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여느 때처럼 하루는 조용히 시작됐다. 숙소 인근 식당에 모인 참가자들은 간단한 아침을 마친 뒤, 5시부터 다시 DMZ 걷기 행진을 이어갔다. 한 참가자가 행사 전 잇몸 통증을 호소하자, 현장에 함께한 간호돌봄봉사팀은 망설임 없이 진통제를 건넸다. 이날의 첫 케어가 그렇게 시작됐다.
이른 아침, 무탈했던 7.8km
걷기 행사는 암정교 앞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준비운동으로 시작됐다. 선선한 날씨 덕분에 이른 아침의 7.8km 구간은 큰 탈 없이 진행되었고, 참가자들은 용양삼거리를 지나 오전 6시 50분경 마현천불산쉼터에서 짧은 휴식을 취했다. 전날 물집 처치를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재문진이 있었지만, 다행히 추가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평탄했던 초반과 달리, 이후의 산행은 녹록지 않았다. 오전 7시경, 철원에서 화천으로 향하는 대성산 산길에 접어들면서 기온은 점차 상승했고, 고온다습한 날씨는 참가자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전쟁의 흔적 위에서, 평화를 묵념하다
산 중턱, 6·25 정전 직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금성지구에 이르러 참가자들은 걸음을 멈췄다. 국군과 중공군 간의 대규모 교전 끝에 수복된 이곳은, 지금도 조용히 그날의 격전을 증언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묵념과 헌화로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평화와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
이어지는 산길은 한층 가팔라졌고, 오전 10시경 말고개를 지나 도착한 화천군 마현리 마을회관은 탈진 직전의 참가자들에게 말 그대로 ‘오아시스’가 되었다. 3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의 회관은 물과 이온음료, 시원한 에어컨을 제공하며 모두에게 숨 돌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뜨겁고 습한 날씨에 피부는 쉽게 짓무르고, 마찰이 더해져 물집이 악화된 이들이 속출했다. 간호돌봄봉사팀은 곧바로 수포를 제거하고 폼드레싱을 시행했다. 각자의 발에 생긴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낮 12시, 걷기 종료… 그러나 간호돌봄봉사는 계속
1시간을 더 걸은 끝에 정오 무렵, 산양리에 도착하며 이날의 걷기 일정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간호돌봄봉사팀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점심 이후에도 재발한 수포와 화상, 진물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참가자들이 계속 이어졌다. 실을 통과시켜 진물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세심한 케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제 통일걷기 첫 주가 지나며 의약품의 재정비도 시급해졌다. 간호돌봄봉사팀은 남은 의약품 수량을 점검하고, 다음 일정에 필요한 물품을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하루의 마무리, 영화 속 분단과 다시 마주하다
저녁 5시 식사 후, 7시부터는 상서면 DMZ 시네마에서 영화 ‘판문점’이 상영됐다. 참가자들은 잠시 피로를 잊고, 스크린 속에서 분단의 현실과 마주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밤 9시 이후에도 또다시 근육통과 수포를 호소하는 이들이 간호돌봄봉사팀을 찾았다. 수포 제거, 소독, 근이완제 투약 등 마지막까지 정성 어린 손길이 이어졌다.
내일은 수리봉 산행이 예정돼 있다. 또 한 번의 고지대 오름과 함께, 더 많은 수포와 근육통 환자들이 예상된다. 간호돌봄봉사팀은 오늘 밤, 필요한 물품들을 응급카트에 다시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들의 손길은 고단하지만, 이 길 위에서 누군가는 ‘걷는 자유’를 지켜내고 있다.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걷는 사람들. 간호는 늘 그렇게 존재해왔다.”
