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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간호문학상 수필 가작
깡통참기름
[편집국] 편집부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11-12-15 오전 09:34:21
- 이선혜 (제일병원)

시장에 가면 노란색, 빨강색.. 색색의 뚜껑이 막힌 참기름을 볼 수 있다. 참기름.. 고소한 그 기름 속에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담겨있다.

나는 시장 안에 있는 참기름가게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가게에서는 참기름을 직접 짜서 손님에게 팔았는데, 참기름을 짜는 날이면 엄마는 전날 남겨두었던 연탄 불씨로 불을 피우시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었다. 불씨가 자칫 꺼지기라도 한 날이면 새벽같이 번개탄에 불을 댕기고, 그 불이 잘 피워지도록 번개탄을 연탄집게로 집어 휘휘 돌리셨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우리 가게에는 참기름을 짜기 위해 참깨를 볶던 연탄아궁이가 있었는데, 연탄불이 무사히 피워지면 엄마는 연탄 여섯 장이 나란히 들어가는 아궁이 위에 두껍고 뚜껑이 없는 철 솥을 번쩍 들어 올려놓으셨다. 내 키 위로 보이던 그 솥은 까맣고, 뜨겁고, 또 무거워보였다...

두꺼운 철 솥이 달궈지는 동안 엄마는 커다란 고무다라 한가득 참깨를 쏟아 붓고 깨끗이 씻으신 후, 조리로 깨를 걸러 체에 밭치시길 여러 번 하셨다. 모래알처럼 작은 깨알들을 조리로 걸러낼 때마다 커다란 체에는 작은 참깨 산들이 생겨났고, 그 산들이 모여 커다란 참깨 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어린 손가락은 여지없이 산에 구멍을 송송 내고는 했다.

철 솥이 뜨겁게 달궈지면 엄마는 참깨를 솥에 부으시고 깨가 노랗게, 통통하게 될 때까지 흐르는 땀을 목에 두른 수건에 닦아가며 열심히 깨를 저으셨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얼른 뛰어가 물건을 팔고 다시 뛰어 들어와 또 깨를 저으셨다. ‘톡 톡 토도독..’ 엄마가 자리를 잠깐 비우시기라도 하면, 철 솥 위 참깨들은 어느새 톡톡 튀어 올라와 바닥에 마구 떨어지곤 했다. 그때 난 그 모습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참깨가 다 볶아지면 기름 짜는 기계에 볶은 참깨를 넣고, 기계에 달린 기다란 쇠막대기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고 또 누르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참깨가 눌려서 기름이 나왔다. 누르면 누를수록 무거워지는 쇠막대기를 참으로 묵묵하게도 있는 힘껏 수차례 누르시던 엄마의 모습과 시장 가득 퍼지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참기름을 짜기 수 일 전부터 병을 모으셨는데, 소주병과 약국의 O카스병이 그것이다. 병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깨끗이 병을 씻어 그 역시 체에 나란히 밭쳐 물기를 말리고는 하셨다. 병이 말끔히 마르면 병의 주둥이에 깔때기를 꽂고 참기름을 따르셨다. 그 당시 우리 가게에는 참기름 외에 덜어 파는 콩기름도 있었는데, 콩기름 따르는 일은 내게도 시키셨지만 값비싼 참기름 따르는 일만은 시키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손님이 오면 병에 미리 담아놓은 참기름을 팔거나 손님이 원하는 만큼만 그 자리에서 바로 덜어 파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쓰시던 빨간색 깔때기가 있었는데, 엄마는 병에 참기름을 따르신 후엔 그 깔때기를 항상 깡통에 밭쳐놓곤 하셨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깔때기에 묻어있던 참기름이 방울방울 떨어져 깡통 바닥에 조금씩 고였다. 일명 깡통참기름...

엄마는 나물을 무칠 때나 또는 밥을 비빌 때처럼 참기름이 필요할 때면 기름으로 얼룩진 그 깡통을 들고 오셔서 향이 겨우 날 정도로 아주 조금씩만 넣어 주셨는데, 그마저도 엄마가 깡통을 한동안 기울이고 있어야 겨우 걸쭉한 참기름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었다. 특히나 비빔밥을 해먹을 땐 고소한 참기름을 양껏 넣어야 그 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엄마는 한결같이 깡통참기름을 들고 오셔서 참기름을 그야말로 방울방울 겨우 떨어뜨리시고는 그 깡통마저 얼른 치워가셨고, 나는 그때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아쉬워했었다.

난 우리가게에서 손님에게 파는 병에 든 참기름 맛은 본 적이 없다. 병에 든 참기름은 그야말로 ‘판매용’이었기 때문이다. 참기름 병을 꽉 막고 있는 코르크마개가 그땐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 없었을 뿐더러, 그 안에 들어있는 참기름을 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사치와도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우리 집이 참기름가게임에도 불구하고 고소한 참기름을 양껏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인색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손수 짠 맛있고 질 좋은 참기름을 내 아이들에게조차 맘껏 먹일 수 없었던 그 때 엄마의 심정을...

요즘에는 참깨로 짠 같은 이름의 ‘참기름’이긴 하지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또 시장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꽤나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그 옛날 엄마의 엄한 절제 아래 먹으며 아쉬운 마음 가득했던 깡통참기름의 깊고 진한 향과 맛은 그 어느 유명한 참기름을 양껏 넣어 먹어봐도 느낄 수가 없는 나의 유년시절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 한편에 깊이 남아있다.
  • 중앙대 건강간호대학원
  • 보험심사관리사 자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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