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00년 한국 간호 새 역사를 부른다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9-01-21 오전 10:36:21

김 동 섭
조선일보 논설위원
간호사 인기가 상한가이다. 고교 내신성적이 1~2등급이 돼야 간호대학 원서를 낼 정도다. 감원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엔 간호사가 보석처럼 더 빛난다. 쫓겨날까 걱정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골라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병원들은 더 나은 조건을 내걸고 손짓한다. 외국 취업문도 넓어 결혼시장에서도 블루칩이다.
1906년 선교사가 운영하던 여성병원인 서울의 보구여관에서 첫 선을 보인 간호사. `백의 천사'가 탄생한지 100여년의 역사만에 이젠 25만명의 거대한 집단으로 변했다. 복지부 장관에 오른 간호사만 벌써 두 명. 국회의원도 5명이나 나왔다. 엄격한 간호사 조직에서 배운 지도력과 통찰력이 그들의 힘이다.
간호사들의 뒷심은 뛰어난 조직 역량이다. 우리 사회엔 아무도 무시 못할 세 파벌이 있다고 한다. 고대 교우회, 호남 향우회, 해병대 전우회이다. 간호사들도 이에 못지 않다. 그 힘은 생명을 다루는 촌각의 절대절명의 시각 속에서 배운 상명하복과 일사불란함이다. 선배를 모시고 후배를 사랑하는 그런 정신자세이다. 사회와 인류에 봉사하는 그런 희생정신이다.
나이팅게일 시절만 해도 간호사는 기피 대상이었다. 종종 성격 까칠한 여자를 의미했다. 그의 부모조차 한사코 간호사가 되길 반대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1854년 크림전쟁에서 부상병들이 헛간 같은 병원에서 죽어가는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다. 38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그가 펼친 무기는 바로 환자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었다. 소독된 식기로 밥을 주고, 깨끗하게 삶은 옷을 주고, 밤마다 병실을 돌면서 사망자를 전체 환자의 42%에서 6개월만에 2%로 떨어뜨려 간호역사를 새로 썼다.
100여년의 우리 간호역사도 새로운 문법을 요구한다. 비주류가 주류로 탈바꿈하고 지방정치가 서울정치를 대체한다. 흑인이 백인을 장악하는 그런 도도한 역사의 흐름처럼 말이다. `보조자' `지원자'에 그칠 게 아니라 `집행자' `적극적 참여자'로 탈바꿈하라는 요구다.
변화의 힘은 복지부 중간간부 조직에서도 읽힌다. 복지부 78명의 과장 중 간호사 출신이 5명으로 의사(4명), 약사(2명), 한의사(1명) 출신보다 많아졌다. 의사나 약사가 힘깨나 쓴다는 조직에서 간호사 출신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미 간호사 25만명의 거대 집단이 되었고, 132개 간호대학에서 매년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고 수가 많은 전문가 집단이 되는 셈이다. 그 힘이 핵분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번져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백의 천사' 선각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씨의 여동생 유순한 씨. 그는 서른일곱에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간호사에서 퇴직한 뒤 그녀는 부산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장기려 박사를 도와 아프고 고단한 이들과 함께 했다. 그리곤 마지막엔 그가 5년여 투병하던 27평 아파트를 빼곤 갖고 있던 수십억원의 유한양행 주식 등을 사회에 환원했다.
사회봉사나 의료공헌은 의사나 약사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어려운 시절 독일에 간 간호사들에게서 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우리 간호사들의 DNA를 보지 않았는가. 혼자 사는 노인들을 돌보거나 그들의 안부를 헤아려 줄 수 있다.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워 줄 수 있다.
직업으로서 간호가 아니라 사회를 치유하고 재생시키는 간호이다. 자신의 몸을 사르는 촛불을 켠 마음으로, 일생을 의롭게 살며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하는 마음으로, 간호역사를 새로이 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