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Home / 시론/칼럼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인쇄
간호칼럼-제주 올레를 걸으며
송만숙(한마음병원 사무국장)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07-01 오전 09:30:25


 쉬멍, 놀멍, 걸으멍(쉬며, 놀며, 걸으며)

 틈틈이 시간이 나면 생각을 정리하고 크게 숨 쉴 수 있는 올레를 걷는다. 올레는 거리에서 대문 앞까지 통하는 아주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요즘은 걷기 좋은 여행 코스로 지정된 곳을 올레라고 부른다.

 길섶에 피어난 작은 야생화와 돌멩이, 나무 열매들이 자연 그대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유를 갖게 된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처럼 우리 인간사도 끊임없이 변화와 부침의 연속이다.

 1970년대 초반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대학에 입학했다. 일회용 주사기가 나오기 전 유리 주사기를 소독하던 자불 소독기, 나이트 근무 때마다 잘라서 붙여 놓았던 반창고, 알코올 스펀지를 직접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주 낡은 신화가 되어 버렸다. 요즘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사시대의 유물을 보는 듯 낯선 표정들이다.

 그 때는 왜 크레졸이며 소독약 냄새가 그리도 진하게 코를 찌르던지. 퇴근길에 만난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이유도 모른 채, 나는 그 냄새를 그윽한 향기로 알고 간호사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시절은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이었다. 후배들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혼을 내다가도 힘들 때 손 내밀어주고, 기댈 어깨를 내어주던 푸근한 선배들이 있었다. 부실한 반찬이지만 도시락을 까먹으며 나누고 베푸는 따스함과 가족 같은 정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직접 가꾼 배추 한 포기와 고구마, 오징어 한 마리를 보따리에서 풀어내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있었다.

 요즘은 컴퓨터가 많은 업무를 대신 해주고, 새로운 의료용품이 쏟아져 나오고,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금세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업무 속에서 의료팀과 대상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다 힘에 겨워 간호현장을 떠나는 후배들을 종종 본다. 그럴 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는 자괴감과 한계를 느낀다.

 오늘도 오름과 바다, 어머니의 속삭임이 들리는 다정한 올레가 있는 제주에 살면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본다.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너무 높이 날려고만 하기 보다는 두 발로 굳게 땅을 딛고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거야.” 쉬멍, 놀멍, 걸으멍….

송만숙(한마음병원 사무국장)
  • 중앙대 건강간호대학원
  • 보험심사관리사 자격과정
간호사신문
대한간호협회 서울시 중구 동호로 314 우)04615TEL : (02)2260-2571
등록번호 : 서울아00844등록일자 : 2009년 4월 22일발행일자 : 2000년 10월 4일발행·편집인 : 신경림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경림
Copyright(c) 2016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koreanursing.or.k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