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간호문학상 소설가작
순이아줌마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12-28 오후 17:44:12
김도희(통영적십자병원)
-그녀와의 만남-
"언니야, 안뇽!!"
매서운 바람에 콧등까지 시린 겨울
검은색 빛바랜 낡은 모피코트.
귀에 달린 장난감같은 까만 진주귀걸이를 하고 휠체어를 탄 그녀가 나타났다.
작년 이맘 때 남편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대퇴골절로 입원했던 우리병원 단골손님 순이아줌마.
나이는 마흔 넷. 이름은 박 순이.
열 여덟 살의 아들과 남편을 둔 전업주부로 모자라는 듯한 말투와 행동을 하는 그녀는 며칠 전 남편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야구방망이에 맞아 작년에 수술했던 다리가 또 부러져 왔단다.
참 많이 아팠을텐데. 아프다는 말도 안하는 그녀.
그녀의 휠체어를 운전하다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는 남편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녀는 자기 다리를 부러뜨린 남편이 밉지도 않은지 그의 손을 꼭 잡고 병실 침대에 올랐다.
"언니야, 나 배고푸다. 밥 주라."
그녀는 배꼽시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금방 배식이 시작되어 구수한 된장찌개와 조기구이 냄새가 향긋했다.
"우리 오빠야도 밥 먹어야 되니깨 밥 두공기 갖고 온나."
나이 마흔 넘은 아줌마가 남편을 오빠라고 했다.
옆에서 말없이 가만히 밥 숟갈만 뜨던 금자 할머니가 푸웁하고 입에 가득했던 밥을 뱉아냈다. 웃음을 참다가 사래가 걸려 케액거리면서도 큭큭거리며 웃으셨다.
덕분에 우리도 까르르 웃었다.
금자할머니, 순이아줌마, 그녀의 남편과 나는 숨이 넘어갈 만큼 헉헉거리며 웃었다.
식당여사님께서 밥상을 가져와 식판을 펼쳐놓자마자 우리의 정신없는 웃음은 멈췄고 순이아줌마와 남편은 허겁지겁 밥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춘향전의 한 대목처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아이고야, 아침밥을 못 묵었나? 이것 좀 더 무라.
내 식당아지매한테 한공기 더 가오라 하까?""
이를 지켜보던 금자할머니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반쯤 남은 할머니 밥을 순이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순이아줌마는 두말 하지 않고 뺏는 듯이 밥을 받아 순식간에 해치웠다.
"문디 손, 고맙다는 말도 안하네. 밥만 돼아지처럼 쳐 묵기만 하고.."
며칠동안 혼자서 2인실을 지키시던 금자할머니는 룸메이트가 마음에 드셨는지 이것저것 챙겨주실려고 했다. 아들과 손자들이 사주고 간 빵, 과일, 음료수 여러 가지를 꺼내어 순이아줌마 식판에 올려주셨다.
"아줌마, 금자 할머니가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주시는데 빨리 고맙다고 인사해요. 네?"
내 마음이 더 초조했다. 저렇게 모자란 사람을 내 옆에 갖다놨다 하고 금자할머니가 역정을 내실까봐 걱정이 되어 순이아줌마에게 다섯 살짜리 아이를 달래 듯 속삭였다.
"알았다. 언니야. 내가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다.
할매, 고맙다. 잘 먹었다. "
"오이야. 그래 잘 묵었으면 됐다. 내 니하고 같이 방 쓰는 사람인깨 잘 지내 보자이."
"알았다. 할매야."
금자할머니는 돼지같이 먹기만 하고 말까지 짧은 순이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깐깐한 금자할머니와 순이아줌마는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수술일-
다음날., 순이아줌마의 수술날이었다. 아침 일찍 관장을 하고 금자할머니 옆에서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병실을 내 집처럼 쓸고 닦는 금자할머니가 역정을 내실까봐 걱정했는데 꼬부라진 허리로 기저귀도 갈아주시고 애기 먹이듯 죽도 몇 숟갈 먹여주셨다.
"금자할매 왜 저러노. 나중에 순이아줌마 수술하고 나오면 병실 옮겨달라고 소리지르는 거 아니겠쟤?"
"금자할매가 순이아줌마한테 저렇게 잘해주는데 설마.."
안 어울리는 그녀들이지만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들 의아해했다.
오후 2시로 잡혀있던 수술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점검으로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고 소변줄을 꼽아야 하는데 순이아줌마는 작년에 수술할 때 소변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소변줄 안할꺼라며 바지도 안 내리고 생떼를 썼다.
한참을 실랑이 벌이던 중
"야이 가시나야! 니 수술하고 다리에 오줌 묻어서 다시 수술하면 우짤끼고. 빨리 꼽아라이!! 문디 가수내. 묵는 것도 많아서 똥오줌도 많이 싸면서 왜 안할려고 그래! 빨리 바지 안 벗나!"
금자할머니가 소리를 꽥 질렀다.
순이아줌마는 다시 수술한다는 말에 겁에 질려 울먹이며 바지를 내렸다.
금자할머니가 최고. 할머니 고마워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할머니를 향해 씽긋 웃었다.
"수술 잘 하고 나온나. 수술 잘 되면 내 니한테 통닭 한 마리 사주낀깨.
의사선상님 말 잘 들어야지 수술 잘 되니깨 소라지 내 지르지말고 잘 하고 온나이."
"알았다. 진짜 통닭 사 주끼쟤?"
통닭이란 말에 순이아줌마는 다시 확인을 받아낸다.
"가시내, 속고만 살았나. 나 니 통닭사줄 돈 있다. 보이주까?"
금자할머니는 눈을 홀기며 바짓속에 감춰 둔 쌈지주머니를 뒤지며 말씀하셨다.
통닭을 좋아하는 순이아줌마는 말 잘 듣는 어린 아이가 되어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동침대에 몸을 싣고 수술실로 향했다.
두 시간.
작년에 한번 해봐서인지 더 겁이 났나보다.
수술실입구에서 다시는 수술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순이아줌마, 그럼 금자할매한테 다 일러 줄꺼예요. 통닭 안 먹을꺼예요? 금자할매가 통닭사준댔잖아요. 잘 하고 와요."
울먹거리는 순이아줌마를 통닭 한 마리로 꼬셨다.
수술실 문이 닫힐 때 까지 순이아줌마는 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아줌마 파이팅!!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 순이아줌마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맡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수액들과 다리에 박힌 배액관, 몇 시간을 싸우면서 끼우는 데 성공한 소변줄까지. 그녀를 꽁꽁 묶고 있는 거미줄 같았다.
찬 물수건을 들고 금자할머니가 순이아줌마를 보러 오셨다.
송글송글 순이아줌마의 이마에 맺힌 땀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시며
"모자라는 기 수술 받는다고 참말로 수고했네. 장하네. "
하시면서 이마를 쓸어내리며 목, 팔 여기 저기를 닦으셨다.
순이아줌마의 남편은 등치에 맞지 않게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져서 두 번이나 수술을 받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였을까.
다 큰 어른이 눈이 빨걔지고 콧물이 삐죽 나와도 울고만 있었다.
때가 믇어 끝자락이 시커먼 옷소매로 눈물콧물을 훔쳐내며 우는 순이아줌마의 남편이 때
묻지 않고 얼마나 순수해보였는지 모른다.
수술실에서 나온 지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그녀가 눈을 떴다.
"니 괜찮나? 다리 많이 안 아프나?"
금자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프다. 할매, 통닭은?"
눈뜨자 마자 통닭말부터 꺼내는 순이아줌마.
"문디 손!! 나중에 시키주께. 눈 뜨자마자 쳐 먹을 생각부터 하나?
좀 있다 사주낀깨 입 다물고 잠 좀 더 자라."
"오늘 꼭 통닭 사주야 된다. 거짓말 하믄 안돼."
순이 아줌마는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금자할머니는 잠이 들면서 나오는 숨소리를 들은 후 조심스럽게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혹시나 잠에서 깰까 조심조심 순이아줌마를 닦였다.
창문 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병원 밖 사람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바쁘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걸어간다.
우리 순이아줌마도 오늘 힘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세상물정 모르고 철부지처럼 40여년을 보낸 순이아줌마는 몸도 마음도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관지천식이 있어서 매일 스프레이 치료제를 쓰고 약 잘 챙겨먹으라고 일러줘도 약은 커녕 꼴초라서 줄담배만 핀다. 심심하면 길에 떨어진 음식 잘못 주워먹고 병원에 실려오고 남편과의 부부싸움, 이웃사촌, 동네 양아치들과도 치고 박고 싸우며 영광의 상처를 안고 응급실을 내원하는 우리 병원 단골손님이었다.
아줌마 어렸을 적부터 잘 알고 지낸 우리 병원 청소반장님 말을 빌리자면, 모지래이라고 여기저기서 많이 맞고 돈도 뺏기고 사기도 당했단다. 그래도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남의 것 탐내거나 도둑질은 안한단다. 남편과는 재혼을 했고 아들 하나 있는 것도 멀쩡하지 못해 순이아줌마처럼 산단다. 그럼 순이아줌마는 일도 안하는데 어떻게 먹고 사냐고 내가 그러니까 정부에서 돈 받아서 먹고 산다고 청소반장님 말씀하신다.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정부에서 돈 받아 사는 데 사기치는 빌어먹을 인간들이 있더라며 옛 기억을 더듬거리며 청소반장님은 흥분하셨다.
순이아줌마 인생.참 파란만장했구나.
몸도 아팠겠지만 마음도 많이 아팠겠구나.
순이아줌마, 이제는 아프지 마요.
사랑하는 남편 양진모씨와 잘생긴 아들 영범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그녀의 따뜻해지는 손을 잡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수술 다음 날-
아침부터 금자할머니가 나를 찾았단다.
이브닝 근무라서 2시에 출근한다고 수선생님께서 말씀드렸는데도 다섯 번은 나를 찾으셨다고 하셨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자마자 금자할머니 방에 갔다.
"김간호사, 내가 니 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 저 문디 같은 년이 꼭두새벽부터 통닭내놓으라고 .어찌나 떼를 쓰는지 내가 통닭 시키무봤어야 어디가 맛있는 줄 알고 어디서 배달시키는지 알쟤.
김간호사 니가 좀 시키봐라. 내가 오늘 얼마나 들들 볶였는지 머리가 아프다. ."
순이아줌마가 얼마나 볶아댔는지 맥이 빠져 금자할머니 목소리도 작아졌다.
내가 자주 시켜먹는 치킨집에 전화해서 주문을 해드린 후 30분쯤 지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통닭이 왔다. 가만히 누워서 벽만 쳐다보던 순이아줌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한상 차려놓고 정신없이 통닭을 뜯었다.
"맛있나?"
정신없이 먹는 순이아줌마를 보며 웃으시는 금자할머니.
"엉, 맛있다. 할매도 무봐라."
양념이 잔뜩 묻은 손을 닦지도 않고 다리 한쪽을 골라 할머니께 건네는 순이아줌마.
"됐다마. 니 다 쳐묵라 니 쳐묵는 거 보니깨 한 마리도 모자라긋다.
묵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사양하시는 금자할머니는 화장지를 한 웅큼 뜯어 순이아줌마의 손을 닦아주셨다.
고소한 통닭냄새가 병실 안에 가득했다.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순이아줌마.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은 후 상도 치우지 않고 철퍼덕 엎어져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치우는 것도 금자할머니 몫이었다. 살 한 점 드시지 못한 할머니는 앙상하게 남은 뼈를 치우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
저렇게 좋으실까.
날이 갈수록 할머니가 더 이해가 안 되고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당신의 혈관이 잘 안 나와 주사바늘 두 번 찔렀다하면 다른 간호사 오라고 소리를 내지르고 옆 병실에서 소아과 애기가 보채고 울면 시끄럽다고
"아 하나 못 달래나. 니가 그래도 애미냐"
하며 애기엄마에게 퉁을 주는 무서운 금자할매가 쫓아내도 수 십번은 쫓아냈을 순이아줌마인데. 왜 저렇게 호의적이고 다정다감하신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꼬부랑 금자할매는 상을 다 치우고 잠든 순이 아줌마의 어깨까지 이불을 폭 덮어주셨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내친 김에 자장가도 불러주셨다.
참 이상한 일이고 놀랄 일이지만 모른 체 했다.
혹시나 아는 척이라도 하면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유리조각처럼 깨져 버릴까
궁금하지만 참을란다.
-로맨틱한 진모아저씨 -
일 년 중에 온 세상 여자들이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는 날 화이트데이.
누구는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바구니가 배달되고 누구는 커다란 곰인형과 사탕바구니가 배달왔단다. 내 직장동료 겸 친구인 희정선생님은 3년째 남자친구도 없어 사탕도 못 받는다며 우울해하였다. 나 역시 올해는 사탕을 못 받는 처지라서 사탕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농담을 했다.
점심때 쯤 되었나보다. 순이 아줌마 남편 진모아저씨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진모아저씨는 빛 바래고 낡아서 폼은 안 났지만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한 손에는 계란 한판을 들고 아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따라갔다.
"순이야. 오늘 사탕주는 날이다.
사탕은 니가 안 좋아하고 삶은 닭알 좋아하니까는 새벽부터 닭알 삶았다. 이놈 서른 개 이뿌게 삶는다고 내 욕 좀 봤대이 ."
로맨틱한 진모씨였다.
그는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삶은 계란 한판을 아내 앞에 내려 놓았다.
"우와! 순이아줌마. 우리는 사탕 주는 남자친구도 없는데 아줌마는 완전 행복하겠어요."
"문디 손, 좋겠네. 남팬이 마누라 맥일끼라고 꼭두새벽부터 삶았다 안하나.
뽀뽀 한번 해주라."
금자할머니는 뽀뽀까지 시키려고 하신다.
쪼옥.
순이아줌마는 입술을 꽃봉오리처럼 오므리고 진모아저씨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뽀뽀를 하는 사람, 뽀뽀를 받는 사람 두 사람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얼레리 꼴레리 ,순이아줌마 뽀뽀했대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3병동 복도를 뛰어다녔다.
50여명이 입원한 3병동에서 어느 누구도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는 사람 없이 순이아줌마네 부부를 보고 좋겠다. 부럽다. 우리 남편은 뭐하노. 오기만 해봐라. 다리를 분질러 놓을 꺼다.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두들 축하해주고 보기 좋다며 두 사람을 두고 덕담 한 마디씩 해주셨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려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부부싸움은 하지 마세요.
부인은 참 좋으시겠어요. 저런 멋진 남편이 있으니.
순이아줌마와 진모아저씨는 여러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계란을 까서 서로의 입에 넣어 주었다.
두 사람, 참 행복해보였다.
진모아저씨. 저렇게 한번씩 이벤트를 해주나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
순이아줌마도 다혈질이라서 분명 싸움 할 때 아저씨 화나게 해서 두들겨 맞았을꺼야.
순이아줌마가 처음 입원한 날, 어떻게 남편이 야구방망이로 아내를 때릴 수 있냐며 열을 올리며 격분하던 우리는 진모아저씨의 팬클럽이 되었다.
가끔 침을 을리고 땅에 떨어진 핫도그를 주워먹지만,
진모아저씨,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이예요.
-금자할매의 딸-
"김간호사,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건 갑다. 저리 까치가 내 옆에서 우네."
내 간밤에 우리 정수하고 매느리하고 오는 꿈을 꿨다이가. 그런 꿈을 꾸면 아들이 꼭 온다니까는. 내 꿈이 보통 꿈이 아닌기라."
지난 일주일동안 순이아줌마를 보살핀다고 정신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이제야 끔찍이 아끼시던 아들이 생각나셨는지 꿈과 까치 핑계를 대시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하셨다.
과연 할머니의 꿈은 영험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의 아들 내외와 낯선 여자분이 할머니를 찾아오셨다. 아들 내외분은 그 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었지만 처음 보는 여자분은 할머니를 쏙 빼닮은 얼굴이라 물어보지 않아도 딸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서른 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지만 어딘가 부족한 30대로 보였다.
할머니의 묻는 말에도 답이 없이 멍하게 할머니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는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하고 가만히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옆에 꼭 붙어 앉아만 있었다.
그런 딸을 나무라기는 커녕 더 힘을 주어 그녀의 어깨를 꽉 끌어안는 금자할머니.
할머니는 몇 시간을 대답 없는 딸을 안고 혼잣말만 하시다가 가족들을 보내셨다.
항상 일찍 잠드시던 할머니는 깊은 밤이 되어도 안 주무시고 한참을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셨다.
" 따님 할매 닮아서 미인이시든데요."
할머니의 이불을 덮어드리며 말을 꺼냈다.
"우리 딸, 예뿌쟤. 이름은 정애다. 어릴 때 열병을 앓고 나서부터 저리 모지래이가 됐다. 내 입원전까지 저걸 보살폈는데, 요새 즈 오빠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이나 안 묵고 있는지 걱정이 되네. 내 옆에서 맨날 돼지같이 쳐 묵기만 하는 저 문디를 보면 우리 정애가 생각이 난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금새 붉어지며 젖어들었다.
금자할매가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리는 꼬부라졌지만 대쪽같은 성품에 남 앞에서 틀린 말 안 하시고 할 말 다 하시는 똑순이 금자할매가 모자란 딸 이야기를 처음 해주시고 눈물을 훔치시니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저 문디가 꼭 우리 정애같다. ."
저녁에 밥 두 그릇을 먹고 쌔근쌔근 아가처럼 잠이 든 순이아줌마는 퉁퉁 부운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 낑낑거리며 꿈나라로 떠났다.
-열 여덟살 아들 영범이-
오늘은 순이아줌마의 월급날이다.
매달 20일이 되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돈 받는 날이다.
아침부터 농협에 다녀와야 한다며 외출 보내달라고 생떼를 쓰던 순이아줌마.
아줌마 데리고 외출하려고 아들이 온단다.
아줌마가 입원 후 아들은 온 적이 없다.
순이아줌마 말로는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부른 가수 남진보다 백 배는 잘 생겼단다.
순이아줌마는 거짓말쟁이.
남진보다 잘 생겼다던 얼굴은 시꺼멓고 옥수수보다 누런 이빨에 삐쩍 말라 60~70년대 소년처럼 쑥쑥해보였다.
"영범아, 몇 살이야?"
"나 열 다섯 살이다"
아들 영범이도 엄마처럼 말이 짧다.
"열 여덞살 이라드만 아닌가보네"
청소반장님 말로는 열 여덟살 맞는데 지가 아직도 열 다섯인 줄 안단다.
그래서 아직 중학교 졸업을 못하고 있단다.
"엄마, 나 돈주라"
엄마 월급 들어오는 날인 걸 어찌 아는지 다짜고짜 돈을 내 놓으라는 영범이.
"알았다. 이거 갖고 맛난 거 사무라."
순이아줌마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진범이 손에 잡혀준다.
"영범아,. 엄마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않나. 엄마 많이 아프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순이아줌마.
그러나 영범이는 대답 없이 돈만 낼름 받아들고 가버린다.
"범아!! 이거 가져 가라"
교회 전도 하시는 분들이 주고 간 초코파이, 사탕봉지를 들고가라고 소리쳤지만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순이아줌마도 엄마였다.
자식한테는 뭐든 주고 싶고 물고 빨고 싶은 우리 엄마와 다를 것 없는 영범이의 엄마였다.
-순이아줌마, 안녕-
"나 퇴원시키도라. 나 집에 가끼다!"
며칠전부터 순이아줌마는 집에 보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다리몽디를 갖고 어디 집에 보내달라카노. 니 미친나."
참다 못한 금자할머니가 돋보기를 끼고 뜨게질을 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나 돈 없다. 할매가 돈 내 주끼가. 나 돈 없단 말이다. 엉엉엉."
"니 한달에 한번 월급 받는다이가. 미친년. 내가 만다꼬 니 돈 대신 내주끼고. 돈 없음 느그 서방한테 노가다를 해서라도 돈 벌어오라캐라!!" 금자할매도 화가 많이 나셨는지 콧등에 걸쳐진 돋보기를 내던지셨다.
진모아저씨는 며칠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어제 만신창이가 되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시비가 붙어 모르는 사람한테 복날에 개 잡듯이 신나게 두들겨 맞았단다.
걱정이 되어 응급실에 내려가 보니 아저씨 몰골이 말이 아니다.
두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동그란 얼굴인 아저씨가 팬더곰 같았다.
여기저기 찢어져 상처투성이라 덕지덕지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고 입고 있던 바지에 오줌도 싸서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있었다.
술냄새와 찌린내가 뒤섞여 속이 미식거렸다.
응급실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한 시간에 한번은 순이아줌마가 휠체어를 타고 와서 남편을 보고 간다며, 어찌나 시끄러운지 다른 환자들이 난리가 난다며 , 제발 좀 못 오게 하라고 했다.
"선생님, 사랑하는 남편 보러 가는 건데 어떻게 못 가게 해요."
농담삼아 던진 내 한마디에 응급실 간호사는 눈을 홀겼다.
정형외과 과장님은 아직 퇴원은 무리라고 몇 번을 순이아줌마에게 설명하셨지만 막무가내였다. 오늘 퇴원 안 시켜주면 걸어서 나가 버리겠다는 둥, 내일부터는 나 돈 못 낸다는 둥. 온갖 협박을 줄줄이 늘어놔도 안 된다고 하자 정형외과 외래 복도에 드러누워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어루고 달래던 성격좋은 우리 과장님도 마음대로 하라시며 퇴원처방을 내주셨다.
순이아줌마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왔다.
"모지래도 한참 모지랜다. 쯧쯧.. 니를 우찌하겠노. 문디 그튼 년."
퉁을 주는 금자할머니의 말에 들은 체도 안하고 열심히 짐만 싸는 순이 아줌마.
"순이야."
환자복을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진모아저씨가 나타났다.
"오빠야, 집에 가자. "
순이 아줌마는 환자복을 갈아입고 휠체어에 올랐다.
"순이아줌마, 지금 가면 안돼요. 퇴원비 계산하고 퇴원약 받아가야죠!""
"놔두라!! 집에 갔다가 내일 계산 하러 오께!"
다짜고짜 집에 간단다.
"집구석에 꿀 발라놨나. 꼴 보기 싫다. 빨리 가라~!!"
금자할머니는 막무가내인 순이아줌마가 못마땅해 불난 집에 부채질 하셨다.
금자할머니한테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눈만 홀기며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순이 아줌마는 집으로 향했다.
-통닭 두 마리-
"언니야, 안뇽!!"
다음 날 순이아줌마는 입원하는 날 입었던 모피코트에 진주 귀걸이를 하고 등장했다.
팬더곰이 되어버린 진모아저씨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언니야, 근데 돈 받는 언니야가 나 돈 낼 거 없다고 약만 받아 가라드라.
언니가 내 대신 돈 내줬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싶어 원무과에 전화를 했다.
"우리 병원복 입은 할머니가 어제 대신 계산하셨어요"
누가 대신 계산을 했단다.
금자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으셨으면서 새침떼기처럼 모른 척 하셨다.
김간호사., 저 문디한테 말하지 마래이.
눈빛으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금자할머니.
"니 어제 갔드만 또 왔나. 니 올 줄 알고 통닭 시키놨는데 묵고 갈래?"
나도 모르게 금자할머니는 통닭을 시켜놨단다.
순이아줌마는 빨리 가자며 금자할머니의 손목을 잡고 진모아저씨에게 더 빨리 휠체어 밀라고 호통을 친다.
아줌마가 가고 남은 빈 침대위에는 신문지가 곱게 펴져있고 통닭 두 마리가 놓여져 있었다.
"두 마리나 시킸응깨 마이 쳐 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이아줌마는 통닭을 집어든다.
"문디가튼 년. 어른한테 먼저 무보라는 소리도 안하고 지 입에 닦아 넣기 바뿌쟤."
"자, 할매도 하나 무라. 자.'"
다리 한 쪽을 들어 금자할머니께 드리는 순이아줌마.
"그래, 잘 묵으께. 많이 무라."
금자할머니도 다리를 하나 들었다.
금자할머니 방을 가득 메운 고소한 통닭냄새는 온 세상을 고소하게 만들었고 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녀와의 만남-
"언니야, 안뇽!!"
매서운 바람에 콧등까지 시린 겨울
검은색 빛바랜 낡은 모피코트.
귀에 달린 장난감같은 까만 진주귀걸이를 하고 휠체어를 탄 그녀가 나타났다.
작년 이맘 때 남편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대퇴골절로 입원했던 우리병원 단골손님 순이아줌마.
나이는 마흔 넷. 이름은 박 순이.
열 여덟 살의 아들과 남편을 둔 전업주부로 모자라는 듯한 말투와 행동을 하는 그녀는 며칠 전 남편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야구방망이에 맞아 작년에 수술했던 다리가 또 부러져 왔단다.
참 많이 아팠을텐데. 아프다는 말도 안하는 그녀.
그녀의 휠체어를 운전하다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는 남편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녀는 자기 다리를 부러뜨린 남편이 밉지도 않은지 그의 손을 꼭 잡고 병실 침대에 올랐다.
"언니야, 나 배고푸다. 밥 주라."
그녀는 배꼽시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금방 배식이 시작되어 구수한 된장찌개와 조기구이 냄새가 향긋했다.
"우리 오빠야도 밥 먹어야 되니깨 밥 두공기 갖고 온나."
나이 마흔 넘은 아줌마가 남편을 오빠라고 했다.
옆에서 말없이 가만히 밥 숟갈만 뜨던 금자 할머니가 푸웁하고 입에 가득했던 밥을 뱉아냈다. 웃음을 참다가 사래가 걸려 케액거리면서도 큭큭거리며 웃으셨다.
덕분에 우리도 까르르 웃었다.
금자할머니, 순이아줌마, 그녀의 남편과 나는 숨이 넘어갈 만큼 헉헉거리며 웃었다.
식당여사님께서 밥상을 가져와 식판을 펼쳐놓자마자 우리의 정신없는 웃음은 멈췄고 순이아줌마와 남편은 허겁지겁 밥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춘향전의 한 대목처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휘저었다.
"아이고야, 아침밥을 못 묵었나? 이것 좀 더 무라.
내 식당아지매한테 한공기 더 가오라 하까?""
이를 지켜보던 금자할머니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반쯤 남은 할머니 밥을 순이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순이아줌마는 두말 하지 않고 뺏는 듯이 밥을 받아 순식간에 해치웠다.
"문디 손, 고맙다는 말도 안하네. 밥만 돼아지처럼 쳐 묵기만 하고.."
며칠동안 혼자서 2인실을 지키시던 금자할머니는 룸메이트가 마음에 드셨는지 이것저것 챙겨주실려고 했다. 아들과 손자들이 사주고 간 빵, 과일, 음료수 여러 가지를 꺼내어 순이아줌마 식판에 올려주셨다.
"아줌마, 금자 할머니가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주시는데 빨리 고맙다고 인사해요. 네?"
내 마음이 더 초조했다. 저렇게 모자란 사람을 내 옆에 갖다놨다 하고 금자할머니가 역정을 내실까봐 걱정이 되어 순이아줌마에게 다섯 살짜리 아이를 달래 듯 속삭였다.
"알았다. 언니야. 내가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다.
할매, 고맙다. 잘 먹었다. "
"오이야. 그래 잘 묵었으면 됐다. 내 니하고 같이 방 쓰는 사람인깨 잘 지내 보자이."
"알았다. 할매야."
금자할머니는 돼지같이 먹기만 하고 말까지 짧은 순이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깐깐한 금자할머니와 순이아줌마는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수술일-
다음날., 순이아줌마의 수술날이었다. 아침 일찍 관장을 하고 금자할머니 옆에서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병실을 내 집처럼 쓸고 닦는 금자할머니가 역정을 내실까봐 걱정했는데 꼬부라진 허리로 기저귀도 갈아주시고 애기 먹이듯 죽도 몇 숟갈 먹여주셨다.
"금자할매 왜 저러노. 나중에 순이아줌마 수술하고 나오면 병실 옮겨달라고 소리지르는 거 아니겠쟤?"
"금자할매가 순이아줌마한테 저렇게 잘해주는데 설마.."
안 어울리는 그녀들이지만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들 의아해했다.
오후 2시로 잡혀있던 수술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점검으로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고 소변줄을 꼽아야 하는데 순이아줌마는 작년에 수술할 때 소변줄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소변줄 안할꺼라며 바지도 안 내리고 생떼를 썼다.
한참을 실랑이 벌이던 중
"야이 가시나야! 니 수술하고 다리에 오줌 묻어서 다시 수술하면 우짤끼고. 빨리 꼽아라이!! 문디 가수내. 묵는 것도 많아서 똥오줌도 많이 싸면서 왜 안할려고 그래! 빨리 바지 안 벗나!"
금자할머니가 소리를 꽥 질렀다.
순이아줌마는 다시 수술한다는 말에 겁에 질려 울먹이며 바지를 내렸다.
금자할머니가 최고. 할머니 고마워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할머니를 향해 씽긋 웃었다.
"수술 잘 하고 나온나. 수술 잘 되면 내 니한테 통닭 한 마리 사주낀깨.
의사선상님 말 잘 들어야지 수술 잘 되니깨 소라지 내 지르지말고 잘 하고 온나이."
"알았다. 진짜 통닭 사 주끼쟤?"
통닭이란 말에 순이아줌마는 다시 확인을 받아낸다.
"가시내, 속고만 살았나. 나 니 통닭사줄 돈 있다. 보이주까?"
금자할머니는 눈을 홀기며 바짓속에 감춰 둔 쌈지주머니를 뒤지며 말씀하셨다.
통닭을 좋아하는 순이아줌마는 말 잘 듣는 어린 아이가 되어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동침대에 몸을 싣고 수술실로 향했다.
두 시간.
작년에 한번 해봐서인지 더 겁이 났나보다.
수술실입구에서 다시는 수술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순이아줌마, 그럼 금자할매한테 다 일러 줄꺼예요. 통닭 안 먹을꺼예요? 금자할매가 통닭사준댔잖아요. 잘 하고 와요."
울먹거리는 순이아줌마를 통닭 한 마리로 꼬셨다.
수술실 문이 닫힐 때 까지 순이아줌마는 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아줌마 파이팅!!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회복실에 누워 있는 순이아줌마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녀의 머리맡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수액들과 다리에 박힌 배액관, 몇 시간을 싸우면서 끼우는 데 성공한 소변줄까지. 그녀를 꽁꽁 묶고 있는 거미줄 같았다.
찬 물수건을 들고 금자할머니가 순이아줌마를 보러 오셨다.
송글송글 순이아줌마의 이마에 맺힌 땀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시며
"모자라는 기 수술 받는다고 참말로 수고했네. 장하네. "
하시면서 이마를 쓸어내리며 목, 팔 여기 저기를 닦으셨다.
순이아줌마의 남편은 등치에 맞지 않게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져서 두 번이나 수술을 받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였을까.
다 큰 어른이 눈이 빨걔지고 콧물이 삐죽 나와도 울고만 있었다.
때가 믇어 끝자락이 시커먼 옷소매로 눈물콧물을 훔쳐내며 우는 순이아줌마의 남편이 때
묻지 않고 얼마나 순수해보였는지 모른다.
수술실에서 나온 지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그녀가 눈을 떴다.
"니 괜찮나? 다리 많이 안 아프나?"
금자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프다. 할매, 통닭은?"
눈뜨자 마자 통닭말부터 꺼내는 순이아줌마.
"문디 손!! 나중에 시키주께. 눈 뜨자마자 쳐 먹을 생각부터 하나?
좀 있다 사주낀깨 입 다물고 잠 좀 더 자라."
"오늘 꼭 통닭 사주야 된다. 거짓말 하믄 안돼."
순이 아줌마는 피곤했는지 눈을 감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금자할머니는 잠이 들면서 나오는 숨소리를 들은 후 조심스럽게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혹시나 잠에서 깰까 조심조심 순이아줌마를 닦였다.
창문 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병원 밖 사람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바쁘게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걸어간다.
우리 순이아줌마도 오늘 힘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다.
세상물정 모르고 철부지처럼 40여년을 보낸 순이아줌마는 몸도 마음도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관지천식이 있어서 매일 스프레이 치료제를 쓰고 약 잘 챙겨먹으라고 일러줘도 약은 커녕 꼴초라서 줄담배만 핀다. 심심하면 길에 떨어진 음식 잘못 주워먹고 병원에 실려오고 남편과의 부부싸움, 이웃사촌, 동네 양아치들과도 치고 박고 싸우며 영광의 상처를 안고 응급실을 내원하는 우리 병원 단골손님이었다.
아줌마 어렸을 적부터 잘 알고 지낸 우리 병원 청소반장님 말을 빌리자면, 모지래이라고 여기저기서 많이 맞고 돈도 뺏기고 사기도 당했단다. 그래도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남의 것 탐내거나 도둑질은 안한단다. 남편과는 재혼을 했고 아들 하나 있는 것도 멀쩡하지 못해 순이아줌마처럼 산단다. 그럼 순이아줌마는 일도 안하는데 어떻게 먹고 사냐고 내가 그러니까 정부에서 돈 받아서 먹고 산다고 청소반장님 말씀하신다.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정부에서 돈 받아 사는 데 사기치는 빌어먹을 인간들이 있더라며 옛 기억을 더듬거리며 청소반장님은 흥분하셨다.
순이아줌마 인생.참 파란만장했구나.
몸도 아팠겠지만 마음도 많이 아팠겠구나.
순이아줌마, 이제는 아프지 마요.
사랑하는 남편 양진모씨와 잘생긴 아들 영범이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그녀의 따뜻해지는 손을 잡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수술 다음 날-
아침부터 금자할머니가 나를 찾았단다.
이브닝 근무라서 2시에 출근한다고 수선생님께서 말씀드렸는데도 다섯 번은 나를 찾으셨다고 하셨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자마자 금자할머니 방에 갔다.
"김간호사, 내가 니 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 저 문디 같은 년이 꼭두새벽부터 통닭내놓으라고 .어찌나 떼를 쓰는지 내가 통닭 시키무봤어야 어디가 맛있는 줄 알고 어디서 배달시키는지 알쟤.
김간호사 니가 좀 시키봐라. 내가 오늘 얼마나 들들 볶였는지 머리가 아프다. ."
순이아줌마가 얼마나 볶아댔는지 맥이 빠져 금자할머니 목소리도 작아졌다.
내가 자주 시켜먹는 치킨집에 전화해서 주문을 해드린 후 30분쯤 지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통닭이 왔다. 가만히 누워서 벽만 쳐다보던 순이아줌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한상 차려놓고 정신없이 통닭을 뜯었다.
"맛있나?"
정신없이 먹는 순이아줌마를 보며 웃으시는 금자할머니.
"엉, 맛있다. 할매도 무봐라."
양념이 잔뜩 묻은 손을 닦지도 않고 다리 한쪽을 골라 할머니께 건네는 순이아줌마.
"됐다마. 니 다 쳐묵라 니 쳐묵는 거 보니깨 한 마리도 모자라긋다.
묵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사양하시는 금자할머니는 화장지를 한 웅큼 뜯어 순이아줌마의 손을 닦아주셨다.
고소한 통닭냄새가 병실 안에 가득했다.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순이아줌마.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은 후 상도 치우지 않고 철퍼덕 엎어져 코를 골고 잠이 들었다.
치우는 것도 금자할머니 몫이었다. 살 한 점 드시지 못한 할머니는 앙상하게 남은 뼈를 치우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
저렇게 좋으실까.
날이 갈수록 할머니가 더 이해가 안 되고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당신의 혈관이 잘 안 나와 주사바늘 두 번 찔렀다하면 다른 간호사 오라고 소리를 내지르고 옆 병실에서 소아과 애기가 보채고 울면 시끄럽다고
"아 하나 못 달래나. 니가 그래도 애미냐"
하며 애기엄마에게 퉁을 주는 무서운 금자할매가 쫓아내도 수 십번은 쫓아냈을 순이아줌마인데. 왜 저렇게 호의적이고 다정다감하신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꼬부랑 금자할매는 상을 다 치우고 잠든 순이 아줌마의 어깨까지 이불을 폭 덮어주셨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내친 김에 자장가도 불러주셨다.
참 이상한 일이고 놀랄 일이지만 모른 체 했다.
혹시나 아는 척이라도 하면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유리조각처럼 깨져 버릴까
궁금하지만 참을란다.
-로맨틱한 진모아저씨 -
일 년 중에 온 세상 여자들이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는 날 화이트데이.
누구는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꽃바구니가 배달되고 누구는 커다란 곰인형과 사탕바구니가 배달왔단다. 내 직장동료 겸 친구인 희정선생님은 3년째 남자친구도 없어 사탕도 못 받는다며 우울해하였다. 나 역시 올해는 사탕을 못 받는 처지라서 사탕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농담을 했다.
점심때 쯤 되었나보다. 순이 아줌마 남편 진모아저씨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진모아저씨는 빛 바래고 낡아서 폼은 안 났지만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한 손에는 계란 한판을 들고 아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따라갔다.
"순이야. 오늘 사탕주는 날이다.
사탕은 니가 안 좋아하고 삶은 닭알 좋아하니까는 새벽부터 닭알 삶았다. 이놈 서른 개 이뿌게 삶는다고 내 욕 좀 봤대이 ."
로맨틱한 진모씨였다.
그는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삶은 계란 한판을 아내 앞에 내려 놓았다.
"우와! 순이아줌마. 우리는 사탕 주는 남자친구도 없는데 아줌마는 완전 행복하겠어요."
"문디 손, 좋겠네. 남팬이 마누라 맥일끼라고 꼭두새벽부터 삶았다 안하나.
뽀뽀 한번 해주라."
금자할머니는 뽀뽀까지 시키려고 하신다.
쪼옥.
순이아줌마는 입술을 꽃봉오리처럼 오므리고 진모아저씨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뽀뽀를 하는 사람, 뽀뽀를 받는 사람 두 사람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얼레리 꼴레리 ,순이아줌마 뽀뽀했대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3병동 복도를 뛰어다녔다.
50여명이 입원한 3병동에서 어느 누구도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는 사람 없이 순이아줌마네 부부를 보고 좋겠다. 부럽다. 우리 남편은 뭐하노. 오기만 해봐라. 다리를 분질러 놓을 꺼다.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두들 축하해주고 보기 좋다며 두 사람을 두고 덕담 한 마디씩 해주셨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려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부부싸움은 하지 마세요.
부인은 참 좋으시겠어요. 저런 멋진 남편이 있으니.
순이아줌마와 진모아저씨는 여러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계란을 까서 서로의 입에 넣어 주었다.
두 사람, 참 행복해보였다.
진모아저씨. 저렇게 한번씩 이벤트를 해주나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잖아.
순이아줌마도 다혈질이라서 분명 싸움 할 때 아저씨 화나게 해서 두들겨 맞았을꺼야.
순이아줌마가 처음 입원한 날, 어떻게 남편이 야구방망이로 아내를 때릴 수 있냐며 열을 올리며 격분하던 우리는 진모아저씨의 팬클럽이 되었다.
가끔 침을 을리고 땅에 떨어진 핫도그를 주워먹지만,
진모아저씨,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이예요.
-금자할매의 딸-
"김간호사,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건 갑다. 저리 까치가 내 옆에서 우네."
내 간밤에 우리 정수하고 매느리하고 오는 꿈을 꿨다이가. 그런 꿈을 꾸면 아들이 꼭 온다니까는. 내 꿈이 보통 꿈이 아닌기라."
지난 일주일동안 순이아줌마를 보살핀다고 정신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이제야 끔찍이 아끼시던 아들이 생각나셨는지 꿈과 까치 핑계를 대시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하셨다.
과연 할머니의 꿈은 영험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의 아들 내외와 낯선 여자분이 할머니를 찾아오셨다. 아들 내외분은 그 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었지만 처음 보는 여자분은 할머니를 쏙 빼닮은 얼굴이라 물어보지 않아도 딸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서른 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지만 어딘가 부족한 30대로 보였다.
할머니의 묻는 말에도 답이 없이 멍하게 할머니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는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하고 가만히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옆에 꼭 붙어 앉아만 있었다.
그런 딸을 나무라기는 커녕 더 힘을 주어 그녀의 어깨를 꽉 끌어안는 금자할머니.
할머니는 몇 시간을 대답 없는 딸을 안고 혼잣말만 하시다가 가족들을 보내셨다.
항상 일찍 잠드시던 할머니는 깊은 밤이 되어도 안 주무시고 한참을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셨다.
" 따님 할매 닮아서 미인이시든데요."
할머니의 이불을 덮어드리며 말을 꺼냈다.
"우리 딸, 예뿌쟤. 이름은 정애다. 어릴 때 열병을 앓고 나서부터 저리 모지래이가 됐다. 내 입원전까지 저걸 보살폈는데, 요새 즈 오빠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이나 안 묵고 있는지 걱정이 되네. 내 옆에서 맨날 돼지같이 쳐 묵기만 하는 저 문디를 보면 우리 정애가 생각이 난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금새 붉어지며 젖어들었다.
금자할매가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리는 꼬부라졌지만 대쪽같은 성품에 남 앞에서 틀린 말 안 하시고 할 말 다 하시는 똑순이 금자할매가 모자란 딸 이야기를 처음 해주시고 눈물을 훔치시니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저 문디가 꼭 우리 정애같다. ."
저녁에 밥 두 그릇을 먹고 쌔근쌔근 아가처럼 잠이 든 순이아줌마는 퉁퉁 부운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 낑낑거리며 꿈나라로 떠났다.
-열 여덟살 아들 영범이-
오늘은 순이아줌마의 월급날이다.
매달 20일이 되면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돈 받는 날이다.
아침부터 농협에 다녀와야 한다며 외출 보내달라고 생떼를 쓰던 순이아줌마.
아줌마 데리고 외출하려고 아들이 온단다.
아줌마가 입원 후 아들은 온 적이 없다.
순이아줌마 말로는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부른 가수 남진보다 백 배는 잘 생겼단다.
순이아줌마는 거짓말쟁이.
남진보다 잘 생겼다던 얼굴은 시꺼멓고 옥수수보다 누런 이빨에 삐쩍 말라 60~70년대 소년처럼 쑥쑥해보였다.
"영범아, 몇 살이야?"
"나 열 다섯 살이다"
아들 영범이도 엄마처럼 말이 짧다.
"열 여덞살 이라드만 아닌가보네"
청소반장님 말로는 열 여덟살 맞는데 지가 아직도 열 다섯인 줄 안단다.
그래서 아직 중학교 졸업을 못하고 있단다.
"엄마, 나 돈주라"
엄마 월급 들어오는 날인 걸 어찌 아는지 다짜고짜 돈을 내 놓으라는 영범이.
"알았다. 이거 갖고 맛난 거 사무라."
순이아줌마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진범이 손에 잡혀준다.
"영범아,. 엄마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않나. 엄마 많이 아프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어리광을 피우는 순이아줌마.
그러나 영범이는 대답 없이 돈만 낼름 받아들고 가버린다.
"범아!! 이거 가져 가라"
교회 전도 하시는 분들이 주고 간 초코파이, 사탕봉지를 들고가라고 소리쳤지만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순이아줌마도 엄마였다.
자식한테는 뭐든 주고 싶고 물고 빨고 싶은 우리 엄마와 다를 것 없는 영범이의 엄마였다.
-순이아줌마, 안녕-
"나 퇴원시키도라. 나 집에 가끼다!"
며칠전부터 순이아줌마는 집에 보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다리몽디를 갖고 어디 집에 보내달라카노. 니 미친나."
참다 못한 금자할머니가 돋보기를 끼고 뜨게질을 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나 돈 없다. 할매가 돈 내 주끼가. 나 돈 없단 말이다. 엉엉엉."
"니 한달에 한번 월급 받는다이가. 미친년. 내가 만다꼬 니 돈 대신 내주끼고. 돈 없음 느그 서방한테 노가다를 해서라도 돈 벌어오라캐라!!" 금자할매도 화가 많이 나셨는지 콧등에 걸쳐진 돋보기를 내던지셨다.
진모아저씨는 며칠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어제 만신창이가 되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시비가 붙어 모르는 사람한테 복날에 개 잡듯이 신나게 두들겨 맞았단다.
걱정이 되어 응급실에 내려가 보니 아저씨 몰골이 말이 아니다.
두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동그란 얼굴인 아저씨가 팬더곰 같았다.
여기저기 찢어져 상처투성이라 덕지덕지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고 입고 있던 바지에 오줌도 싸서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있었다.
술냄새와 찌린내가 뒤섞여 속이 미식거렸다.
응급실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한 시간에 한번은 순이아줌마가 휠체어를 타고 와서 남편을 보고 간다며, 어찌나 시끄러운지 다른 환자들이 난리가 난다며 , 제발 좀 못 오게 하라고 했다.
"선생님, 사랑하는 남편 보러 가는 건데 어떻게 못 가게 해요."
농담삼아 던진 내 한마디에 응급실 간호사는 눈을 홀겼다.
정형외과 과장님은 아직 퇴원은 무리라고 몇 번을 순이아줌마에게 설명하셨지만 막무가내였다. 오늘 퇴원 안 시켜주면 걸어서 나가 버리겠다는 둥, 내일부터는 나 돈 못 낸다는 둥. 온갖 협박을 줄줄이 늘어놔도 안 된다고 하자 정형외과 외래 복도에 드러누워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어루고 달래던 성격좋은 우리 과장님도 마음대로 하라시며 퇴원처방을 내주셨다.
순이아줌마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왔다.
"모지래도 한참 모지랜다. 쯧쯧.. 니를 우찌하겠노. 문디 그튼 년."
퉁을 주는 금자할머니의 말에 들은 체도 안하고 열심히 짐만 싸는 순이 아줌마.
"순이야."
환자복을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진모아저씨가 나타났다.
"오빠야, 집에 가자. "
순이 아줌마는 환자복을 갈아입고 휠체어에 올랐다.
"순이아줌마, 지금 가면 안돼요. 퇴원비 계산하고 퇴원약 받아가야죠!""
"놔두라!! 집에 갔다가 내일 계산 하러 오께!"
다짜고짜 집에 간단다.
"집구석에 꿀 발라놨나. 꼴 보기 싫다. 빨리 가라~!!"
금자할머니는 막무가내인 순이아줌마가 못마땅해 불난 집에 부채질 하셨다.
금자할머니한테 잘 있으라는 말도 없이 눈만 홀기며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순이 아줌마는 집으로 향했다.
-통닭 두 마리-
"언니야, 안뇽!!"
다음 날 순이아줌마는 입원하는 날 입었던 모피코트에 진주 귀걸이를 하고 등장했다.
팬더곰이 되어버린 진모아저씨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언니야, 근데 돈 받는 언니야가 나 돈 낼 거 없다고 약만 받아 가라드라.
언니가 내 대신 돈 내줬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싶어 원무과에 전화를 했다.
"우리 병원복 입은 할머니가 어제 대신 계산하셨어요"
누가 대신 계산을 했단다.
금자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이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으셨으면서 새침떼기처럼 모른 척 하셨다.
김간호사., 저 문디한테 말하지 마래이.
눈빛으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금자할머니.
"니 어제 갔드만 또 왔나. 니 올 줄 알고 통닭 시키놨는데 묵고 갈래?"
나도 모르게 금자할머니는 통닭을 시켜놨단다.
순이아줌마는 빨리 가자며 금자할머니의 손목을 잡고 진모아저씨에게 더 빨리 휠체어 밀라고 호통을 친다.
아줌마가 가고 남은 빈 침대위에는 신문지가 곱게 펴져있고 통닭 두 마리가 놓여져 있었다.
"두 마리나 시킸응깨 마이 쳐 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순이아줌마는 통닭을 집어든다.
"문디가튼 년. 어른한테 먼저 무보라는 소리도 안하고 지 입에 닦아 넣기 바뿌쟤."
"자, 할매도 하나 무라. 자.'"
다리 한 쪽을 들어 금자할머니께 드리는 순이아줌마.
"그래, 잘 묵으께. 많이 무라."
금자할머니도 다리를 하나 들었다.
금자할머니 방을 가득 메운 고소한 통닭냄새는 온 세상을 고소하게 만들었고 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