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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간호문학상 수기 가작
청미래덩굴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11-12-15 오전 09:55:01
- 박지나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23살 대학졸업 후 첫 직장, 2009년 9월 1일 호흡기 병동으로 발령이 났다. 떨리고 긴장되는 첫 출근 유난히 시끄러운 환자가 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아프다고 호소하는 젊은 여자.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름은 영희.

수습기간, 바쁘고 긴장되는 상황에서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녀는 나를 붙잡고 통증을 호소한다. '미안해요. 빨리 안가면 선생님께 혼나요.'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알겠다고 하고 선생님께 진통제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바쁜 상황에서 같은 이야기만 전하는 내게 선생님 표정이 좋지 않다. 눈치가 보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통제가 아니다.

환자들의 혈압을 재다가 소리를 지르는 영희님의 손을 잡았다. 등도 쓸어내렸다. 길지 않은 시간 힘주어 움켜쥐던 손에 힘이 풀린다. 혈압을 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혼이 났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며칠 후 그녀의 가족이 왔다. 무표정의 두 딸과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 영희님은 폐암을 진단받았다. 조직검사를 해서 그렇게 통증이 심했나 보다. 그녀의 나이 마흔셋. 말로만 듣던 태권도학과 큰딸과 엄마와 똑 닮은 둘째 딸이 울고 있다. 회진을 따라가야 하는데 복도에서 면담이 끝난 가족의 곁에 멍하게 서 있다가 다른 병동으로 가는 회진 팀을 뒤따른다.

암 환자라는 공통점에 유난히 가족 같은 8207호 환자들.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힘들어하는 서로를 걱정하고 좋은 것은 나누어 먹는 사람들. 잘 보이고 싶고 잘하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

항암치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녀의 남편은 고민이 된다며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보호자와 환자에게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의견인지 혼란스럽다.

항암치료를 하면 고통스럽기만 하고 결국 끝은 똑같다는 이야기들이 병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마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끝을 믿어버린 사람들이 힘든 항암치료를 받는 이유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 한줄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일 것이다.

항상 겪는 일이지만 항암치료의 결정까지 의료진도 환자와 보호자들도 힘들었다. 교수님과 주치의는 젊은 나이에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암이 급속도로 전이되어 통증과 합병증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인생이 치료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영희님은 항암치료를 하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 환자가 항암치료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잘하셨어요." '결정하느라 고생하셨어요.' 라는 표현이 '잘하셨어요.' 라고 불쑥 나와 버렸다. "그런 거지? 선생님이 보기에도 이게 맞는 거지? 내가 잘했다고 말 좀 해봐" 혼자서 결정하기에는 무거운 문제이지만 누가 먼저 나서줄 수 없는 선택이기에 환자는 그 결정이 옳은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치료를 함으로 인해 그녀가 받을 득과 실이 그녀의 인생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환자와 의사, 간호사가 세 박자를 잘 맞추어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 이었다. "잘 될 꺼예요. 힘내요 우리."

부쩍 쌀쌀해진 10월 영희님이 첫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주사가 잘 되지 않는다. 혈관에 주사가 들어갔는데 피가 잘 나오질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성공했으면 하는데 잘되지 않았다.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영희님. 미숙한 손길이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죄송하다고 하고 선생님께 부탁한다.

투약하는 시간 영희님이 나에게 이리 와보라고 손짓한다. "아까는 미안해 선생님 내가 너무 예민해서. 나 꼭 살아야 해. 도와줘 응?" 아니라고 괜찮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려 했는데 영희님의 촉촉해진 눈가에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못 하고 웃으며 손을 꼭 잡아 드렸다.

흰 눈이 소복이 내린 1월 영희님은 4차 항암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선다. "또 올 게 잘 있어"

5차 항암 날짜가 되지 않았는데 영희님이 입원카드를 가지고 왔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것이다. 39℃까지 열이 펄펄 끓는다. 설상가상으로 혈소판까지 떨어진다. 혈소판이 떨어져 지혈능력이 떨어진 몸은 멍투성이다.

밤 근무를 하던 중 새벽 두 시 간호 순회를 갔다. 씩씩하고 무뚝뚝하던 큰딸이 엄마의 멍든 다리를 만지며 울고 있다. "선생님. 항암치료. 그만두고 요양하시는 게 엄마가 더 편하실까요." "이번에 CT 찍은 것에서는 암 덩어리가 줄어들고 있대요. 그런데 항암치료라는 게 정상세포까지 공격 하니까 어머니 체력이 버텨줘야 할 것 같아요."

무어라고 무엇이 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답이 없다는 현실이. 환자, 보호자와 의료진에게 너무 힘이 들지만 지치지 않고 현재에 힘을 싣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복되는 항암치료, 그녀는 여러 위기를 딛고 첫 번째 항암약물로 성공적인 효과를 보고 있었다. 많이 야위었지만, 어느 때보다 밝게 지내고 있는 영희님의 모습이 보기 좋다.

꽃향기가 물씬 나는 3월 교수님께서 영희님께 꽃바구니를 배달했다. 직접 전해온 것은 아니지만, 회진시간 보호자를 불러 배달된 꽃을 잘 받았느냐고 물어보시고는 조심스럽게 암이 깨끗하게 완치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영희님이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담담하던 아저씨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연신 고개를 숙인다.

통증의 역치가 낮아 다른 환자들 보다 고통스러워하던 젊은 여자환자의 모습이 교수님도 안타까웠을 것이다.

"좋겠다. 영희씨 이제 애들하고 남편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라" 부러운 눈빛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영희님을 축하하는 암 환자들. 그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감정을 느끼는 나.

그렇게 영희님은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리라 믿었다.

1년이 지나고 어느덧 나는 2년 차 간호사가 되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영희님이다. 까맣고 야위어진 모습으로 응급실에서 입원 온 영희님.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너무나 냉담한 환자와 보호자. "재발 했대요. 전이된 암이 퍼졌대요. 항암 치료하면 낫는 다면서요. 완치라면서요." 딸의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내 가슴을 콕콕 쑤시는 것만 같다.

통증이 심해 병원을 오자던 남편의 말에 완치됐는데 아닐 것이라며 버텨왔던 모양이다.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통증에 얼굴만 찌푸리는 모습.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까맣고 메마른 모습이 낯설다.

그렇게 재발 후 영희님은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수십 개씩 맞았다.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매일 관장을 하고 호흡수가 정상인의 반으로 줄었다. 급할 때 쓰는 호출 벨이 쉬지 않았고 며칠에 한 번씩 면담을 원했다. 집에서는 견딜 수 없는 통증과 영양제 때문에 병원을 나설 수 없지만,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불신에 환자도, 의료진들도 조금씩 지쳐갔다. 통증에 역치가 낮은 영희님은 다른 환자들보다 더 고통스러워했고 급격히 악화되었다. 반복되는 위급한 상황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도 받았다.

그녀와 가족들이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의료진에게 맡겨야만 하는 상황에 힘들어할 때, 어느 날 영희님이 내게 풀잎에 쌓은 무언가를 줬다. "선생님이게 뭔지 모르지? 친정이 의령인데 거기서만 파는 거야 하나 먹고 일해" 점심을 못 먹은 터라 먹어보고 싶었다. 신기하게 풀잎에 쌓여 있는 하얀 떡.

"근데 이 떡은 왜 잎에 쌓여 있는 거예요? 연잎인가?"

"청미래덩굴이야"

'청미래'라는 말을 국어 시간 어떤 시에서 배운 것 같은 기억이 났다. "이름 예쁘다. 밝은 미래풀이네" 그러자 아저씨께서 "여보, 여보 청미래 밝은 미래 맞네, 맞네, 여보 이거 많이 먹으면 밝은 미래 온다. 제발 많이 먹어." 먹지 못해 영양제로 하루하루 보내는 영희님이 어릴 적 먹던 망개떡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아저씨가 바로 의령까지 다녀온 것이다. 먹고 싶어 하던 것도 겨우 씹어서 힘들게 삼키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뭐라도 많이 먹이고 싶은 아저씨는 간절히 '청미래'를 바라는 마음으로 의령으로 향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 병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새로 입원 온 환자가 영희님이 통증에 시달려 앓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자 화가 난 아저씨가 큰 소리를 낸 것이다. 두 환자 모두 이해가 갔지만, 누구 하나 물러설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저씨와 복도로 나왔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는 아저씨의 말을 공감했다.

"속상하시죠." "미안해 아침부터 큰 소리 내서. 생각해보면 누구 탓도 아니야. 저 사람 저렇게 된 거 저 사람 탓도 아니고 병원 탓도 아니고. 어제 밝은 미래. 그래 나랑 저 사람한테도 밝은 미래가 올 수 있을까 했어. 근데 나 아무것도 안 바래. 진짜야. 저 사람 편하게 가는 거.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거야. 고통스럽지 않게 편안하게 가는 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아왔다. 좋아지는 모습도 나빠지는 모습도 하지만 결국 끝을 볼 때가 된 건지, 주치의가 4번이 바뀌는 동안 힘든 싸움을 하던 영희님은 이젠 밤에는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위태로운 상황으로 자주 간호사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등에 손만 갖다 대도 그렁그렁한 느낌이 난다.

"선생님!! 선생님!! 나 손 좀 잡고 있어줘!! 나 너무 불안해!!" 어느 날 일하고 있는데 영희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같은 시간 입원이 오고 나를 찾는 전화가 오고 아프다는 환자가 나오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황급히 "죄송해요!! 전화만 받고 가요!!" 뛰어가며 외치고는 입원을 받고 꼬인 일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간 중간 아저씨께서 왔다 갔다 하며 내게 와달라고 부탁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바쁜 나를 보고 몇 번이나 다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았다.

영희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죄송해 퇴근 길 병실로 갔다.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아저씨가 죄송하다고 말한다. "이런 환자도 없지? 애정결핍이야 아무튼." 아니라며 이해한다고 말하는 내 손을 잡고 복도로 나가는 아저씨. "미안해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졌나 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지 무섭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남편이라는 게 발 주물러주는 것 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해 선생님이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는지 계속 간호사님들만 찾아. 미안해"

미안하고 감사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가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덜어진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옆에 있어 드리고 싶다. 내가 간호사가 아니라면 이 유니폼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힘을 줄 수 있을까. 그 날 이후 나는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오직 환자를 위한 사람이기로 약속했다.

밤 근무 새벽 두 시 간호 순회, 모두 자는 캄캄한 병실에서 노란 불빛 하나 켜 놓고 숨이 차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간신히 앉아서 잠을 청하는 영희님의 손을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전해지는 느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는 줄 알았던 영희님이 마스크 속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이 처음 여기에 취직해서 왔을 때 실습인가 할 때 내가 시술하고 너무 아파서 소리 지르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처럼 쳐다볼 때 그때도 선생님이 지금처럼 내 손 꼭 쥐고 등을 만져 줬어. 그때 정말 거짓말 같이 안 아팠었는데. 지금이랑 그때 상황이 너무 다르지만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느낌은 참 좋다."

눈물도 웃음도 나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속으로 수 없이 되뇌는 동안 영희님은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이후 나는 주사만 놓는 것이 간호가 아님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날의 내 손길을 환자는 기억해주었다. 쓰디쓴 진통제가 아닌 따뜻한 손길로 녹아버리는 통증이 있음을 기억했다.

이틀을 쉬고 왔는데 명단에 영희님이 없다.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슬픈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하는 도중에 하얀 리본 핀을 한 영희님의 딸과 아저씨가 음료수 한 박스를 사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병동에 왔다. 늘 그렇듯 안타깝고 놀랍지만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너무나 어렵다. 오히려 보호자들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사람 잠이라도 실컷 자고 가서 다행입니다." "엄마 그날 간호사님이 재워주셔서 거의 일주일 만에 잔거예요. 그렇게 종일 주무시더니." "간호사님들 덕분에 편하게 갔습니다. 그 사람. 애쓰셨어요." 보호자들과 인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내 간호생활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환자. 따뜻한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 녹아버리는 통증을 볼 때면 영희님을 생각한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 감사한 사람.

3년 차 간호사가 된 지금, 짜증스럽고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을 때, 일이 버겁고 힘이 들 때에 나는 그녀의 '청미래'를 상상한다. 나와 환자들의 '청미래'를 위해 나는 오늘도 병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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