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춘추-가을의 단상
김은실 책임간호사(예수병원)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07-11-07 오전 10:07:48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어느덧 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이 지고 있다. 유난히 윤동주 시인의 시가 가슴에 와닿는 날이다.
시골의 한 소녀는 계속되는 투병 생활로 항상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난 커
서 간호사가 될 거야. 엄마같이 아픈 사람을 돕고 싶어”라고 마음에 간절한 꿈을 키웠다. 그 꿈은 소녀가 자라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간호의 비전을 갖게 해줬고, 난 간호사가 됐다.
그러나 생명을 위해 뛰는 가슴도,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던 마음도 잠시였다. 바쁜 일터에 적응하고 결혼해서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와 넉넉지 않은 시댁의 살림을 꾸리는 고단함 속에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하지만 많은 세월의 연단 뒤에 나오는 정금 같은 풍성한 사랑이 날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이웃의 아픔을 내 것으로 공유할 수 있었으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은혜를 알게 됐다. 질병과 생활의 질고로 인해 더욱 더 까다로운 이들에게 마음을 내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어 오늘도 감사가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공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의대를 가면 어떨까요?” 공대에 진학한 아들이 앞날에 대한 비전을 말하고 있다. 난 항상 아들의 비전에 생명에 대한 뛰는 가슴이 있는지,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섬김이 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했다.
만나는 이마다 회복되고 치유되는 역사가 우리 아이의 꿈과 비전에서 묻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뜨겁게 뛰는 가슴이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것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낮고 비천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기에 창조주가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아름다운 이 계절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지혜로운 자가 돼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초심의 뛰는 가슴이 계속 살아 있음으로 고통과 연단 속에서도 더욱더 성숙한 의료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김은실 책임간호사(예수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