원하니깐 많이 힘드시죠?”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태민이 어머니는 ‘괜찮아요’라고 일축해 버리며 태민이 치료에 꼭 필요한 용건이 아니면 그만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의 조심스런 방문을 어머니는 많이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피곤하시죠, 쉬세요 어머니….”

얼마 전에 남해에 있는 나비 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무수히 많은 나비들이 마치 나비 무늬 벽지처럼 박물관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네 개의 날개와 몸통이 핀으로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된 모습은 마치 전에도 날지 않았고 날아다닌다는 의미조차 전혀 모르는 듯 박제되어 있었다.

그 나비들처럼, 나비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노랑나비들처럼 태민이 어머니도 서서히 박제되어 가는 것 같았다.

어떠한 답도 못 찾고 나는 그렇게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올 여름은 날씨가 얄궂다. 내내 비가 왔다. 일조량이 평년의 반 밖에 안 될 정도로 흐리고 비가 많이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보배 또 입원해요. 어머, 은영선생님도 오랜 만이다. 잘 지냈죠. 호호.”
“어머나 우리 이쁜 보배, 어디가 또 아팠어요?”

“아휴 선생님, 올 여름은 비 때문에 날씨가 습해서 장염 환자가 많다면서요? 우리 보배가 장염인가 봐요. 자꾸 토하고 열나고 못 먹네요. 하여튼 요게 남들 하는 건 다 할라고 그래요. 호호.”

보배의 이름은 수지이다. 원래 이름이 수지이지만 수지가 이 세상 무엇보다 값진 보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 어머니와 우리 간호사들은 수지 대신 보배라고 부른다.

보배도 뇌기능 장애아이다. 보배는 다른 아이보다 너무 빨리 태어나면서 뇌손상을 많이 입었다. 보배는 뇌 기저부 손상으로 장애의 등급과 개월수가 태민이와 거의 비슷하지만 입원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보배 어머니는 보배보다 더 보배 같은 사람이다. 항상 웃으셨고 긍정적이셨다. 요번 앞에는 제법 심하게 염증이 생겨서 두 달 넘게 입원을 했었지만 그 60여일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 없었다. 희망을 버리고 우울해 하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에게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은 좀 더 좋아지겠죠!’하며 우리를 위로하였다.

병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지 않던 병실도 보배 어머니가 그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되면, 그 다음날부터 꼭꼭 닫혀있던 커튼이 마술처럼 젖혀져 있고 병실 내 모든 어머니가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고, 서로서로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고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보배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 선생님, 보배 어머니 오늘 516호로 입원했는데, 내일 태민이 옆자리가 비는데 옮겨서 태민이 어머니랑 같이 계시게 하면 안 될까요?”

“응? 왜?….”

“보배도 태민이도 같이 뇌성마비니까 서로 대화도 잘 될 것 같고, 그냥 태민이 어머니가 많이 걱정이 되어서요. 그리고 보배 어머니 성격이 워낙 좋으시니까 같이 계시면 두 분이서 대화도 하고 그러지 않을까요?”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음 그래, 부탁해 볼까. 보배 어머니라면 태민이 어머니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보배 어머니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고, 다음날 보배 어머니는 역시 너무나 흔쾌히 병실을 옮겨 주셨다.

보배 어머니가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마법은 태민이 어머니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어떤 보호자와도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던 태민이 어머니셨지만 닫혀있던 커튼을 젖히고 태민이 대신 보배 어머니를 바라보며 보배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그 큰 변화에 우리 간호사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잠시 조용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간호사들의 인계는 태민이 상태도 중요했지만 빠지지 않고 태민이 어머니의 변화되는 모습도 들어 있었다.

‘오늘은 태민이 어머니가 침대에서 내려와서 앉아 있는 거 봤어요’

‘복도 끝에 가서 음료수도 빼 오시던데요.’

‘오늘은 태민아 하고 태민이 부르던데요.’

‘오늘은 태민이 어머니가 저한테 인사하던데요.’

‘오늘 제가 어머니한테 어머니 참 동안이세요 했더니, 고마워요 하면서 살짝 웃으시던데요. 깜짝 놀랐어요.’

보배 어머니가 부린 일주일 동안의 마술로 태민이 어머니는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키시는 것 같았다.

보배는 태민이 보다 치료가 먼저 끝나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보배 어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보배 어머니, 정말 멋지세요. 그리고 감사해요. 보배 어머니 덕분에 태민이 어머니가 많이 좋아진 것 같던데, 보배 어머니 안계시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쩌죠?”

“그렇죠…. 사실 태민이 어머니하고 정말 이야기 많이 했어요. 태민이 어머니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대요. 태민이 엄마의 시댁에서는 시댁 나름 태민이가 장손인데 정상이 아니라고 자꾸 버리라고 한다네요.…. 네, 말도 안돼죠…. 그리고 태민이 아버지도 혼자 일하시다 보니까 많이 바쁘셔서 태민이 어머니하고 이야기도 많이 못하고 그래서 어머니는 하소연 할 사람도 없고.

친구요? 친구는 있겠죠. 하지만 친구들 만날 때도 태민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니까 자주 못 만나고 그러다 보니까 아예 요즘은 연락도 안하고 산다네요…. 그래서 하루 종일 애하고 둘이서만 있다 보니까 점점 더 집안에서만 있게 되고 말도 안하게 되고. 아무튼 다 우리 같은 부모들이 겪는 이야기지만 태민이 어머니가 혼자서 너무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더라구요.

간호사님 걱정대로 저 상태로 태민이 어머니를 혼자 두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금요일마다 우리 보배가 여기에 물리치료 받으러 오거든요. 태민이 어머니는 목요일에 오셔서 그동안 못 봤나 보던데. 어쨌든 이번에 퇴원하면 금요일로 날짜를 바꾸어서 같은 날 물리치료 하고, 또 그날은 우리 금요일 엄마들끼리 계모임하는 날이거든요. 예, 맞아요. 물리치료하고 맛있는 밥 먹고 커피마시고 수다 떨기로 했어요. 호호.”

“아휴 간호사님은 제가 뭘 한 게 있어서요. 그렇게 칭찬하면 제가 부끄럽잖아요. 호호호. 근데 전 간호사님한테 더 놀랐어요. 어떻게 태민이 어머니하고 저하고 병실을 같이 쓰게 할 생각을 하셨어요. 보통 다른 선생님들이나 또 의사선생님들을 보면 환자만 보지 환자 보호자한테는 어디 신경 쓰나요. 보통 말수가 좀 없나 보다 하고 말지. 더군다나 애가 아픈데 하하호호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건데.

간호사님! 정말로 제가 보기에는 간호사님이 이번에 더 큰일을 하셨어요. 그리고 태민이 어머니도 간호사님들이 신경 많이 쓰시는 걸 알고 있더라구요. 호호.”

며칠 후 태민이도 퇴원을 했고 또 며칠 후 병동으로 두 아이와 두 어머니가 오셨다. 태민이와 보배와 두 어머니들이 한손에는 커피 몇 개가 든 봉투를 들고.

“아,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하하.”

“네, 간호사님 바쁘시죠. 병동은 늘 바쁘네요. 그냥 얼굴 뵈러 잠깐 왔어요. 태민이 어머니가 가자고 해서. 호호.”

뒤에서 수줍은 듯 태민이 어머니가 웃고 있었다.

나비 박물관에 있는 노랑나비는 더 이상 박제된 모습이 아닌 작은 날개 짓으로 내 눈앞에서 날고 있었다. 힘차게 훨훨 나는 모습은 아니지만 더 이상 네 개의 날개와 몸통을 고정시키던 핀은 없었다. 박제된 유리창을 뚫고 나와서 그렇게 내 눈앞에서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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