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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간호문학상 수기 가작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10-12-23 오후 15:22:28
- 박은화 (경남 밀양시 행복한숲속요양병원)
 
 
 장마가 끝날 때도 되었는데 소나기는 틈틈이 지나간다. 올해에는 천둥 번개에 낙뢰가 유난히도 많다. 한 병실에 어르신 새끼발가락이 괴사되어 까맣게 죽어가고 있다. 괴사된 발가락은 잘라도 동맥이 막혀 혈액순환이 안 되니 낫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약으로 낫게 할 수도 수술로 아물게 할 수도 없다는 그 발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로 검게 올라올 것이고 우리는 또 그것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을 수없이 느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 동맥혈이 막히고 괴사가 진행되어 마지막엔 패혈증으로 삶을 마무리하게 된 경우가 2번 있었다. 그 2번은 우리에게(적어도 나에게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길고도 힘들었다. 죽음이란 몇 번을 겪어도 매번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데 이곳 요양병원의 입원 평균 연령은 80세가 넘는다. 이미 질병은 만성이고 한 가지가 아니라 기본으로 3-4가지. 이분들이 회복되어 당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길어진 병간호에 무심해진 자녀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할아버지 발가락을 드레싱하는 동안 천둥 번개가 또 치고 내 머릿속은 1년 전 또 다른 치매 어르신의 썩은 다리를 치료하던 그 때로 돌아간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염증이 커지지 않도록 항생제를 쓰는 것과 매일 치료하는 것, 최대한 혈액순환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 혈당을 조절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큰 병원에 가서 동맥검사와 수술 가능여부 등 좀 더 적극적인 처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치의 과장님의 설명 끝에 가족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이미 가봤는데 어딜 더 가냐고, 다른 이는 큰 대학병원으로라도 한 번 더 가보자고. 당뇨에 고혈압, 고관절 골절이후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인지라도 맑으면 본인이 결정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의 본인상태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는 중증 치매환자다. 긴 의논 끝에 마지막으로 큰 병원에 한 번 더 가보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퇴원을 하셨다.
 
 다음날 보호자들과 함께 다시 오신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더없이 환하게 웃으면서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종합병원에서 더 이상 방법도 없고 수술 후 상처 회복이 불투명하다는 설명을 듣고 수술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호자들과 함께.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남아 있는 여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상상도 못했다.
 
 매일 같이 드레싱은 반복되고 드레싱 할 때마다 소리 지르고 저항하는 할머니는 그냥 우리의 일상이었다. 1시간도 안되어 감아놓은 거즈와 붕대 다 풀어놓고 해맑게 “왔나?” 하시며 웃는 얼굴에 화가 나다가도 어이가 없어 웃음으로 대꾸한다.
 
 “할매, 이걸 또 풀어놓으면 우짜노~오...” (요즘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호칭은 통상적으로 ‘어르신’이라 부르지만 이곳은 지역 특색이 강해서인지 경상도 특유의 호칭으로 할매라는 호칭에 환자도 직원도 더 익숙하다)
 
 치매어르신이라 베게며 이불이며 환자복이 남아나질 않았는데(바느질 된 곳은 다 뜯어 놓으심) 이제는 드레싱 한 것도 남아나질 않는다. 복잡한 가정사 때문인지 첩의 아이들까지 키웠던 할머니는 악의 없이 습관처럼 평소 욕설을 잘하셨다. 그래서 치료를 하던 중에는 항상 할머니에게서 웃을 수밖에 없는, 화를 낼 수는 더더욱 없는 욕설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어느덧 넉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어르신의 다리는 서서히 발목까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행이 아직까지 진행 속도가 느리고 통증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결과를 알고 상처치료를 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시커멓게 괴사되며 물기 없이 말라가는 다리는 흡사 오래된 고목나무의 마른 나무토막을 보는 것 같았다. 살이 썩으면 염증과 고름으로 뒤범벅이 될 텐데 발목까지는 근육이 많이 없는 부위라서 그런지 삼출물도 없이 장작 마르듯 말라만 간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오면 점점 더 진행은 빨라질 것이다. ‘이제 곧 장마가 올 텐데...’
 
 장마는 어느 새 지나가고 한 낮의 기온은 매일 같이 기록 갱신이다. 열대야도 며칠 째. 그나마 이곳 지대가 높아서 시내보다 2-3도 낮은 편이다. 두어 달이 더 지났고 괴사 조직은 정강이까지 올라왔다. 시커멓게 죽은 다리는 잡고 있어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붙어있는 다리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드디어 괴사조직의 가장자리는 염증 반은 있는 붉은 빛을 띄고 정강이의 근육 조직들은 염증반응으로 고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아직 난 살아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이제 괴사의 속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서히 통증도 고개를 들고 드레싱 후 감아 놓은 붕대 밖으로 삼출물들이 베어 나오기 시작한다. 항생제 투여가 시작 되었다. 살 썩는 냄새가 점점 강해지고 치료하는 이들의 표정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어두워져 간다. 치료를 받는 할머니의 몸부림은 점점 격해지고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거친 욕설이 튀어 나온다.
 
 “야 이○들아, 와 날 죽일라 하노!!! 이 ○○○들아~~ 내 좀 살려 도고(살려주라). 아파 죽겠다아~ 내 좀 살려 도고~ ”

 소리를 지르고 지르다 마침내는 대성통곡이 이어진다. 치료하는 다리를 잡고 있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손톱으로 할퀴고 꼬집고 온 힘을 다해 저항하신다.
 
 “할매, 마이(많이) 아프지예. 쪼매만 참으이소, 금방 끝낼께예” 하며 달래보지만 마음속으로는 연신 ‘죄송합니다.’만 읊조리고 있다.
 
 괴사된 다리를 달고 있으니 항생제 쓴다고 진행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간밤에는 끙끙 앓으셨다며 진통제 맞았다고 밤 근무 간호사가 인계를 해 준다. 약기운에 통증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치매 때문에 어제의 통증을 기억 못하시는지 밝게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신다.
 
 “왔나”
 
 “할매, 잘 주무셨습니까? 밤에 많이 아팠습니까?”
 
 “몰라, 아팠는가.”
 
 “치료 하입시더”
 
 “놔두라 마. 괜찮다”
 
 치료 준비를 하는 동안 할머니가 치매라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상적인 인지 상태였다면 지금의 할머니 다리를 보며 도저히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저렇게 맑게 웃으면서 말이다. 물론 조금 후에는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겠지만.
 
 붕대를 벗겨내니 냄새는 더 고약해지고 상처는 예상했던 대로 악화 되었다. 더군다나 삼출물의 습기와 더운 날씨로 하루 만에 곰팡이 균이 자라고 있다. 최악이다. 드레싱 방법을 바꾸어야만 한다.
 
 소독 후 클로르헥시딘에 거즈 붕대를 담궜다가 짜낸 다음 괴사 다리를 감고 경계부위의 삼출물들을 소독해 씻어낸 후 소독된 거즈로 감았다. 항생제의 정맥 투여만으로 상처부위의 염증 확산을 늦출 수가 없어 주치의는 상처부위에 항생제 가루를 직접 뿌린다. 할머니는 역시나 소리를 지르시고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빨리 마무리 해드리려 하나 이 과정은 벌써 1시간이나 걸렸다.
 
 할머니도 지쳤는지 드레싱이 끝난 후 잠시 잠이 든 모습이다. 다음 날 붕대를 풀어보니 전날 방법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곰팡이 균은 보이지 않고 경계부위는 비교적 깨끗했다. 허나 이것이 할머니를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란 걸 알기에 무력감은 머리를 누르고 이것이 현대의학의 한계인가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지금이라도 무릎 위를 절단하면 보기는 흉하겠지만 괴사를 멈추게 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 후로 며칠간 매일 같은 방법으로 드레싱은 계속 되었다. 간간이 치매증상으로 동문서답을 해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점점 할머니의 기력이 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통증은 강해지고 불안정한 할머니의 공격성은 점점 심해져 갔다.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할머니는 기저귀와 붕대를 풀어헤치고 드레싱은 몇 번이고 다시 해야 했다. 치매로 인지 상태가 떨어진 할머니에게 어떤 설명과 교육도 할머니의 행동을 교정시켜 주지는 못했다.
 
 급기야 밤에는 어쩔 수 없이 잠깐씩 억제대를 이용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밤사이 제대로 못 주무신 할머니가 아침부터 식사를 거부하신다. 어렵사리 입안으로 미음 한 숟갈을 넣었더니 “야, 이 미친○아”하시며 내 얼굴에 “퉤”하며 뱉어버리신다.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것 같다.
 
 “할매, 와 안 드실라고 하는 데예?”

 “○○아! 내 아파 죽겠다. 빨리 온나~ ○○아!”

 아들이름을 부르며 또 한 차례 대성통곡을 하신다.

 “밥을 잘 드셔야 빨리 낫지예. 할머니 아들보고 빨리 오라고 연락할 테니까 두 숟갈만 더 드시이소”
 
 아들에게 연락해드린다고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몇 숟가락 더 드시게 했으나 이제부터는 죽음의 문턱 안으로 들어설 때가 된 것 같아 가슴위로 바위덩이가 내려앉는 것처럼 답답해져 온다. 날이 갈수록 삼출물양은 많아지고 냄새는 지독해진다. 무릎 위를 지나 뒤쪽 허벅지부위까지 진행된 괴사는 이제 거즈나 붕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 매일 같이 젖어 나오는 시트와 이불. 바지는 아예 입혀놓지도 못하게 되었다.
 
 소독 후 식염수로 씻어내고 칼토스에 듀오덤까지 사용하지만 재생 목적이 아니라 삼출물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붕대위에 이제는 랩으로 침대가 젖지 않도록 시도한다.
 
 드레싱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물품을 준비하는 동안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아 질 수 없다면 고통이라도 덜하도록 하루 빨리 데려 가세요. 할머니한테 남아있는 시간이 의미가 있나요? 정신이라도 맑으면 인생 마무리 하는 시간이라도 갖는다지만 그것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힘들게 버티게 내버려 둡니까? 뭣 때문에!!’ 따지듯이 쏘아붙인다.
 
 언젠가 나의 멘토이자 직장상사인 간호과장님의 말이 생각난다. ‘여기 누워서 꼼짝 못하고 세끼 챙겨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치워주지 않으면 대소변도 해결 못하는 당신들 자신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너나 우리들의 인생이 의미가 있게 만든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고 말하던 그 분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나는 지금 또 되묻는다. ‘과연 우리들 삶에 의미 있으라고 이렇듯 많은 이들이 본인의 무의미한 삶들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무리는 내가 하겠노라고 다른 동료들을 내보낸 뒤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이라면 과장된 것일까, 할머니에게 맑은 정신이 있다면 그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리도 다리지만 할머니의 자세 때문에 또 다른 곳에서도 위험 신호가 발견된다. 옆으로 돌려 눕히고 휠체어에 태우는 등 뭘 해도 저항하는 할머니 때문에 30분 이상 체위 유지가 만만치 않다. 하다하다 안되겠다 싶어 억제대라도 사용하면 그 매듭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푸는지 우리 몇 명의 머리로 짜낸 매듭은 할머니의 5-10분간 게임으로 끝난다.
 
 그러니 계속된 체위와 면역력저하로 군데군데 피부색깔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항하는 할머니와 어떻게든 체위와 처치를 유지해 보려는 직원사이 실랑이는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상처의 염증은 항생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며칠 사이 진행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할머니의 한계가 다되어 가는 것일까, 힘없이 쳐지는 모습을 보이며 정신이 잠깐씩 돌아오면 습관적인 욕설 몇 마디를 던지지만 눈감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드레싱을 하지만 대퇴부 피부 밑으로 괴사된 조직들은 보란 듯이 깊어져가고 열이 나기 시작한다. 마약성 패치를 부착하고 산소투여가 시작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과 보호자들의 면담은 계속되었고 보호자들은 이미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까지도 의식 없던 할머니가 며칠 만에 잠깐 눈을 뜨고 웃어 보이신다. 기력이 없어서인지 평소 거칠던 입담은 사라지고 힘없이 미소를 지어보이시더니 이내 의식이 떨어진다.
 
 의식 없이 이틀이 지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할머니는 삶의 마지막 인연을 끝내셨다. 이제는 고통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안타까움보다는 안도의 숨이 저절로 쉬어진다. 잘 가라는 인사를 속으로 읊조리며 다음 생에는 좀 더 편안한 삶이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천둥번개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혹시라도 이 어르신이 그 할머니와 같은 과정을 또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내 마음처럼 날씨는 점점 시커멓게 변하고 얄궂다. 담당과장님은 여전히 보호자와 면담중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호자들은 이미 나이와 죽음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근의 외과병원을 다녀오고 그때의 할머니 가족들과 같은 대답을 가지고 돌아온 가족들은 치료의 의지를 포기한 것 같다. 발가락을 절단해도 소용없다며. 보기엔 흉하지만 발가락보다 더 위쪽으로 혈액순환이 잘되는 곳까지의 절단은 고려해보지 않겠냐고 설득하는 우리의 심정을 그분은 모르실거다.
 
 어르신의 발가락 괴사 속도는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벌써부터 기도를 한다. 제발 고통이 심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어쩜 이렇게 시기도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한번 경험을 한 머리와 가슴은 그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할아버지는 그 때 어르신처럼 심하게 욕설을 하지도 않고 저항도 덜 하시지만 온 몸으로 무기력과 우울함이 표출 되었다. 평생 남을 위해 침을 놓으시던 분이라 본인에게 놓을 침을 몇 개 달라고 한다. 한방과장님께서 침 몇 개를 드리니 놓지는 못하시고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드레싱하실 때 간간이 움찔거리는 할아버지 발목을 잡고 나는 또 한 번 누군가를 열심히 불러댄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힘들게 하지 말고 데려가시라고. 발끝의 괴사는 새끼발가락 전체로 올라온다. 역시나 삼출물 없이 말라가며 말이다.
 
 할아버지도 무언가를 느끼신 걸까, 식사를 거부하신다. 겨우 입안에 넣어 드리면 삼키지 않고 한참을 머금고만 계신다. 아들은 자주 오지만 돌아서서 가고나면 할아버지는 소리 없는 눈물만 한참을 흘리신다. 링거로 계속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호자와의 면담은 잦아지고 할아버지의 기력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떨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새벽 할아버지의 숨은 얕아지고 끝내 이승과 저승의 턱을 넘으셨다. 가족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고 홀로 마무리한 너무나도 조용한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마지막을 준비하느라 그렇게 소리 없이 눈물 흘리셨나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 드릴 걸...’
 
 호스피스 환자들은 이미 본인의 삶의 남은 시간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온다. 삶을 갈무리 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나 받는 사람들이나 결국에는 평온하게 받아들이게끔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곳 요양병원에서는 인지가 있는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 할텐디..’하시면서도 죽음을 이야기하면 꺼려하고 불쾌해 하신다(실재로는 두렵고 불안해하신다고 해야 하나). 인지가 떨어지는 어르신들에게는 당신의 상태나 죽음이란 의미 자체가 지각을 할 수 없으니 삶을 마무리하는 준비가 더 어렵다.
 
 이런 분들과 함께해왔던 날 들이 또 앞으로 함께해야 할 날들이 내 삶에 어떤 색깔로 물들여지고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그 문턱 앞에 섰을 때 조금은 더 쉽고 평안하게 그 곳을 넘어 갈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어제도 오늘도 이곳에 머물다 가는 이분들과 하루하루를 쉼 없이 열고 닫는다.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그러할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빈틈없이 채워져 가는 날들이 좀 더 따뜻한 색깔로 칠해질 수 있도록 그들을 안을 수 있는 내 가슴의 온기가 늘 식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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