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소리-건강증진실에 비친 노후의 삶
주영선(소설가·강릉 사천진보건진료소장)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03-25 오전 10:25:32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건강증진실 안이 꽉 찬다. 대개 노인인 그 건강증진실 단골멤버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는 마음의 화가 있는 분들이다.
어떤 분은 며칠 동안 한 가지 이야기를 녹음기를 틀 듯 계속한다. 자신이 씨를 뿌려 키운 냉이를 동네 이웃 누가 뽑아갔다는 얘기다. 일주일이상 반복되는 그 분의 이야기 중 어느 대목에서 욕이 나올지, 또 어느 대목에서 고성이 이어질지 나는 반쯤 알아맞히게 되었다.
거의 매일 오시는 또 다른 분은 늘 재산을 떼어달라고 한다는 며느리에 대한 비난을 반복한다. 이 두 분이 일방적으로 열변을 토하면 건강증진실은 조용하다.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분들이다.
대개 그 자식들은 대학을 나왔으며 도회지 어딘가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닌다. 그들이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 그 통화내용은 다음날 어머니에 의해 낱낱이 마을사람들 앞에서 반복, 생중계 되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그의 직장, 식성, 월급, 자녀 수, 아파트 평수까지 다 외우고 있다.
다음은 일흔이 넘어도 흐트러짐이 없는 유형이다.
그 분들은 우선 복장이나 몸가짐이 단정하다. 대개 하루 3가지 정도의 기계를 이용해 1시간 정도로 물리치료를 끝낸다. 그리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소파에 앉아 쉬며 때로 혈압을 재거나 그 때 그 때 필요한 어떤 문의를 내게 한다. 그 분들은 큰소리를 내거나 가십거리를 옮기지 않는다. 마당에 가래침을 뱉는 일도 없다. 언제 뵈도 탐욕이나 불안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창문 밖을 보다가 보건진료소 마당 잔디 위에 웃자란 잡초 몇 포기를 뽑아내고 집으로 향하시는 어느 분의 자연스런 뒷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하여, 나는 때때로 생각한다. 복지란 무엇이고 건강증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연금이나 육체적인 노화 외에 정신적으로 잘 늙어가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 봐야 되지 않을까.
주영선(소설가·강릉 사천진보건진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