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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읽는] 6‧25전쟁 70주년 간호사진전
[편집국]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기사입력 2020-11-20 오전 08:29:51

6‧25전쟁 70주년 간호사진전

간호사와 대한민국 : 전장의 영웅에서 코로나의 영웅으로

한국 간호역사 117년 간호사들은 대한민국 격동의 현장마다 헌신을 다해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6‧25전쟁에 참전한 간호장교와 민간 간호사들은 찬란한 젊음을 조국에 바쳤습니다.

한국을 돕기 위해 6개국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에서 파견한 의료지원단 간호사들은 숭고한 인류애로 사랑의 간호를 펼쳤습니다.

올해 3월 코로나19 최대 격전지 대구에는 제60기 신임 간호장교들이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전국에서 3959명의 간호사가 자원해 코로나 현장으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국난 극복에 앞장선 간호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감사하며 보답하겠습니다. 다음 세대에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위대한 간호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임관간호장교 및 민간 간호사 참전활동

[육군 간호장교] 1948년 8월 26일 민간 간호사 31명을 모집해 소위로 배출시키면서부터 시작됐다. 6‧25전쟁 중 참전한 육군 간호장교는 1257명에 달했다. 이들은 열악한 전장 환경 속에서 전선을 따라 이동하며 육군병원 및 이동외과병원 등에서 전상자를 간호했다. 일일 평균 2만2800명의 입원환자를 간호했으며, 전쟁 기간 중 40만명이 넘는 전상자를 간호하는 기록을 세웠다.

[해군 간호장교] 1949년 2월 7일부로 진해에 간호장교 교육대를 창설하고 4월 9일부로 20명의 해군 간호소위를 배출했다. 이후 휴전 시까지 4기 총 58명의 간호장교들이 해군 및 해병대 장병과 그들의 가족 등 10만여명의 간호를 담당했다.

[민간 간호사]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자 각 부대별로 민간병원의 간호사들을 모집해 현지임관 등의 방법으로 활용했다. 제18연대에서 활약한 간호사들은 군번이 없어 팔뚝에 새긴 ‘18연대 간호장교’라는 문신을 유일한 증명서로 삼고 임무를 수행했다. 제19연대 및 제7연대에도 민간병원 간호사들이 자원입대해 계급과 군번 없이 부대와 같이 이동하며 부상병들을 간호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참전 간호장교 이야기

“동상환자가 밀어닥쳤다.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팔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위중했다. 이들은 흥남항에서 철수한 병력이었다. 병원 분원 수술팀에 동원 명령을 받은 유명한 외과의사와 간호사가 배속됐다. 하루 스무 시간 일하는 것은 예사였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조수가 옆에서 주먹밥을 먹여줘야 했다.” (조귀례 / 육군간호장교 간호 제1기)

“세브란스간호학교 졸업을 앞두고 실습 중 6‧25전쟁을 맞았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잴 겨를이 없었다. 군인이 되어 모자라는 일손을 돕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간호장교 현지임관을 지원했다. 4년 4개월 동안 전후방 병원부대에서 정신없이 일했다.” (김근화 / 간호후보 제7기)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싸우다가 부상당한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을 정신없이 매일매일 간호했다. 눈을 다쳐 앞이 안보이고, 고막이 파손돼 듣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어떻게 간호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줘야할지 무겁고 아픈 마음뿐이었다.” (임원례 / 해군 간호장교후보생 제3기)

“나를 비롯한 개성 성남병원 간호사 24명이 제18연대에 자원입대했다. 우리에겐 군번이 없다. 군번 대신 팔뚝에 ‘18연대 간호장교’라는 문신을 새겼다. 나는 수색중대 의무대에 배치받았다. 간호장교와 전투장교 두 몫을 기꺼이 담당하며 전투부대요원으로서 몸을 사라지 않았다.” (오금손 / 제18연대 간호장교)

6‧25전쟁 의료지원국을 기억하겠습니다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이 일어난 한국에 대한 원조 권고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호응해 의료지원단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이 참전했다.

간호사와 의사, 지원요원을 파견해 야전병원, 이동병원, 병원선 등을 운영했다. 부상당한 군인 치료는 물론 민간인 환자들도 진료했다. 중환자 치료를 도맡았으며, 한국 의료진에게 의료기술을 지원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은 정전 후에도 남아 활동했으며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 설립에 참여했다.

6개국 의료지원단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0... [스웨덴] 스웨덴적십자병원은 1950년 9월 28일부터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부산에서 6년 6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6·25전쟁에 파견된 의료지원단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했다. 이 기간 중 간호사를 비롯한 총 1124명의 의료지원단이 파견됐다.

0... [인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갖고 있던 제60야전병원을 한국에 파견했다.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했으며, 1954년 2월 귀국했다. 이 기간 동안 총 627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외래수술 약 2300건을 실시했으며, 입원환자 약 2만명을 치료했다.

0... [덴마크] 유엔 회원국 중 제일 먼저 의료지원 의사를 밝히고, 병원선 유트란디아(Jutlandia)호를 파견했다. 유트란디아호는 1951년 3월 7일부터 1953년 8월 16일까지 3차에 걸쳐 한국에 파견됐으며, 연인원 총 630명이 근무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갖추고 있어 중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에 기여했다. 6000명 이상의 환자들을 후송하거나 치료했다.

0... [노르웨이] 전쟁을 겪고 있는 한국을 돕기 위해 육군 이동외과병원 노르매쉬(NORMASH) 의료진을 파견했다. 노르매쉬는 1951년 7월 19일부터 1954년 11월 10일까지 활동했으며, 군인과 민간인 환자 9만명 이상을 치료했다. 간호사는 총 133명(여자 111명·남자 22명)이 파견됐다.

0... [이탈리아] 제68적십자병원 의료진을 파견했으며, 1951년 12월 6일 서울 영등포 우신초등학교에서 개소해 1955년 1월 2일 철수할 때까지 전사상자 치료에서부터 민간인에 대한 의료지원까지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0... [독일] 6·25전쟁 직후인 1954년 5월 17일 부산에 적십자병원을 개원해 1959년 3월 14일까지 운영하며 5년간 의료지원 활동을 펼쳤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지원단 194명을 파견했다. 30만여명의 환자를 돌보고, 6천여명의 출산을 도왔으며, 의료진 양성에도 기여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6개국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주한대사관을 방문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감사패는 2가지로 해당 국가 및 간호협회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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