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는 한국전쟁 중에 우리나라에 와 헌신한 유엔 간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1953년 6월 26일 발간된 대한간호(속간 1호) 46쪽에 실렸다. 편지 번역글을 싣는다.
인류의 성장과 발달에는 긴 싸움과 투쟁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의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일찍이 한국에 간호전문직이 들어왔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은둔의 시간을 보내면서 간호의 숭고한 사명을 국민들에게 잘 이해시키지 못했습니다. 간호선교사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간호전문직의 발전과정이 늦어진 게 사실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간호사들, 밤낮 없이 용감하게 일해
1945년 8월 한국이 독립하면서 미군이 주둔하게 됐습니다. 미군정부는 정부행정기구 중 보건후생부 내에 간호사업국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간호사를 여성전문직의 하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사람들이 간호학교에 입학하길 원했습니다. 전국의 간호사들이 힘을 모아 간호협회의 조직체계를 강화하고 위상을 끌어올렸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국가의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는 간호전문직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간호사들이 희생됐습니다. 간호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세계 각국에서 간호사들이 한국을 도우러 왔습니다.
캐나다, 호주, 미국, 태국, 덴마크,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인도,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간호사들이 왔습니다. 이들은 상처 입은 군인을 돌보는 것은 물론 영양 부족으로 아픈 사람들, 집을 잃은 고아 등을 돕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가 있는 가정과 보육원, 병원, 학교 등을 관리했습니다.
간호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일도 했습니다. 전쟁 통에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잃은 우리들에게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많은 만큼 또 한편으론 많은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국가 재난과 위기에서간호전문직 역할 보여줘
우리는 한국전쟁 중에 봉사한 유엔 간호사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간호사들은 밤낮 없이 용감하게 그리고 사심 없이 일했습니다. 환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며, 환자들과 함께 감사의 눈물을 나눴습니다. 유엔 간호사들과 함께 일한 한국 간호사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최신 간호를 경험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간호사들이 제공하는 훌륭한 간호를 경험했습니다. 국가적인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간호전문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정부에서도 간호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한국 간호의 번창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한국에서 헌신한 각국의 간호사들과 그들을 보내준 유엔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1953년 6월 11일 대한간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