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의연이와 함께한 시간의 끝에 서서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8-03-12 오후 16:01:00
김혜정(충남대병원 간호사)
"여보세요? 여기 대학병원 중환자실인데요, 성세재활원이죠? 의연이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잘 있죠?"
" ...... "
" ......? " 상대방의 대답이 없어 순간적으로 불안이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동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의연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구정이 지난 다음날 새벽에요."
"네?!!! 뭐라고요?" 불안감에 혹시나 했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수화기를 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의연이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아냐!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그 누군가에게 그럴 리가 없다고 외쳐보지만 어느새 가슴속부터 북받쳐 나오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평생을 기관절개술을 한 채로 생활해야 하는 의연이가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자신의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이 세상과 이별을 하였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미어졌다.
지금 밖은 완연한 봄기운으로 모든 만물이 기지개를 펴고 생동하고 있는데 같은 하늘아래 학하동에서는 의연이가 죽었다니... 열여섯 해라는 짧은 생을 산 의연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은 한창 성장하고 있을 나이에 몇 번의 죽을 고비를 자신의 의지로 힘겹게 넘겼는데 말이다. 지난 3년간 의연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너무너무 허무하다.
3년 전. 정확히 2월 23일에 난 10여년간 3부 교대의 어려운 밤 근무를 하며 보낸 일반간호사 생활을 끝내고 책임간호사로 승진되어 중환자실에 배치를 받았다. 발령 받은 날 주위에서는 중환자실의 과중한 업무로 힘들 것이라고 걱정해 주었지만, 처음 신규간호사 때 지원하여 근무한 경험도 있고 내심 특수부서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과 첨단의 의료기계로 그동안 배운 지식과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여 정말 힘들어하는 중환자들에게 집중적인 간호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자신을 가졌었다.
통제구역이라는 빨간 글씨가 쓰인 육중한 자동문을 통하여 출근한 첫날,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밤새도록 간경화증 환자가 토해낸 구토와 피 섞인 배설물의 혈변냄새였다. 갑자기 숨이 막히며 역겨움에 토할 것 같았지만 중환자실의 책임간호사로서 어려운 환자들을 내 가족처럼 최선을 다하여 간호하겠다고 바로 어제 결심한 일이 생각나 참을 수 있었다.
아침 인계가 끝난 후 수간호사님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20개 병상에 누워있는 중환자들을 일일이 설명하며 여러 가지 의료기계, 전반적인 물품관리 등 책임간호사의 임무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10년 전 사용하던 인공호흡기, 심전도기는 이미 새로운 최첨단 기계로 바뀌어 환자 침상마다 옆에 다정한 커플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줄줄이 달려 늘어진 수액들은 보기만 해도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갑자기 이곳 중환자실의 근무가 두렵고 앞으로 내가 과연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어제까지 이비인후과 병동에서 예쁜 가운을 입고 아름다운 천사처럼 환자들을 간호하던 내가 하루사이에 보라색의 일하기 편리한 중환자실 작업복으로 바뀌어 있는 모습이 어색하여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헤쳐 나갈 자신이 없어 그저 멍하니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참을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눈길이 창가의 침상에 누워있는 어린 소년과 마주쳤고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공호흡기를 하고 어딘가 기형적인 신체구조를 갖고 있는 그 애는 뜻밖에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뜻 다가가기가 낯설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도 같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몸집으로 보아서는 유치원생쯤 되었을까? 아까 환자 오리엔테이션 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 애의 모습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눈에 들어왔다.
누워있는 침상이 그 애에게는 마치 커다란 선박을 연상케 하였고 이름표에는 ‘김의연, 13세, 남자, 진단:뇌성마비’라고 적혀 있었다. 뼈만 앙상한 체구에 육중한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어 나를 쳐다보는 것만도 몹시 힘들 텐데 입안의 목젖까지 내보이며 아주 크게 반갑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나의 힘겨워하고 주눅 든 마음을 알아차린 듯 해 괜히 머쓱해졌지만 유난히 크고 해맑은 눈망울에 매료되어 그 애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나와 의연이의 첫 만남이었다.
중환자실은 정말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바쁘고, 여기저기서 받는 스트레스는 나를 당황하게 했으며 그것이 또한 좌절과 회의에 빠지게 하여 우울하기까지 하였다. 그저 과거에 근무한 경험만 믿고 섣불리 부서 이동에 자신감을 가졌던 첫날의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한 의료기술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