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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춘추-느림의 미학
김미영(이대동대문병원 간호과장)
[이대동대문병원] 김미영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6-11-23 오전 10:15:33

 11월은 단풍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흰 눈같이 우아하지도 않은,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의 3악장이나 겨울의 1악장이 어울릴 것 같
은 달이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붉은 홍시가 유난히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조상들은 감을 거둘 때 참새의 배고픔도 헤아려 홍시 몇 개 남겨두었다고 하니 선조들의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 앞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동대문 쇼핑타운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걸어본다. 지나가는 사람의 옷차림을 흘깃거리기도 하고, 무대 위에 오른 젊은이들의 현란한 힙합댄스를 보며 일상과 다른 모습에 흠뻑 젖어든다. 또 다른 것에 정신을 팔다 보니 답답한 가슴이 뻥하게 뚫린다. 바로 이런 게 느림이 주는 여유인가.

 어제의 울긋불긋 단풍이 오늘의 거무죽죽 낙엽으로 변한 그 길을 걸으면서, 기웃 기웃 영화관을 들여다본다. “그 놈의 엄마를 먼저 만났다”는 홍보문구에 이끌려 보게 된 `열혈남아'. 복수와 잔인성, 조바심 뒤에 깔려있는 서정성과 사랑, 모성애가 까칠해 있던 가슴을 시리고 저리게 한다.

 영화관을 나와 곧장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린다. “엄마, 그냥… 별일 없지요?” 부모님의 모습과 11월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오버랩 되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다.

 이런 날 밤에는 휴대전화로부터 이탈해보고 싶다. 전화를 손에 꼭 쥐고 다니면서도 벨소리나 진동음이 울린 것 같은 환청을 겪고 그러다가 걸려오지 않으면 허전하고 우울해 하지 않았던가. 휴대폰 중독 증상에서 벗어나 혼자 사색에 잠긴다면 무한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여유로움이 빡빡한 삶에 활력소를 주고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한다. 이렇듯 여유는 번잡한 동대문 쇼핑타운 거리에서 활력 넘치는 다양한 삶을 체험하면서 작은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

 11월이 다가기 전 `한 박자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김미영(이대동대문병원 간호과장)
  • 보험심사관리사 자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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