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춘추-하인스 워드
이 지 영 펄벅재단 사무국장(간호사 사회복지사)
[펄벅재단] 이지영 news@nursenews.co.kr 기사입력 2006-04-20 오전 09:38:15

인종과 사랑에 경계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옹호하는 일에 `간호'와 `사회복지'의 획일적 구분을 지을 필요는 없다. 단지 수많은 혼혈아동들의 존엄과 인권이 맞닥뜨려진 현장 한 가운데 존재한 나의 소명에 감사할 뿐이다. 반세기 동안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던 최근의 핫 이슈 `혼혈'. 하인스 워드의 출현은 순혈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준 계기가 됐다.
내가 일하는 일터는 지난 2월부터 언론의 엄청난 취재 공세에 시달렸다. 하인스 워드의 출현을 두고 혼혈인에 대한 뜨거워진 논란 때문이었다. 50여년 동안 무관심과 경멸로 일관하다 한 혼혈 미국인의 성공담에 냄비처럼 흥분하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고 혼혈아이들의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아직도 자신들에게는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면서 한 미국 혼혈인이 성공하니까 왜 그 사람은 우러러 보냐는 것이다. 계기야 어찌됐든 이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기회가 돼야 할 것 같아 방한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그의 미국 변호인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한국에 있는 혼혈아동들을 직접 만나 꿈과 희망을 들려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바로 날아온 답신은 흔쾌한 수락이었다.
하인스 워드와 혼혈아동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각계의 뜨거운 관심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교육하고 순혈주의만을 지향해왔던 우리 역사가 이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보편적인 가치 지향으로의 전환점을 맞았음을 절감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 빠르게 내놓은 대책들은 혼혈인 복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포퓰리즘 정책들이어서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단군의 자손 한국 사회를 뿌리째 흔든 이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다.
그가 떠나고 우리에게 숙제가 남겨졌다. 그들 모자에게 보냈던 뜨거운 성원과 관심이 과연 국내의 수많은 혼혈아이들에게도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또 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러나 하인스 워드가 있었든 없었든, 반세기 전부터 영어를 모르고 김치를 먹으면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그들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나도 여느 때처럼 혼혈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예전의 일상이 새로운 변화를 포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조용한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그들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이 지 영 펄벅재단 사무국장(간호사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