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
환자 때문에 울어본 적 있나요?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01-06 오전 09:54:24
- 공명수
“ 일주일에 한번 빈혈주사 맞으시는 분이십니다.”
내과 외래에서 익숙하고 간단한 전화 메모를 남기고 끊는다. 처음 빈혈주사를 맞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에게 집에서 주사 맞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우리끼리 통하는 약속이다. 만성 신부전증이 진행될수록 신장에서 분비되는 조혈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빈혈이 생기게 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번 또는 10일에 한번 정도 씩 조혈 호르몬 주사를 외부에서 넣어 주어야 한다.
간호사들에게는 항상 유쾌하지 않은 예감이 있다. 오늘도 역시 주사를 배워야 하는 환자는 우리가 너무나도 바쁜 시간에 인공신장실로 내려왔고, 그 환자에게 주사 맞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한쪽 독방으로 들어서며 항상 그러하였듯이, 속으로는 불타는 가슴을 끌어안고 겉으로는 환한 미소와 애써 찾는 어색한 여유로 환자를 맞이하였다.
투석실은 첫 문 앞을 들어설 때부터 온통 새빨간 피이다. 피와 기계가 서로 얽혀가면서 쉬지 않고 멀미가 나듯 돌아가고, 그 옆엔 필통 속에 연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듯이 환자들이 한명씩 누워 기계가 주는 하루하루의 삶의 연장을 받고 있는 유약한 조재들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완치의 보람도, 그렇다고 상태의 악화로 삶의 마지막 자락을 붙잡고 흐느끼는 이들도 없는 곳,,,.. 환자인 엄마와 보호자인 20대 중반 나이의 딸 눈에 비췬 투석실이란 곳의 첫인상은 이정도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누구나 투석실을 처음 들어설 때엔 문 앞에 보이지 않는 줄이 쳐져있는 것처럼 발걸음을 멈칫하곤 한다.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이나 꽃 넝쿨 어우러진 정원을 들어설 때에 이렇게 망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두 모녀의 눈으로 본다면 처음 보는 이곳에 대한 생각이 이만큼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난 여기서 일하는 간호사이고, 내겐 하루하루의 생명을 맡긴 환자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바쁜 일과를 잠시 접어 두고, 주사 맞는 법을 가르치러 독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나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멋질 만큼 기억된 질문으로 줄줄 터진다.
“당뇨 있으세요? 인슐린 같은 것 맞아보셨어요? 그러시면 방법이 똑같아서 쉬울 텐데...”
“아니오...안 맞아 봤는데요...”
엄마의 겁먹은... 딸을 위한 밝은 목소리다.
3개의 질문을 이어서 던지고, 기대했던 대답이 없자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젊은 보호자가 있으니 설명은 단번에 알아듣겠지... 딸한테 가르치고 빨리 일을 마무리 하러 가야겠다는 것이 짧은 순간 세워진 나의 계획이다.
난 너무도 능숙하게 주사 바늘을 보여주고, 멋지게 공기를 털며 익숙한 조교처럼 막힘없이 모션을 보여주고, 딸에게 주사를 놓으면 된다고,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빨리빨리 진도를 따라와 주지 않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나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지만, 딸은 주사 바늘을 잡고 한겨울 칼바람을 다 껴안은 사람처럼 얼음이 되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계획을 바꾸어 엄마도 나이가 많지 않으니 자기가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게 좋겠다고 용기를 주며 스스로 주사 놓는 법을 가르치려는 순간... 딸은 얼음이 된 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엄마...나 정말 못하겠어....나 정말 주사 못 놓겠어... 엄마도 이렇게 투석하게 되면 어떻게해...흑흑흑....”
생전 처음 본 이 딸과 나의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가... 주책없이 스물스물 흐르는 것이 딸의 눈물과 연결된 나의 눈물인 것이다. 간호사는 어떠한 상황에서건 이성을 챙기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해야 한다. 같이 동화되어 운다거나, 환자를 감정에 담아 괜한 동정을 한다는 것은 프로적인 간호사가 아닌 것이라 배워왔다. 그렇지만 순간 난 그 딸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병든 몸을 가슴에 담은 딸...
“그래 괜찮아....엄마가 맞으면 되...니가 안 놓아도 된단다....”
엄마의 목소리는 강인하고 인자했지만 주사기를 든 손은 떨며 자신의 배를 섣불리 찌르지 못하고 있었다. 내겐 너무 많은 마무리 안 된 일들이 남아 있었지만, 모녀에게 지금의 순간을 재촉할 순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어머니가 영원히 살 줄 알았던 한 딸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모녀의 선물을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문득 지난 세월동안 건조한 가슴으로 간호했던 나의 환자들이 떠올랐다. 환자 때문에 울어본 적이 언제 였던가... 동료들 몰래 돌아서서 가운의 소매 끝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차트에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말랑말랑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활동사진처럼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퐁퐁 뛰는 심장으로 세상을 알고 있던 것들을 지금도 잊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눈물을 흘릴 시간 한 줌, 신에 대한 원망을 이야기 할 때 들어주는 관심 한 웅 큼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간호사란 너무나 축복받은 일이라고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었다. 매일매일 나를 원하는 환자들, 내게 조금씩 삶의 기운을 얻어가는 환자들과 함께이기 때문이라고...
인생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살다가 백의 천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시간을 할애하여 가슴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자신의 의 눈물에 때론 몰래 빨개진 눈을 훔칠 줄 아는 간호사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운전할 때 백밀러를 들여다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인생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앞으로 전진하지만,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뒤에 남겨진 나의 모습 속에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환자들을 향한 나의 기도와 그들의 손을 잡고 때론 주책없는 눈물을 함께 흘려주는 것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낸다는 것을 가끔이라도 기억하고 싶다.
주사에 대한 교육을 마치고 난 뒤에 서로 꼭 잡은, 주사기를 들고 바들바들 떨었던 두 모녀의 손을 본다. 그러면서 두 모녀를 투석실에서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육중한 기계에 의지한 나약한 파뿌리 같은 엄마의 모습이 딸에게는 평생 알 필요 없는 일이 되게 해달라는 작은 소원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